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바다 별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은주는 태어날 때부터 깡 마르고 병약했다. 순자는 은주가 뱃속에 있을 때 9개월 동안 입덧을 했고 엄마가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은주도 뱃속에서 굶다가 나온 듯했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했고 기관지가 약해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래도 지나가는 감기 정도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약 없이 그냥 누워서 견뎌야 했다. 은주의 언니 은경은 콧물 찍 흘리고 지나가는 감기에도 은주는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은주에게 순자는 뭐라도 먹여 보려고 슈퍼에서 달고 말랑한 것들을 사 왔다. 아플 때마다 먹는 단골 메뉴는 복숭아 통조림이었다. 은경은 은주가 아플 때마다 신이 난 듯 은주 옆에 붙어서 먹고 싶은 것을 주문했다.
"야 주댕! 엄마한테 바나나 사달라구 해!"
"나 바나나 안 먹구 싶은데..."
"야! 바나나 비싸서 잘 안 사주잖아! 니가 아플 때 먹구 싶다구 해야지 사주지!!"
"바나나 먹구 싶어?"
"그려! 바나나 먹구 싶다구! 엄마 한티 니가 먹구 싶다구 사달라구 해!"
"나는 먹기 싫은데..."
"이씨!! 그냥 먹구 싶다구 말만 허라구!!"
"알았어..."
순자는 은주가 원하는 대로 요구르트, 바나나, 복숭아 통조림 같은 것을 사 왔고 은주가 아주 조금 먹고 나면 은경과 동생들은 잔칫집에 온 듯이 신이 나서 나머지를 모두 먹어 버렸다.
순자는 은주가 속을 썩이지 않았다고 자주 말했다.
"은주 너는 어릴 적부텀 숙이 깊어 가꾸 엄마 숙을 안 썩였지. 아퍼서 숙썩었지. 생전 말을 안 듣구 말썽을 부린 적이 읎어. 은경이는 뭇난짓을 많이 혀서 혼났구, 은진이는 울어 싸서 숙썩었구, 민철이는 엉뚱헌 짓거리를 많이 혔는디 은주 너는 생전 숙을 썩인 적이 읎었어."
순자는 어릴 적 은주가 속을 썩이지 않았다고 은주에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을 했다.
은주는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의 마음은 녹아내린다는 것을... 그리고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는 자신의 속이 썩은 것이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건강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순자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속을 썩인 적이 없는 딸이었다니...
은주는 어릴 적부터 많이 아파서 걱정을 끼친 것이 미안했고 엄마는 당신의 삶 만으로도 힘들어 보였으니 그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더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은주는 어린 나이에도 아이 일수가 없었다. 천진난만하고 사랑으로 충만했어야 할 어린 시절을 은주는 어른으로 지냈다.
은주는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독립적인 척하며 자라야 했다. 은주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공격해 들어오는 은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악이라도 써야 했다. 순자는 은주가 은경을 깜보고 무시해서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무시당하는 은경을 옹호하고 지키려고 했지 은주가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발로 걷어 차이고 두드려 맞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은주는 순자에게 꾸지람을 들었고 은경의 편을 드는 순자는 이미 은주를 지켜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순자는 은주가 아플 때만 은주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은주는 순자가 걱정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파야지만 관심을 받는 것이 슬프기도 했다.
순자는 은주가 어릴 적부터 다니던 병원을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 혼자 보내기 시작했다. 은주는 똘똘하고 기억력이 좋은데 자주 오가던 길이니 혼자서도 잘하리라고 생각했다. 섬사람들은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중학교 때부터 자취도 시키고 국민학생들도 육지에 혼자 다녀오도록 시켰다. 그래서 섬의 아이들은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았고 일찍 세상을 알았다. 아이로써는 일찌감치 세상에 내 던져진 것이 당연히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섬에서 어항까지는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몸이 약했던 은주는 유독 멀미를 심하게 했고 선실 밖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아 바다에 구토를 하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다. 멀미는 1차로 끝나지 않았고 울렁거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류장에 막 들어온 버스를 타기라도 하게 되면 시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또 차멀미를 했다.
버스에서는 바닥에 토할 수도 없으니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야 했다. 어쩌다 봉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방비로 토하게 되면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도착할 때까지 욕을 먹어야 했다. 섬에서 육지를 오고 가는 시간은 정말 지옥과 같았다. 은주에게 섬에 사는 것이 가장 싫을 때는 언제냐고 꼽으라면 1위는 멀미를 하는 그 순간이었다.
천진의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정류장을 지나쳐 내리지 않을까 긴장해야 했다. 간혹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거나 너무 긴장해 한 정거장 먼저 내리면 걸어서 버스가 가는 길을 따라서 가야 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길이라도 잃어 저릴까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갔다. 겨우 일곱 살에 낯선 곳에서 혼자라는 것이 무서웠고 아직은 스스로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처가 가능할 만큼의 능력을 갖췄다고 스스로의 능력치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덩그러니 혼자가 돼야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까운 두려움이었다. 버스 안에서 간혹 잠이라도 들면 큰일이었기에 가는 길을 기억하려 애쓰고 졸지 않으려고 애를 쓰느라 은주는 오갈 때마다 울상이었다.
천진의원에 가면 한쪽 엉덩이에 주사를 두대씩 맞고,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생인 사촌언니의 자취방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어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섬에서 학교에 다니며 병원까지 다니는 것이 난처한 일이었고 한도 없이 결석만 할 수는 없다며 순자는 병원에서 주사와 주사약을 받고 주사 놓는 방법도 배워왔다.
은주의 엉덩이에 주사는 놓기 위해 아빠인 영식과 순자는 안방에 마주 앉아 주사와 약을 펼쳐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은주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지 못하고 쩔쩔매는 순자를 본 영식은 답답해하며 주사기를 빼앗았다.
"으이그!! 이리 줘봐! 뭘 그 딴 거 하나 뭇 허구 쩔쩔 매구 그려? 그냥 엉덩이 시게 때리구 여기다 노믄 되는 거 아녀! 이렇게 허믄 되지!!"
영식은 은주의 엉덩이를 힘껏 때리고 주사기를 엉덩이에 한방에 냅다 꽂았다. 이미 수없이 병원을 들락거리며 주사를 맞았던 은주는 주사가 무섭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엉덩이에 꽂힌 주사에 깜짝 놀래고 말았다.
영식의 주사 놓은 솜씨는 거칠었지만 다행히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많이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은주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사기를 함부로 딸의 엉덩이에 꽂다니 몹시 기분이 나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목이 터져라 울어 버렸다.
"어이구!! 주사를 그렇게 아무 디나 함부루 노믄 워쩌컨다나? 이? 애가 울잖여!!"
은주의 울음에 순자는 화가 나서 영식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은주의 울음으로 아는 척을 하던 영식의 주사 방법은 잘못됐다고 증명이라도 된 듯 영식은 꼬리를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주는 순자가 영식에게 마음껏 화를 내도록 더 크게 울어 젖혔다.
의도치 않은 대결은 순자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셀프 주사 놓기를 실패하는 바람에 은주는 또다시 병원에 직접 다녀야 했고 학교 출석일수를 겨우 유지해 다행히 유급되지 않고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이후로 겨울이 되면 은주네 안방 약탕기에서는 한약이 끓여졌고 쓰디쓴 한약을 은주는 군소리 없이 열심히 먹었고 병원을 다니지 않을 만큼은 건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