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순자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 순자

순자의 엄마 원희는 어릴 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선비였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버지에게 한자와 일본어를 배웠고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큰오빠는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고, 둘째 오빠는 노름으로 재산을 전부 날려 원희의 집안은 가난해지고 말았다.

원희는 열여덟 살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급하게 결혼을 해야 했다. 원희의 남편 복철은 원희보다 열 살이나 많았고 가난하고 아이가 딸린 홀아비였다. 서천에서 살던 원희는 복철과 결혼한 후 군산에 살면서 아이 셋을 더 낳았다. 첫째는 복철의 아들이었고, 그 뒤로 딸 둘을 낳고 아들 하나를 더 낳았는데 그중 둘째 딸이 순자였다.


원희의 언니는 안면도에서 살고 있었다. 안면도는 꽤 큰 섬인데 육지에서도 가까웠다. 나라에서 간석지를 메꿔 간척한 땅을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어 주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면도로 들어갔다. 원희와 복철은 아이들과 복철의 동생을 데리고 안면도로 들어가 살기로 했다.

안면도로 이사를 갈 때 순자는 네 살이었다. 복철은 가마솥을 지게에 지고 짐 보따리를 양손에 들었다. 원희는 막내아들을 업고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었다. 짐은 무겁고 아이들의 발걸음은 느리다 보니 가는 길은 더디고 멀기만 했다. 순자가 걷기 힘들면 삼촌은 순자를 업고 걸었다. 서천에서 한참을 걸어 광천에 도착해 장날에 안면도와 광천을 오가는 장배를 타고 안면도로 들어갔다. 안면도 이모의 집에 도착했을 때 순자보다 한 살이 어린 이모의 딸 금님이는 마루에서 뛰어다니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모 집에 짐을 풀고 지내면서 새로 살 집을 직접 짓기로 했다. 복철과 복철의 동생은 옆동네 나지막한 산 밑에 집터를 다진 뒤 소나무를 베어다가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다. 순자네 집은 마을과는 꽤 멀었고 주변에는 권식이네 집 한 채뿐이었다. 얼마 뒤 권식이네 집이 불로 다 타버린 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나니 순자네 집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집이 되었다.


원희는 안면도에서 아들 하나, 딸 셋을 더 낳았다. 순자의 형제는 복철의 아들을 포함해서 여덟 형제가 되었다. 가난했고 아이들은 많았으니 먹고살기 위해 집에서 짓는 농사 이외에도 다른 일들을 더 해야 했다. 원희는 남에 집 논 일을 다녔고, 복철은 산에서 곱돌을 캐다가 구들장용 돌로 다듬어 팔았다.


순자는 열 살에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한 살 늦게 호적 신고를 한 데다 일 년 늦게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열 살이었던 것이다. 이종사촌 금님이는 제 나이에 학교에 들어갔고 순자보다 한 살이 적었지만 한 학년 선배가 되었다. 착하고 순했던 금님이는 순자와 친구처럼 지냈고 선배였지만 순자를 꼬박꼬박 언니라고 불렀다.


순자는 논밭길을 지나 산을 넘어 십리를 걸어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안중 국민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간다고 사준 하얀색 칼라가 달린 셔츠와 검은색 치마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책과 도시락을 책보에 싸서 허리춤에 둘러메고 다녔다. 한 시간 가량 걸어서 다녀야 하는 길이었지만 순자는 동생들을 돌보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웠다.


원희는 도시락에 흰 쌀을 아주 조금 섞어 보리밥과 김치를 담아 싸 주었다. 가정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쌀 누룽지를 긁어 간식으로 싸왔고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조금씩 나눠주었다.

"야! 이 거봐라~ 나 누룽지 싸왔다~"

"우아! 나두 좀 주라! 맛있겄다!"

"안돼!! 이거 엄마가 아껴 먹으라구 그렸어! 이거 쌀밥이여! 우리 집은 맨날 쌀밥 먹는다~"

"야! 치사허게 너 혼저 먹을 거믄 집이서 먹지 왜 가져온겨?"

"학교서 배고픙깨 먹을라구 가져왔지!"

"그러지 말구 쫌만 주라~"

"그러믄... 내 말 잘 듣는 애들만 줄 껴!"

"알았어! 니 말 잘 들으깨! 쫌만 주라!"

