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순자는 대천에서 생선 가게를 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아들 민철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하자 생선 가게를 물려줄 생각에 하기 싫어하는 민철이를 오래 설득해 결국 같이 장사를 하고 있다. 민철이를 설득을 하는 데는 은주도 한몫 한 터라 순자는 민철이와 다툼이 생기면 은주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곤 했다.
몇 년 전 은주의 언니 은경은 이혼을 했다. 은경은 두 번째 이혼이었고 지금은 혼자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은경은 남편의 폭력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어느 날 은주는 순자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울며 전화를 했다. 은주의 하소연을 다 들은 순자는 이혼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순자는 은주에게 전화를 했다.
"느의 언니두 두 번이나 이혼을 혔는디 너꺼정 이혼 허믄 되겄니... 넘 부끄러워서 엄마가 살수가 읎다."
"싸우지 말구 잘 살어보믄 안 되겠니?"
"엄마... 무슨 말인지는 잘 아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애들은 어쩔라구 그려? 애들 포기 헐 자신 있니?"
"없지..."
"그럼 니가 혼저서 애들 둘을 워떻게 키울라구 그려? 엄마는 너 도와줄 힘이 읎다."
"그러게..."
"이혼 허지 말구 어떻게 좀 참구 잘 살어 봐라... 니가 참으야지 새끼들 그거 워쩔라구 그러니..."
이혼을 하면 은주는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들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해 보며 수없이 고심해 돌이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순자의 남보기 부끄럽다는 말은 은주의 상처를 한번 더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아픔은 온전히 공유할 수 없었고 은주는 세상에 내편이 없는 것 같아 더욱 슬펐다.
은주와 성민은 결혼한 지 18년이 됐다. 너무도 다른 사람이 만나 결혼생활 내내 죽일 듯이 싸웠다. 수없이 이혼을 생각했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네가 문제라고 상대를 고치려고 치열하게 싸웠다. 은주는 이렇게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도 있었고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도 많았다.
성민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했고 남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자기가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 사람은 죽을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는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살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살인마저도 용납이 된다니 스스로 고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그의 관점에서는 당연했다.
은주와 성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했고 16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일주일 내내 싸운 적도 있었고 어느 시기엔 평화로웠던 몇 달도 있었으니 어림잡아 800번을 넘게 싸운 것 같다.
은주는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편에게 받고 싶어 했다. 은주의 마음은 항상 가득 채워지지는 않았고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드나드는 밑 빠진 독 같았다. 그래서 은주에게 반해 애정이 넘쳤던 성민에게 기대가 컸지만 성민은 첫째 아이가 아프면서부터 냉정하게 변해갔다.
첫째 아이는 태어난 지 3주 만에 뇌수막염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고, 생명이 위태로웠다. 아이는 다행히 살았지만 퇴원을 할 때 의사는 절망적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김은주 산모님 아기는요. 입원 동안 고비를 여러 번 넘겼잖아요? 뇌척수액 검사를 퇴원을 앞두고 한번 더 했고요. 백혈구 수치가 이제 정상치로 돌아왔습니다."
"뇌척수액 검사는 허리 여기 척추에 바늘을 꽂고 척수액을 뽑아서 백혈구 수치를 검사를 하는 건데요. 어른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검사예요. 산모님 아기는 뇌척수액을 뽑을 때 처음 두 번은 반응도 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검사할 때는 많이 반응을 하더라고요."
"백혈구 수치도 낮아졌고 아기가 커져서 더 이상 신생아실에서 치료를 할 수는 없으니 이제 외래로 소아과 진료를 받으시면 되니까 집에서 통원 치료하시면 됩니다."
"음... 여기 MRI 사진을 보시면 아기는 대뇌가 많이 소실돼서 물이 된 상태예요. 여기 여기 군데군데 하얗게 보이는 여러 부분들이 보이시죠? 이 부분들이 염증으로 뇌가 소실된 부분들입니다. 굉장히 광범위하죠?"
