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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Dec 03. 2017

안개 도시의 안개가 걷히고, 사파 2

어쩌면 잘 몰라서 더 좋은

사파에 여행을 간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여행이 활발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들 가는,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여행지 말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야하는 그런 곳이 가고 싶었다. 하노이에서 오직 버스/기차로 5시간을 걸려 들어갈 수 있는 사파라는 도시는 여행이 활발한 지역이 아니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정보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그땐 <꽃보다청춘>에 나오기도 전이어서 더더욱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사파를 가기로 했다.


사파 시내에서 깟깟마을이 그나마 가까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 했고, 그 외의 지역은 혼자 가기에는 정보도 부족하고 길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시내의 여행사/호스텔을 둘러봤다. 거기에선 사파 지역의 트래킹 여행을 예약할 수 있다. 보통 1일짜리 코스로, 시내에서 가까운 라오까이 코스 위주이다. 걸어서 라오까이 마을까지 갔다가, 차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반나절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 일정도 넉넉했고, 좀 더 사파를 많이 둘러보고 싶어서 1박 2일짜리의 코스를 신청했다. 여기에는 1일차에 라오까이 지역을 둘러보고 근처 소수민족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후, 다음 날 타반 지역을 둘러보는 것 까지 포함돼있었다.


LAO CHAI 를 지나 TA VAN 지역까지 가는 코스!


전날 험난한 깟깟마을 산책 후에 (사파 1편 참조 : https://brunch.co.kr/@onceaweek/31) 뻗어버린 탓에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호스텔까지 달려왔다. 이윽고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트래킹이 시작됐다!


가장 작은 체구, 가장 큰 배낭


약 10-15명의 일행 중 체구는 우리가 가장 작았고, 배낭은 우리가 제일 컸다. 일단 일행의 대부분은 서양인들이었다. 커플, 가족 다양했다. 동양인은 우리 둘을 포함해 넷이었는데 60대 정도의 일본 아저씨와 50대 정도의 한국 아저씨였다. 그런데 배낭은 우리가 제일 컸다. 그 중에 1박2일 일정이 우리 둘 뿐이기도 했고 (나머지는 모두 하루 코스) 알고보니 짐을 보통 예약한 호스텔에 맡기고 몸만 가뿐히 오는 것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도 몰라서 우리는 캐리어는 하노이 호텔에 두고, 사파에서 머물 총 3박 4일의 짐을 배낭에 모두 넣어 가지고 다녔으니..! 어깨가 정말 빠질 것 같았다.


빨간 우비가 나다.  유난히 등이 굽어보이는 건 배낭때문..


트래킹하는 날은 우기여서 비가 계속 쏟아졌다. 처음엔 우산을 쓰기도 했지만 진흙길에 들어서고부턴 그냥 비를 맞았다. 물론 판초같은 우비를 쓰긴 했지만. 소수민족 가이드 3-4명이 함께 이동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체구도 작은 여자 아이와 함께 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한 14-15살? 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나이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작은 체구 때문이겠지.


산길에 진흙탕이라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길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의지해 걸었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폭에 온통 미끄러운 진흙 길. 잘못 미끄러지면 그 길 아래로 쭉 미끄러져내갈만큼 경사가 가파른 곳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가기도 했고, 결국엔 넘어져서 온 몸이 진흙과 비에 절었다. 거기다 등에는 약 10kg의 배낭이 있으니 몸을 지탱하는게 여간 쉽지 않았다. (만약 가는 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짐은 호스텔에 맡기고! 장화를 신고 가기를 추천한다.) 가이드들은 길이 익숙해서인지 한 손에는 우산을 쓰고서도 잘 걷는 것이 신기했다.


진흙 길의 시작.. 이후로는 한 사람만 갈 수 있을 정도의 폭에 진흙이 가득한 길이었다


그렇게 2-3시간을 걸었을까. 점심 먹을 마을에 접어들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멎게할 절경! 까진 아니지만, 초록의 다랭이 논밭과 안개가 이리저리 움직여 만드는 풍경들은 소박하고 신비로웠다.


안개가 이리저리 움직여 만드는 찰나의 풍경들


점심을 먹고 마을을 둘러봤다. 우리를 가이드해주었던 분들은 아마도 라오까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이라, 라오까이에서 모두 헤어졌다. 내 손을 꼭 잡아줬던 어린 친구와도 헤어졌다. 마지막에 고마움의 의미로 그녀가 만들었다는 가방을 샀고, 그녀는 선물이라며 팔찌를 줬다. 그때 사실 뭔가 마음이 벅찼는데, (와- 우리 정말 같이 고생길 걸어서 친구가 된 것 같아, 이런 마음이랄까) 나중에 마을 시장에서보니 5배 가격을 주고 산 것이었다. 그치만 그날 진짜 역대급 고생을 해서였는지 바가지 썼단 생각도 안들고 그냥 고마움의 의미로 생각했다.



내 생명의 은인 친구! 아래 왼쪽은 저 친구에게 산 가방, 오른 쪽은 선물로 받은 자수 팔찌


나머지 일행도 모두 시내로 돌아가고, 가장 대장(?) 같았던 가이드와 우리 둘만 남았다. 우리는 홈스테이를 하기로 한 마을까지 더 걸어야한다고 했다. 나는 당시 아쿠아 슈즈를 신고 있었고, 신발 재질이 까끌해서 온 발이 다 까진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반창고를 빌려줘서 3-4개의 다 다른 종류의 밴드를 발에 10개는 붙였지만 비가 온 탓에 다 떨어져 발은 이미 상처 투성이였다. 그때 그 대장 가이드가 말했다.


쉬운 길로 갈래, 어려운 길로 갈래?


우린 망설일 것도 없이 쉬운 길! 이라고 외쳤다. 알고보니 우리가 걸어왔던 라오까이로 가는 길 역시도 잘 포장된 도로로 올 수도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자연에서 가까이, 직접 경험하면서 보고싶어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진흙 길 코스로 오는 것이라고...! 돈 주고 일부로 어려움을 산다니, 약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트래킹 여행객들은 아마도, 그 진흙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면서 어쩌면 소수민족을 불쌍히여겼을수도,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감사했을 수도. 이런저런 조금은 불편한 생각들이 들었다.


대장 가이드는 정말 멋있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 어떤 험난한 길도 어디에 발을 짚으면 쉬운지 알고있는 능숙함, 마을 사람들과 여행객들을 적정한 거리로 이어주는 신중함 같은 것들이 사근사근한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무뚝뚝한 성격임에도, 그녀를 자연스럽게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느껴졌다. 무튼 타반까지는 잘 포장된 도로로 마을을 설렁설렁 둘러보면서 걸었다.


대장 가이드 언니


타반에 도착했을 땐 비가 그치고 날이 갰다. 3박 4일 트래킹 중 유일하게 아주 잠시 해를 보았던 날. 맑은 하늘이 유일했던 곳이 타반이어서일까, 왠지 타반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로 기억에 남았다. 몇몇 가보고 싶은 술집도 있었고 말이다. 밤에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술집 있는 마을까지 차마 내려갈 엄두를 못낸게(홈스테이했던 집은 마을 언덕 가장 꼭대기에 위치했었고, 옆에는 계곡이었다) 아쉽다. 내 생에 다시 사파를, 그중에서도 타반이라는 마을을 다시 갈 날이 있을까?


맑게 갠 타반 마을
개팔자가 상팔자 :)
바로 저 바! 밤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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