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남편 영식이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망나니 남편 영식이

영식은 오래전부터 노름과 술을 좋아 하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영일이 죽고 나서부터 영식은 그날 번 돈을 술과 노름으로 그날 다 써 버렸고 어장을 나가서 멸치와 새우를 잡아 와도 그냥 던져두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순자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잡아온 멸치와 새우를 커다란 200리터 드럼 30통의 젓갈을 혼자서 담아야 했다. 8월에 담아 3개월을 발효시켜 11월 김장철에 팔아야 했으니 혼자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뙤약볕에서 순자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젓갈을 담았다. 뱃속에 아이도 있었지만 죽으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혼자 일을 했다.

"어이구... 써글... 내가 이 노므 집구석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구 시집와 가꾸 이 고생을 허구 사는지..."

"어이구... 내 팔자야... 어이구 허리야..."

"내가 이러다 죽으믄 누가 슬퍼나 헐라나 모르겄네... 어이구... 써글..."


11월에 영식은 순자가 담아둔 젓갈을 내다 소매업자에게 팔았고 젓갈은 맛이 좋다고 한 드럼에 10만 원이라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30 드럼을 팔아 300만 원을 받아 들고 영식은 기분 좋게 술집으로 향했고 그날 밤 여자들을 끼고 술을 먹던 자리에서 수표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영식은 하룻밤에 300만 원을 다 쓰고 다음날 느직한 시간에 들어왔다.


영일의 죽음을 보고 망나니가 되어가는 영식을 순자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은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입덧이 심해 먹지를 못하고 앙상하게 말랐던 순자는 몸고생에 맘고생까지 매일같이 눈물이었다. 뱃속에서 열 달을 엄마와 같이 울다 나온 은진이는 태어나서도 매일같이 울기만 했고 아무리 달래도 그칠 줄을 몰랐다.


은진이가 태어났을 때도 영식은 아들이 아니라고 아쉬워했다. 순자는 은주 이후로 아이를 더 이상 낳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나만 더 낳아 보자는 영식의 간곡한 부탁에 은진이를 낳았고 막내 민철이가 생겼을 때 영식은 아들 꿈을 꿨다며 이번엔 진짜 아들이라고 장담을 하길래 또 낳은 것이다.


민철이를 낳고 순자는 영식이 이제 정신을 좀 차리겠거니 기대했지만 영식은 득남주를 내야 한다고 더 많은 술을 마시며 다녔다.

영식의 친구들은 아들도 없다고 흉을 봤었다.

"저눔에 새끼는 워째 션찮으믄 아들 하나두 뭇낳는댜?"

그런 영식이 드디어 아들을 낳았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주를 내느라 바빴고, 술값을 계산하느라 주머니는 날로 가벼워졌다.


순자는 어릴 적부터 교회 다니는 사람이 부럽고 좋아 보였다. 그래도 혼자서 가볼 용기는 없었으니 막연히 부러워할 뿐이었다. 순자 눈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고 뭔가 달라 보였다.

고이도에도 교회가 생겼지만 누구 하나 와서 같이 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유란이네 형님이 교회를 다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순자에게 같이 가보자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다.


"은경아~ 교회 가자~"

대문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며 순자를 부른 것은 큰 아주버니 영배의 두 번째 부인 연화였다. 멀쩡한 첫째 부인을 밀어내고 집에 들어앉아 있다고 사람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라며 손가락질을 하던 터라 연화는 동네에서 어울릴 만한 친구가 없었다. 연화는 순자보다 한 살 어렸지만 순자는 형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연화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드센 동서들보다 순하고 말수가 적었던 순자를 좋아했고 나이도 비슷하니 친구처럼 지내자고 순자에게 스스럼없이 대했다.

연화의 친화력이 나쁘지 않았던 순자는 연화를 종호라고 불렀고, 연화는 순자를 은경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시집온 여자를 부를 때 그 여자가 낳은 첫째 아이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마을에서도 순자는 은경이로 불렸다. 은주는 어릴 적 어른들이 "은경아."라고 부르면 엄마를 부르는지 언니를 부르는지 헷갈리기도 했었다. 사람들이 은경이라고 부르면 용케도 알아듣고 대답하는 순자가 은주는 신기하기만 했다.


