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환경 속에서 들어보기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시간이 하루 중 제법 된다.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출근 후 개인업무 중, 퇴근하면서, 카페에서, 자기 전에는 여유롭게 스피커로, 음악만큼은 한 번 꽂힌 음악을 계속 듣는 버릇이 있어서, 사실 어떻게 보면 뇌를 쉬게 해주는 데에는 좋지만 그렇게 생산성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외국어가 배우고 싶어 스페인어를 난생 처음 시작했다. 학교에는 스페인어 전공과가 있었는데, 그 곳의 1학년 수업부터 들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알아가고 한 문장 한 문장 완성해갈 때마다 기분이 새로웠다.
외국어에 대한 남다른 열정, 아니 사실 열정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비루할 정도로 이렇다하게 잘하는 건 없다. 수 차례의 배낭여행과 새로운 인격체에 대한 극도의 호기심이 불러낸 거의 10여개 언어의 아주 기초적인 회화 몇 마디가 전부. 중국어로 "너무 비싸요", 크로아티아어로 "여기 큰 생맥주 시원하게 한 잔 주세요." 터키어로 "저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어요.", 튀니지의 아랍어로 "이 덜 떨어진 놈아." 등. 그냥 그것만 기억나는 것.
여튼 그 와중에 영어 다음으로 그나마 쓰는 것은 일본어와 스페인어이다.
몇 년 전, 스페인어 공인인증시험을 준비했다. 부전공으로 계속 가져가는 것을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 취미로 배우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해서였다. 원서 책을 사서, 없는 돈 쪼개가며 2주일에 1회 정도 스페인어 과외를 받았다. 사실 상 혼자 공부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독해나 듣기 같은 경우에는 그냥 반복된 연습만이 개선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향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험을 위한 공부가 못내 지겨워졌다. 하고 싶은건 그냥 그 나라에 여행을 가서 그 나라 말로 어느 정도 떠드는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말도 안되는 지문을 읽고 독해문제를 풀고 있었다. 훗날은 도움은 되겠지만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도가 없을까 하던 중 우연히 교양 수업시간에 알게 된 스페인 공영 라디오 채널이 있었다. 이름이 기억이 안나 한참을 찾다가 겨우 발견했다. 채널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뉴스 위주로 듣다가 보니 안 들리는 말에 귀가 소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대체재를 찾던 중 클래식 채널이 보였다.
클래식 채널은 10분 정도 곡이 흘러 나온 후 약간의 코멘트가 있는 구성이었는데, 반복되는 단어들이 유독 귀에 잘 들어왔다. 예를 들면, '모짜르트', '교향곡', '비올린(바이올린)' 등. 적어도 듣는 곡이 무슨 곡인지는 알 정도. 낯선 언어 속에서 캐치하는 어떤 정보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까탈스러운 인간이란 존재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이, 참 어렵다. 다 들려도 싫고, 다 안 들려도 싫다. 영어만 하더라도 원서 책을 읽는데 아예 생판 모르는 단어들 투성이라면 아예 읽기가 싫어지고, 너무 뻔하면 재미없다고 안 읽는다. 이성을 만날 때도 너무 뻔하면 매력없다고 하고, 너무 반응이 없어도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어느 접점 혹은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와 균형을 잘 찾아나가는 미묘함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스트레스가 0인 상태도 죽음 이외에는 없다고 하는데, 그 정말 표면장력과도 같은 예리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으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그런 것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였을 때 발견의 기쁨, 그리고 조금 비약하자면 행복감까지 느껴지진 않을까.
그리고, 내 글도 그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