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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Aug 03. 2017

안개 도시의 안개가 걷히고, 사파 1

꿈꾸던 그 곳을 걷다

안개 도시 사파 


사파라는 베트남 북쪽 끝 중국과 맞닿아 있는 이 지역을 소개할 때 꼭 붙는 수식어는 바로 '안개'다. 7월 초 안개가 가득한 사파에 갔다. 안개는 초록의 고산지대 사파를 보여줄듯 보여주지 않으며 더더욱 이곳을 신비롭게 만들었다. 여행은 환상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이다. 꿈꾸던 여행지에 대한 환상과 실제 그 곳에 가서 맞딱들이는 예기치 못한 현실이 섞여 오로지 '나만의' 기억으로 여행은 재조각된다. 그런점에서 자신을 안개로 감춘 사파는 적절한 환상과 안개가 걷힌 현실을 함께 보여주며 나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여행지가 되었다.


안개와 구름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풍경


사파에 대한 나의 환상은 유달리 강했다. 고산지대 속 소수민족이 사는 곳, 아직 여행지로는 크게 주목받지 않아 관광객이 적은 곳, 안개 낀 산과 초록이 가득한 다랭이 논밭의 순수한 자연. 그 곳을 트래킹하는 내 모습을 몇 번이고 그렸을만큼 사파는 2주 동안의 여정 중 가장 가고싶었던 곳이었다. 여행의 가장 짜릿한 순간 중 하나는 사진으로만, 글로만 보던 그 곳을 진짜 내 발로 밟고 내 눈에 담는 그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사파의 풍경 속을 진짜 걷게 된 것이다. 



안개는 동네 애들의 평범한 순간도 특별하게 만든다


그 속을 진짜 걸으며, 사파에 대한 적절한 환상은 안개와 함께 조금씩 걷혔다. 결코 실망했다는 뜻은 아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단연코 낯섦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사건들. 사파는 특별한 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도 아니어서 정보를 이것저것 모으긴 했지만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있었다. 그래서 그 곳을 직접 걸으면서 사파라는 곳이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조금씩 지도가 머리에 들어왔다. 여기가 사파의 시내 중심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이 깟깟마을, 좀 더 들어가면 라오까이, 그 옆에 타반..   



안개가 걷히면 이렇게 초록초록하다


시내 중심부에서 깟깟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했다. 중심부는 공사로 시끄럽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오히려 안개 속에 있는 호텔이 더 조용한 사파다운 느낌일 것이란 생각에서 였다. 사파에 막 도착했을 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판초같은 우비를 샀다. 등에는 2박 3일치 배낭이 있었고, 그 위에 우비를 뒤집어 쓰고 호텔을 찾아 걸었다. 구글맵을 보며 한참 걷다가 가르키는 곳에 도착했다. 설마 저게 호텔인가? 라고 생각한 소박한 건물이라기에도 뭐한 카페 같이 생긴 것이 바로 그 호텔이었다. 블로그에서 본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첫번째 마주한 현실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실내 슬리퍼를 꺼냈다. 그 순간 눈앞에 아주 빠르게 검은 것이 지나갔다. 바퀴벌레였다. 아름다운 자연은 참으로 다양한 벌레도 품고 있었다. 두 번째 현실이었다. 지친 몸을 잠시 침대 끝에 걸쳐 놓으려고 앉았는데 침대 이불부터 축-쳐진 무겁고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온 사방의 안개는 모든 곳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래 여기가 안개 도시 사파구나. 