"그려! 그럼. 너 이만큼 먹어!"

"또 누룽지 먹구 싶은 사람 읎냐?"

"순자야! 너는 안 먹구 싶냐?"

"됐어... 누덜이나 많이 먹어!"

"치! 나두 순자 니는 안 줄란다!"

순자는 누룽지까지 들고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얻어먹으려고 비굴하게 굴고 싶지는 않아 모른 척했다.


순자의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아침에 해가 일찍 뜨면 일찍 학교에 갔고 해가 늦게 뜨면 늦게 일어나서 갔다. 그래도 몇 번 빼고는 지각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니 오히려 너무 일찍 와서 운동장에서 한참을 놀면서 기다릴 때도 많았다.


멀지 않은 해변가 모래사장으로 걸어서 소풍을 갈 때면 원희는 닭장에 계란 한 줄을 장에다 팔아 십리사탕을 사 주었다. 십리사탕은 돌 사탕이라고도 불렸는데 아주 딱딱하고 잘 녹지 않아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고 십리를 걷는 동안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십리 사탕이라고 불렸다. 달콤한 십리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면 순자는 세상 행복했고, 밥은 안 먹어도 좋으니 하루 종일 십리사탕만 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원희는 특별히 부드럽고 납작한 병어에 칼집을 살살 넣어 간장에 쪄서 도시락에 넣어 주었다. 배가 고팠던 순자는 입안에서 살살 녹던 병어 찜이 꿀처럼 달게 느껴졌고 그때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해 고이도로 시집오고부터 병어 찜을 자주 해 먹었다.


뱃일을 하는 섬사람들은 부자가 제법 많았지만 순자네는 섬에 살았어도 나라 땅에서 사는 가난한 농부였으니 생선 반찬도 사 먹기 어려웠고 고기반찬 구경은 더더욱 어려웠다. 오랫동안 길러온 돼지를 잡는 날이라야 고기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밀 농사를 지으면 방앗간에 가져가 가루로 제분해서 장에다 팔았고 남은 것을 집으로 가져오면 칼국수나 전병 같은 밀가루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안중 국민학교는 한 학년에 세반식 있었는데 한 반에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공부도 제법 잘하고 예쁘장하니 귀여웠던 순자를 김정치 선생님은 꽤 예뻐했다. 순자는 학교로 오는 길에 피어있는 들꽃을 꺾어다가 선생님의 책상에 꽂아 두었다. 같은 반 미화는 선생님과 순자의 사이가 좋은 것이 유독 눈꼴시다며 샘을 냈다. 미화는 서울에서 온 선생님의 딸이다. 새침하고 여우 같았던 미화는 순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틈만 나면 시비를 걸고 험담도 했다.

"저 지지배는 선생님이 예뻐한다고 더럽게 잘난 척이야! 재수 없어!"

"저 거봐! 맨날 선생님 책상에다 꽃도 갖다 놔!"

"어우~ 눈꼴셔서 볼 수가 없네! 안 그러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방개고개를 지나가려는데 미화가 6학년 일진 언니를 데리고 나와 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화와 일진 언니는 순자를 때리고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야 이년아! 니가 그렇게 잘났어? 어?"

"니가 뭔데 선생님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구 지랄이야!"

"재수 없는 년! 뒤지게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어?"


괴롭힘에도 기가 죽지 않는 순자를 보면서 바짝 약이 오른 미화는 계속해서 방개고개를 지키고 서서 순자를 기다렸고 폭행의 강도는 점점 더 세졌다.

순자는 무서워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코피가 터져서 오는 것을 보다 못한 원희는 미화네 집으로 쫓아갔다.

"선생이믄 다여? 이? 애를 어쩌케 가르쳤길래! 넘으 애를 이렇게 두들겨 패 갖구 핵교두 뭇 가게 만들구 그려! 이? 이 노므 지지배 나오라 그려! 이? 내가 오늘 이 노므 지지배 다리몽댕이를 뿌러 뜨려 버릴 테니 깨"

"아유...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진정하세요!"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단단히 혼구녕을 내겠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노여워 마시고 여기 좀 앉아 보세요"

미화와 다르게 미화의 엄마는 얌전하고 점잖았다. 잘 타이르겠다고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니 원희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순자가 다시 학교에 가던 날 엄마에게 혼이난 미화는 잔뜩 독이 올라 또 방개고개에 나와 지키고 서 있었다. 순자는 그날 이후로 4학년이 다 지나가도록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김정치 선생님은 순자의 사촌 금님이를 불렀다.

