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도의 시집살이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고이도의 시집살이

순자가 스무 살이던 봄 옆동네에 사는 큰오빠 친구를 통해 선을 보게 되었다. 작은 섬들을 이어 간척한 중장리 나배라는 동네에는 영식의 고모가 살고 있었고, 영식의 고모 아들과 순자의 큰오빠는 친구였다. 고모가 중매를 서면 못 산다는 말이 있다며 아들을 시켜 순자와 영식의 중매를 서게 했다. 처음 순자를 만나러 나배로 찾아온 영식은 말끔하고 곱상하니 잘 생긴 데다 양복을 차려입고 가르마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모습이 귀공자 같았다.

"워뗘! 우리 영식이 잘생겼지? 순자보다 시살이 많어! 딱 좋네!"

"넘으 집은 다 굶어두 영식이네는 곳간에 쌀이 썩어 나는 집이여."

"먹구 살 거 걱정 안혀두 댜."

영식의 사촌은 영식이네 집이 부자라고 떠들어 댔다.


순자는 영식을 두 번 더 만났고 부잣집에 잘생기고 멋진 영식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영식은 아버지가 아프시다며 결혼을 서둘렀고, 6월에 영식과 순자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안면도에서 전통 혼례로 치렀고, 사진관에 가서 얼굴을 합성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드레스 입은 사진도 만들었다. 고이도에 들어 가보니 곳간에 쌀이 썩어 나는 것은 영식의 집이 아닌 양자 영배의 집이었다.

시어머니 길려는 좋은 것은 모두 영배의 집으로 퍼다 날랐고 양자인 큰 아들과 살 요량으로 좋고 넓은 땅과 집은 영배가 상속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써 이미 다 넘어간 상태였다. 시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운 지 오래됐고, 시어머니는 둘이고, 아직 어린 동생이 셋인데 장애를 가진 동생도 있었다. 순자는 속아서 결혼했구나 싶었다.


양자로 들어돈 영배는 남이 아니었다. 은주는 양자라고 해서 남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영배는 영식의 아버지인 월출의 동생의 첫째 아들이었다. 월출의 동생은 아들 넷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편쟁이였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출에게 집 지을 돈을 받아 아편을 했고 배를 산다고 돈을 받아 또 아편을 했다.

자기 첫째를 양자로 주고는 돈을 수시로 요구했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돈을 주지 않자 동네방네 욕을 하며 다녔다.

"월출이 저 놈은 내가 새끼 나서 안 줬으믄 논두렁을 비고 죽을 놈인디! 내가 새끼를 줬는디두 염병 헐!! 돈두 안 주구 지 혼저 처먹구 잘만 살어. 퇘!! 워디 을마나 잘 사나 두구 볼 텡깨!"


아들이 더 필요했던 월출은 죽은 둘째 동생의 처를 첩으로 들였다. 사촌들 보다 위에 살아야 기가 눌리지 않는 다면서 윗말에 첩의 집을 짓고 눌러앉아 있는 월출을 보면서 길려는 이를 갈았다. 길려는 서자인 영식보다는 양자인 영배가 낳겠거니 생각하고 영배의 동생들을 먹이려고 물을 길으러 간다며 빈 물동이에 음식을 싸다 날랐다.


월출이 중풍으로 눕게 되자 영배와 영식이 재산 분할을 할 때도 길려는 영식을 설득했다.

"나는 느의 아베 죽구나믄 영배랑 살란다. 맏이는 제사두 드리구 재산두 원래 다 가져 가는겨."

"근디 영배가 너두 재산 준다니깨 그냥 주는 대로 받어. 알겄지?"

영식은 영배와 길려에게 토 달지 못하고 정말 주는 대로 받았다.


영배는 집이 세 채였다. 안면도에 어장 할 때 머무르는 집 한 채, 홍성에 영배의 본처와 아이들이 사는 집 한 채, 고이도에 영배와 후처가 어린 아들 종호와 함께 사는 집 한 채가 있었다. 길려는 월출이 죽고 나면 홍성으로 가서 며느리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월출은 중풍으로 누워서 꼼짝하지 못했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해야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초롱을 들고 마실을 다니던 길려는 월출이 누워있는데도 수시로 밖으로 돌아다녔고, 길려가 나갔다 들어오면 월출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해댔다.

"이년! 워디 갔다가 이제 온겨! 이년!!"

"남편이 아프믄 집이 가만히 드러 앉어서 돌봐야 헐텐디! 어디 싸돌아 다님서 며느리가 사아베 똥꺼정 닦게 만들구 그랴 이년!"

"내가 며느리 보기 챙피혀서 살겄냐 이년!"

월출이 길려가 없는 사이 대변을 보면 허구한 날 집을 비우는 길려를 대신해서 순자가 어쩔 수 없이 대변을 닦아 줘야 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정신은 아직 온전했던 월출은 며느리 보기에 창피하고 화가 나서 길려의 옷이 찢어지도록 쥐고 흔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동네에서 월출의 별명은 까치였다. 부인이나 자식들이 잘못을 하면 윗동네에서부터 아랫동네 집까지 내려오는 내내 욕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도 다 알아야 한다고 깍깍대며 떠들어 까치라고 불렸다.

중풍이라고 들어앉아 꼼짝도 못 하고 있지만 성질은 여전했으니 허구한 날 돌아다니는 길려를 보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길려는 까다롭고 유난스럽기까지 했다. 순자에게 매일 마루에 광이 나도록 걸레질을 시켰고 집안에 먼지 한 톨 있는 꼴을 보지 못할 만큼 깔끔을 떨었다. 길려는 수더분하고 곰 같았던 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질고 날카롭게 굴었다. 영식이 미웠으니 어쩌면 순자가 미운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월출은 순자가 시집온 후 2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2월에는 순자가 낳은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었고 그해 8월에는 월출이 이른 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길려는 월출이 죽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이 홍성으로 갔지만 홍성에 사는 며느리는 허구한 날 술이었다. 시어머니 대우는커녕 주정뱅이 며느리 시중을 들어야 할 판이니 길려는 홍성에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더군다나 자기가 재산을 다 줬는데도 고마워 하기는커녕 술에 취해 큰소리나 치고 있으니 길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홍성 며느리도 고이도로 후처가 들어오면서 집에서 쫓겨 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남편도 없는 집에 시어머니라고 들어앉아 대우받기를 바라니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홍성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던 길려는 순자가 막내아들을 낳자 애들을 봐줘야 한다는 핑계로 고이도 영식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고이도에 영배가 살고 있었지만 영배는 길려를 모시려 하지 않았고, 제사도 드리지 않았다. 기세 등등하고 시끄러웠던 길려는 순자에게 예전만큼 까칠하게 굴지 못했고 조금 기가 죽어 시집살이도 심하게 시키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잘해준 것은 아니었다. 길려는 여전히 며느리와 아들을 업신여기며 흉을 보고 다녔고 손주들을 대할 때도 따뜻함 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길려가 예순셋의 나이로 죽자 영배는 그제서 자기가 모셔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 순자는 이제 와서 생색을 내려는 꼴이 우스웠다.

"살었을 때는 거들떠두 안 보드만 이제서 뭘 모신다구 그런댜? 됐다 그려! 내가 제사꺼정 다 모실 테니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