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kok, Thailand
막상 가본 카오산로드는 예상보다도 더 훨씬 소박한 곳이었다. 조금은 덜 세련된, 홍대의 ‘걷고싶은 거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태국임에도 서양인이 많이 다니는 모습은 흡사 이태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방콕의 왕궁이나 새벽 사원처럼 시간이 지나면 마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박힐, 그런 랜드마크적인 곳은 아니었다.
카오산 로드는 하루이틀로는 그 매력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적당히 오랜 시간동안, 거리를 거닐면서, 작은 마사지샵에서 발마사지를 받으며,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렇게 해야만 다른 여행자들을 조금이나마 더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바쁜 단기간 여행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구경거리는 되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카오산 로드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 박준 님의 <On the Road>라는 책은 다른 여행도서와는 상당 부분 차별화되어있다. 장소가 중심이 되는게 아니라 장소를 기반으로 한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오산 로드에는, 정작 <On the Road>라는 책에서는 빠져있는,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 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었다.
그 곳에서 삶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쉽게도 웃음과 미소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그 시간동안에는. 활기를 띄고 웃음을 짓는 사람들은 단지 노란머리의 코부리 서양 여행자들이었을 뿐.
그들은 커다란 베낭을 짊어지고 와서, 먹고 마시고 쉬고 즐긴다. 이 모든 것들이 상인과 여행객이라는 신분과 상황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내가 두 부류의 사람들이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실 비단 카오산 로드 뿐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짧은 여행들을 하면서 소위 ‘아직 덜 세련되었다고 느껴지는 나라들’ – 가령 태국이나 캄보디아라든가 – 을 여행할 때 현지의 사람들은 웃음짓지 못했다.
캄보디아 톤레삽에서 배를 몰던 그 작은 아이도, 태국 파타야의 산호 섬으로 가기 위한 배에서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은 채 배를 몰고 있었다. 아마 일가족이 모두 그 배로부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분명 그들의 눈에서 어딘가의 간절함을 보았다. 무기력함을 보았고, 부족함을 보았다. 아마 여행객들이 거기에 애초부터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남미의 역사를 알게 되면, 콜럼버스는 대단하기 보다는 파괴자로 다시 보인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낯선이에게 아무것도 모른 채 ‘one dollar’하면서 손을 내미는 이 아이들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추측컨데 결국 여행자들은 이렇게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여행자는 틀림없는 이방인이다. 여행자로써의 윤리는 그러기에 분명히 존재한다. 나의 기준과 생각, 나의 규율이 언제든지 뒤엎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잣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하려 한다. 세상이 넓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조금 더 많이 현지의 사람들을 알고 싶다. 택시기사분께 흥정도 흥정이지만 말이 비록 안통해도 가볼만한 곳들을 묻고 싶고, 현지의 식당에서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한 마디 더 해보고 싶다. 대화야말로 돈이 매개가 되지 않으면서 가장 흠뻑 현지에 젖어볼 수 있는 간단하고도 멋진 방법이다.
그렇게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다.
2017년 1월, <떠나, 오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