연화는 자기가 가는 길에 순자를 데려가려고 마음먹었던 참이었는지 대문 밖에서 들어오며 교회 가자고 순자를 불렀고 연화의 그 말이 순자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순자는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 가자며 들어오는 연화를 따라 교회를 다녔고 연화와도 더욱 친해졌다. 그리고 순자도 옆집 여자를 교회로 데리고 갔고, 어렵게 영식도 데리고 갔다. 영식은 다행히 교회를 계속 다녔고 목사 종길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할 만큼 친해지기도 했다. 교회는 다녔지만 영식은 여전히 술과 노름을 했다.

"교회서 집사 직분꺼정 받은 사람이 노름을 허믄 쓰나? 이제 노름 즘 그만 혀!"

"시끄러... 내가 알어서 헐 텡 깨 잔소리 그만 혀!"

"그눔에 노름은 언제꺼정 헐라구 그려? 이?"

"시끄럽다구 혔다!"

"이제 정신 즘 차리구 살어야 헐 거 아녀! 새끼는 넷이나 나 놓구 맨날 노름 헌다구 돈을 퍼다 나르믄 어떻게 살라구 그려?"

"이런... 써글 노무 여편네가 워따 대구 자꾸 잔소리여! 그려! 그러믄 노름 허는 나는 교회 안 다니믄 되겄네!"

노름을 끊으라는 순자의 잔소리에 영식은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영식이 죽던 날 순자는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고 영안실에 누운 영식 옆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영안실에는 순자와 영식 둘 뿐이었고 순자는 영식이 자고 있는 것만 같아 얼굴도 만져보고 손도 잡아 보았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앉을 것 같아 손을 어루만지며 밤새 영안실에 앉아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어장이 그물 쳐놨는디 그거 나 혼저 어쩌라구 그려... 일어나 봐... 가서 그물 걷어 와야 할거 아녀..."

"이렇게 일찍 갈꺼믄서 뭐 헐라구 새끼를 넷이나 나놨댜... 나더러 새끼들 다 워찌 키우라구 그려..."

"어이구... 죽을 줄 알었으믄서 왜 술을 처먹구 배를 몰구 그랬댜... 그 노므 술이 웬수지..."

"나는 이제 워찌 산댜... 이렇게 대책 읎이 가믄... 나는 워쩌케 허라구..."

"진짜 죽은겨? 그짓말 아니지? 이렇게 멀쩡헌디... 왜 죽었다구 그려..."

"일어나 봐!! 나더러 워쩌라구 그려!! 새끼들은 워쩌라구!!"

"그렇게 숙 썩이 더 만... 갈 때꺼정 이렇게 숙을 썩이네..."

"잔소리 헌다구 승질 즘 부려 봐!! 왜 케 조용혀... 왜 케 조용허냐구... 뭐라구 말 즘 혀봐..."

"여태꺼정 살어 온 세월이 미안두 안혀? 그렁깨 살았을 때 즘 잘 혀 주지..."

"집이 가야지... 언제꺼정 병원이 있을라 그려... 일어나 봐... 일어나 보라구..."

"어이구... 어이구... 나는 워쩌라구 그려..."


새벽이 되어서야 순자는 영식을 데리고 고이도로 들어갔다. 순자는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언제 오고 갔는지, 뭘 먹고 어떻게 잤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울다 지치고 또 울다 지쳤던 시간의 반복이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영식을 산에 묻고 사람들은 빈 상여를 메고 돌아갔다. 이제 순자도 집으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 지질 않았다. 영식을 산골에 혼자 두고 가자니 외로울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나무 사이사이로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순자는 진달래를 한 움큼 꺾어 들고 와 영식의 무덤 앞에 내려놓고 눈물을 훔쳤다.

"외로워두... 혼저 쫌만 있어... 내가 힘들어두... 애들 다... 키워놓구... 그러구 올 텡깨..."

순자는 영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은경과 은주를 데리고 뒤늦게 더벅거리며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