호텔이다
호텔 앞 풍경
깟깟마을


짐을 대충 풀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가볍게 깟깟마을을 돌기로 했다. 모든 블로그에서는 깟깟마을을 1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마을들은 투어를 신청해야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깟깟은 그냥 동네 산책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갔다. 비는 아까보다 훨씬 더 어마무지하게 쏟아졌고, 덕분에 원래도 조용한 이 마을에 관광객은 정말 우리밖에 없었지만 그냥 가봤다. 마을 입구에서 한 오토바이 기사를 만났다. 오늘의 유일한 관광객을 놓칠리 없다. 마을 둘러보는데 1-2시간 걸릴테니, 자기는 마을 출구에서 기다리겠노라 했다. 유일한 오토바이 아저씨를 우리도 놓칠리 없다. 그래! 출구 쪽 폭포가 있는 다리에서 만나자, 했다. 그게 나비의 날개짓이었다. 그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진 날이었고 그 날개짓이 폭풍우가 될줄은 몰랐다.



비........가 왔다 ㅋㅋㅋㅋ 홍수났나


마을 산책을 한참 하다가 길을 잃었음을 알게됐다. 일단 내가 어딘지 모르겠고, 지도를 봐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데도 없고, 그냥 마을 주민한테 묻기로 했지만 그들은 영어를 못했다. 지도를 손으로 가르키자 대답을 해주는데 영 성의가 없다.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답이 없으니 알려준 길로 한참을 내려갔는데, 내려가도 계속 내려가는 길뿐이었다. 여기가 맞나 아닌가 긴가민가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동네 꼬마들이 팔찌를 들고선 "1달라, 1달라"를 외쳤다. 비와 땀에 범벅이 되고 판초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돈이 있어도 못꺼낼 지경이라 "쏘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애들이 "쏘리, 쏘리" 하면서 내 말을 따라하는데 순간 그게 너무 무서웠다..... 영혼 없고 힘 없고 작은 웅얼거림의 쏘리 쏘리..... ㅋㅋㅋ 깟깟마을의 이방인은 우리 둘 뿐이고, 한참을 내려와 동네 어딘가 깊숙한 곳에 들어온데다가, 날은 어둑어둑해져서 안그래도 간이 콩알만해져있는데 그 쏘리쏘리를 듣고 아 여기 아닌가봐 하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난 어디에 있는걸까


그렇게 돌고 돌아 한참을 헤맸다. 근데 다시 그 쏘리쏘리길이다. 아까 그 길이 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깟깟마을을 뱅글뱅글 돌았다. 1-2시간이면 끝날 동네 산책은 미로찾기가 되어있었다. 오토바이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다리를 찾아 걷고 걸었다. 그냥 왔던 길로 나가도 됐지만, 빗속에서 기다릴 아저씨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필이면 트래킹과 물놀이를 함께 할 여행이라 준비한 트래킹 겸 아쿠아 슈즈는 까끌한 촉감을 자랑하며 내 발에 온 물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따갑고 아팠다. 그래도 그 다리를 찾아야 했다. 덕분에 깟깟마을을 샅샅히 구경하며 걷고 걸었다. 




중간에 만났던 소박하고 예쁜 풍경
중간에 만났던 조금은 무서운 풍경과 흔들다리


약속된 시간에 30분 정도 늦을 거라 생각했지만, 거의 1시간 반을 늦었다. 약속한 곳에 아저씨는 당연히 없었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다시 걸어서 호텔까지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행이도 마침 지나가던 나보다 열 다섯살쯤은 어려보이는(!) 오토바이 기사(!)가 있어서 운좋게(하지만 비싸게) 오토바이를 얻어탈 수 있었다. 가장 쉬운 코스라던 깟깟마을은, 모든 트래킹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코스였다. 


그래 이게 여행의 묘미지. 


몇 번을 그리던 풍경 속에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낯섦. 환상과 현실이 만나 나만의 기억으로 재조각된 험난한 코스의 깟깟마을. 그래도 트래킹 후 먹는 바베큐와 맥주는 정말 꿀맛이었다. 그리고 그 생고생을 한 덕에 숙소의 무거운 습함도 바퀴벌레도 잊고 꿀잠을 잤다. 



여기서 먹고 싶은 꼬치를 골라 구워달라고 하면 된다
꿀맛이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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