"그래서... 앞으로 아기가 어떻게 자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워낙 광범위하게 뇌가 소실됐기 때문에 뇌가 하는 모든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서 눈이 안 보일 수도 있고요. 걷지 못할 수도 있고, 말을 못 하거나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좀 더 크는 걸 지켜보시고 발달 테스트를 해 보면서 상태에 맞게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활의학과 하고 소아과를 연결해 드릴 테니까 진료도 받으시고, 발달 정도도 계속 체크하시고, 재활 치료를 병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은서는 어눌하고 늦었지만 다행히 말을 했고, 세 살에서야 걷기 시작했고, 듣기도 했고,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체적인 발달이 더뎠고 뇌병변 장애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머리에 물이 순환하는 뇌실이 막히면서 머리 안에 물이 가득 차는 수두증도 생겼고, 머리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물을 빼내는 관을 몸 안에 꼽는 션트 수술도 받았고, 사시 수술도 받았다. 이제 안과에 뇌신경외과까지 정기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은서는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를 갈 때까지 병원과 치료센터를 다니면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언어치료, 심리치료, 인지치료, 그룹치료, 물리치료, 놀이치료 등 은주는 은서가 입원했던 병원과 장애인 복지센터와 인근 재활병원까지 은서를 안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했다. 매달 백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었고 어려운 형편에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은주네 생활비는 은서의 병원비와 은서가 먹는 것에 쓰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은주는 어금니가 쪼개져 씹을 수 없었지만 한쪽 어금니로 6년을 버티다 남은 한쪽 어금니 마저 쪼개졌고, 성민은 은서의 장난으로 앞니가 부러졌어도 몇 년간 임플란트를 하지 못해 벌어진 이를 보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웃었다. 모든 생활에서 궁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가 아프니 친구들 만날 생각도 말라는 성민의 말에 은주는 알고 지내던 모든 친구와의 연락을 끊었다. 성민은 열심히 돈을 벌겠다며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며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아이가 아프지만 병원이나 재활치료를 다니는 것은 늘 은주 혼자만의 몫이었다. 또 장애아를 대하는 세상의 냉정함에 상처받는 날이면 고통스러워 흐느끼는 은주를 보고도 성민은 지나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아 주거나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고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외면했다.
은서는 다섯 살이던 어느 날 불안정한 뇌파의 영향으로 간질을 시작했고 새벽에 갑자기 자다가 간질을 하면 119를 불러 아이를 안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야 했다. 이후로 은서는 새벽에 예고 없이 간질을 했기 때문에 은주는 아무 소리 없이 뻐끔거리며 거품을 무는 아이의 작은 소리를 자다가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혹시 못 듣고 지나칠까 불안했던 은주는 자다가 일어나 수시로 아이를 살폈다. 그렇게 수없이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인천보다 더 전문적인 병원을 찾아 서울 먼 거리의 병원까지 다니게 되었다. 은주는 은서가 간질을 하고부터 잠을 깊게 자 본 일이 없다. 은주의 24시간은 가시밭길이었고, 매 순간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주에게 쉼이란 없었고 점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갔다. 마음은 병들어 갔고 성민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성민은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성민에 대한 서운함은 점점 분노로 변해 갔고 오랫동안 쌓아온 분노의 가시는 사소한 한마디에도 뚫고 나와 성민을 찌르고 은주도 찔렀다. 은주는 사사건건 따지고 짜증을 부렸고 성민은 은주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냈다. 성민은 은주가 대화를 하자고 마주 앉으면 화부터 냈다. 대화의 끝에는 높디높은 벽만이 존재했다.
은주와 성민은 소통할 수 없었다. 성민은 모든 싸움은 은주 때문이라고 말을 했다.
은서로 인해 벌어지는 현재의 모든 상황도 충분히 문제였지만 은주에게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 은주는 성민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고 까칠했다. 은주에게는 애정결핍이 있었고, 우울증도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 별일도 아닌 일에 쉽게 좌절했고,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성민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였다. 성민은 자신의 애주 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술을 마시는 날마다 싸움이 났다.
성민은 술고래로 살다 간암으로 세상을 뜬 자신의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일 년 365일 중 300일을 술을 먹으라고 해도 기꺼이 술자리로 뛰어나갈 사람이었다. 성민은 술에 약했고 남들보다 빨리 취해 장소를 가지리 않고 어느 곳에서나 잠이 들어 연락이 끊겼다. 예민한 은주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은 또 분노로 바뀌었다. 성민은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도 배짱을 부렸고 두 개의 불은 서로를 마음을 까맣게 태워버렸다. 은주는 수없이 이혼을 결심하고 또 이혼을 미뤘다.
은주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민의 문제점들은 이미 다 파악했지만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잘 못 됐는지를 알기 위해서 은주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은주는 자신을 잘 몰랐다. 욕구도, 감정도, 슬픔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40년을 살아왔다. 자신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자기의 방의 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자신을 들여다봐야 했다.
은주가 들여다본 은주의 방은 공허했고 외로웠다. 슬픔으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어린 은주는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