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나의 그 날을 상상하다
대학교 다닐 때는 사실 누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 없는 살림에 축의금 낼 여력도 없었다. 밥먹으러 오라는 선배들의 말이 어린 마음에 부담으로 느껴졌다. 혹시나 나중에 그 분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다. 마음에 없어서 안 갔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돈을 내거나 하기가 좀 조심스러웠다. 잘 맞춰진 양복 한 벌 없는데 가서 내가 축하할 모양새나 되는지 한참을 돌아보았다.
사실 그런 경위로 고등학교 2,3학년 내내 내 옆에서 나를 챙겨주던,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 가장 친했던 친구의 결혼식 또한 가지를 못했다. 의가 상했을 것이다. 한 켠에는 내가 뭐하는 놈인가 싶었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잘 만나던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솔직히 몇 푼 아껴서 갈 만도 했는데, 내가 나를 그 친구에게 보일 자신이 없었다. 당시 내 모습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오니, 갑자기 결혼식이 밀려닥친다. 하나 둘씩 가보기 시작했다. 월급도 있고 번듯한 옷도 있고, 어느 정도의 키치한 소셜함도 겸비했으니, 내가 나한테 자신이 있었다.
대학 시절 나를 너무도 잘 돌봐주던 그 선배도 작년 가을에 결혼식을 올렸다. 선배는 특별히 나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했다. 나는 선배의 결혼식의 A부터 Z를 모두 동행했다. 식을 올리기 4달전부터 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스냅웨딩사진을 찍던 그 곳부터, 지금은 형수님인 그 분의 댁에 함진아비로 갔던 것, 결혼식 당일날도 말도 안되는 똑딱이 디카로 온 성의를 다해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이 선배의 결혼식이 딱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 정말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을 꼭 해봐야겠다, 살면서. 애석하게도 그 결심을 먹었던 때에는 마땅한 사람이 곁에 없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시작했다. 하객을 빙자한 결혼식 염탐.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이상형과 100%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지금도 이상형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선뜻, 아주 클리어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건, 1. 바라는 게 너무 많거나 2. 바라는 게 너무 없거나 일 것이다. 전자일 가능성이 좀 더 유력한 가운데, 이제부터라도 내가 마음 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배열한 후, 우선순위를 매겨보고, 나의 모습 또한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 및 배열 후, 그에 맞춰서 세 줄 요약 정도로 원하는 사람을 규명한다.
누구를 부를 것인가.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잘 몰랐던 부분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결국 결혼식도 일종의 '파티'인데,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가 결정한다. 신랑과 신부도 이 부분을 굉장히 신경쓰는데, 여기서 인지부조화 급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과, 초대를 받았을 때 올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른 듯. 미리 준비해서 식전에 손님을 충분히 맞이할 수 있을까. 한 명 한 명 전화를 돌리며 감사인사까지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장소는 어디로 잡을 것인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음식이 잘 나오는 곳이 맞다. 자신없으면 잔치국수 한 그릇 레벨로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선택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마음같아선, 강원도 어귀의 작은 펜션을 하나 통째로 빌려서 (그렇다고 내가 원빈이고 신부가 이나영일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그 어떤 최소공배수 같은 느낌의, 최측근들만 불러다가 다같이 신나게 축복하고 싶다. 물론 부모님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 만약 지방이라면, 서울에서 버스나 편리한 교통편을 보조하는 것은 하나의 특급센스. 가는 편 오는 편 차 안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정성스레 준비한다면 먼 길도 웃으면서 갈 수 있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
키가 작기에 걱정되는 부분. 턱시도가 생각보다 키 작은 사람한테 그렇게 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고민이 된다. 구두는 뭘로 신을지, 머리 스타일, 안경은 어떻게 할지, 그 전에 라섹을 좀 할지, 신부는 신부가 원하는 드레스와 최대한 가까운 것을 입을 수 있는지, 누구보다 행복하게 결혼식에 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지. 너무 꽉 조여도 좋진 않아보였다. 그럴려면 사전에 좀 체중조절을 해야하는 건 맞다. 피로연때 한복까지도.
결혼식 구성은 어떻게 할까.
주례는 없이 할까. 사회자로는 어떤 친구를 부를까. (한 녀석을 유력하게 정해놓긴 했지만) 신부에게 노래를 불러줄까 말까. (괜히 어줍지 않게 준비했다간 이도저도 아닌 것 같다) 만세삼창을 할까 말까. 축가/축하연주로 누구를 부를까말까. 깜짝 이벤트를 할까 말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인가.
살짝의 떨림은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둘 것인가. 완벽한 짜임을 위해 엄청난 사전 마인드컨트롤과 예행연습을 준비할 것인가. 나의 신부는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으로 결혼식에 임해야 우리가 행복할까. 부모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는 99.9% 눈물을 보이실텐데 그럴 때 나는 울지 않고 얼마나 잘 안아드릴 수 있을까. 결혼식 이후의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더 달라질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선배들 덕택에, 많이 상상한다. 많이 배운다. 행복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워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