"네가 순자 사촌 금님이니?"

"예!"

"순자는 언제 학교에 오니?"

"글쎄요. 집이 그냥 있는다는디요."

"미화는 이번에 전학 간다고. 순자한테 학교 나오라고 해라. 네가 사촌이니까 순자 좀 데려 올래? 학교는 계속 다녀야지!"

"예! 가서 데리고 올게요!"

"그래 고맙다! 가봐라!"


금님이가 전한 김정치 선생님의 말을 듣고 순자는 신이 나서 다시 학교에 갔다. 선생님의 배려로 순자는 유급되지 않고 5학년으로 그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한참을 공부하지 못한 순자는 5학년 첫 시험에서 47명 중 47등을 했다. 항상 상위권이었던 순자는 자존심이 상했고 만회를 해 보려고 열심히 공부들을 해 2학기 시험에서는 10등을 했고 선생님은 순자를 앞으로 불러 공개적으로 칭찬해 주었다.

"여러분!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시험에서 37등이나 올라간 친구가 있어요! 자! 다른 친구들도 분발하면 이 친구처럼 성적이 올라갈 수 있어요! 최순자! 앞으로 나와 보자!"

"자! 열심히 공부한 친구에게 박수 쳐주세요! 박수!!"


순자는 이후로 미술 그리기 대회에 나가 동상을 탔고, 주산 대회에도 은상을 탔다. 6학년 졸업할 때는 우등상을 받고 졸업을 했다. 순자의 소소하게 행복했던 날들은 거기 까지였다.


순자의 형제들은 모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더 이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순자도 중학교에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국민학교를 끝까지 다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순자는 중학교에 다니는 금님이가 부러웠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을 듣고 공부를 하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는 소리에 금님이가 쓰던 교과서를 받아와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고 방송도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게 되자 결국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말았다.


순자는 국민학교 졸업 후 동생들을 돌봤다. 원희와 복철이 일을 나가면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 두 동생을 돌봤고 막내가 젖 먹을 시간에 맞춰 하나는 등에 업고 하나는 손을 잡고 옆동네 신야리로 모내기를 간 원희를 찾아갔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길을 한참 걸어 원희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면 일꾼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논두렁에 나와 앉아 있었다. 순자와 동생은 밥을 먹는 어른들 사이에 끼어 점심을 얻어먹었다. 점심은 흰쌀밥에 나물 반찬들이 있었고 말려서 찐 커다란 먹갈치 찜도 있었다. 살이 두툼한 먹갈치는 토막을 냈는데도 손바닥보다 크고 먹음직스러웠다. 막내가 딱 점심때 배가 고픈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덕분에 점심도 해결할 수 있었고 맛있는 먹갈치도 먹을 수 있었다.


순자의 고모는 서울 시흥동에 살았고 남편은 운수업 회사의 상무로 일을 했다. 잘살았던 고모는 순자가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면 월급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열일곱 살의 순자는 고모집에서 식모로 일을 했다.

밥하고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돌보고 똥기저귀도 빨며 온갖 궂은일을 했지만 고모는 순자에게 약속한 월급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 주겠다며 계속 미뤘다. 고모부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서울 변두리로 이사를 갔고 순자도 따라갔지만 여전히 월급은 주지 않고 일만 시켰다. 순자가 집에 가겠다고 밀린 월급을 달라고 했지만 고모는 어디를 네 마음대로 가냐고 불같이 화를 내며 더욱 무섭게만 굴었다.


순자는 고모가 집에 없는 틈을 타 고모의 집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버스를 타고 상계동 큰오빠가 사는 집으로 도망을 쳤다. 고모는 순자가 오빠 집으로 도망간 것을 알아채고 상계동으로 쫓아와 노발대발하며 순자를 찾았다. 순자는 고모가 찾아오면 뒷산으로 도망쳐 숨어있다가 날이 저물 때 즘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갈 때마다 순자를 찾을 수 없었던 고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순자는 오빠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오빠는 월급을 줄 형편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다른 집 식모로 떠돌다가 다시 안면도로 돌아와 집에서 일을 도우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