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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Jun 03. 2016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를 읽고

가끔씩 언급한 이야기지만, 하루키 씨는 제가 펜을 들고, 키보드에 양 손을 올려 무언가를 써보게 했던, 제 짧은 인생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입니다. '잡문집'이라는 책에서, 정말 여기저기에서 그가 말하고 쓰고 했던 것들은 모여 마치 그의 생각 하나하나가 싱싱한 재료처럼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툴지만 조금씩 나를 펴보는 약 5년의 세월이 지나고, 올해 초 서점에서 발견했던 그의 새로운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의 제목부터 견고하고 야무진 부분이, 그간 그가 글을 써오면서 느꼈던 수만가지의 생각을, 어떻게 보면 소설가라는 직업 안에 깔끔하게 잘 정리하진 않았을까 싶어, 안에도 쳐다보지 않고 사버렸습니다. (실제로 하루키 씨는 이 책 안에서 나처럼 '하루키'라는 이름을 보고 책을 사는 행위에 대해 본인이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사실 이렇습니다. "나는 그냥 어쩌다보니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가가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직업으로서, 장기적으로 소설을 쓰려면 어느 정도의 패턴과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이는 어떤 체계화된 훈련보다는 본인이 경험을 통해 얻은 수에 착안한다."정도입니다.


더욱이 효율성과 어떤 매우 논리적인 이성에 입각했기 보다는, 혼자서 생각하는 나름의 기준과 시스템에 따라 이야기는 완성되고, 소설가의 삶은 흘러갑니다. 현대에 있어서 어찌보면 참 비합리적인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왜 이 블로그, 혹은 어딘가에서 우리는 자꾸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


일종의 노출증입니다. 표현을 하고,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죠.


특히나 제가 쓰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 중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는 제가 평소에 고민하던 어떤 본질적인 생각들을, 마치 해저에서 석유를 시추하듯, 매우 깊은 의식 속에서 끌어당기는 무언가입니다. 실제로 D 형과 술을 마시다가, 취기에 한 말이 생각납니다. "형, 나는 글을 쓸 때 슬픈 것 같아. 쓰고나면 오히려 아프고 쓰려."


마치 상처가 나거나 피부가 긁혀서 그 속살이 공기에 닿으면 쓰린 느낌이 들 듯, 글이라는 걸 쓰면서 나의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놓으면, 표피 안에 숨어있던 그 속살의 생각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태를 하면서, 나는 어느 수준에서는, 어떠한 방향으로는, 성장해가고 있다고 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어떻게 해서 글을 잘 쓰는가.


'글을 잘 쓴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척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설명해달라고 해도 사실 명쾌한 답변은 없지요. 추측하건데 가장 가망이 높은 것들은, 가독성, 공감대 형성, 창의성 입니다. 하루키 씨는 사실 세 가지에 모두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저에는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같은 것을 보아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향과 역량이 다른 사람과는 현저히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나 또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흉내를 잘 냅니다. 성대모사가 될 수도 있고, 말버릇처럼 반복되는 몇 가지 단어들을 잘 잡습니다. D형 역시도 '암튼'이라는 말과 'ㅋ'라는 말을 잘 씁니다. 특히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요. ㅋㅋㅋㅋ 를 너무 쓴다고 느낄 때쯤은, 그럴꺼면 그냥 말을 말라고 하던가 하고 뾰루퉁하거나, '암튼'이라는 말을 쓰면 어딘지 계속 우리가 진행하던 대화를 매듭짓는 것 같은 느낌에 좀 그런 말을 덜 쓰라고 이야기도 합니다.


'암튼' 그런 관찰력과 기민함은 어떤 주어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입니다. 이건 그래도 내가 자부할 수 있는 나만의 기술이라면 기술이죠. 최고는 아니지만 평균 이상은 된다고 봅니다.





실제로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글을 쓰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실제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이 생각보다 '글을 쓰는 데'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뭐 긴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마치 그냥 인생의 하루하루가 그냥 그렇게 가듯, 펜 끝도 그렇게 가는 것 같습니다. 문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아마 나의 글은 수술대에 올려져 '인공'적 모습을 띄겠지요. 그런데 다행인 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이런 글 또한 좋아하고 공감해준다는 겁니다.


하루하루 맞이하며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듯이, 글 또한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 책으로부터 더 확고해집니다. 그냥 막 쓰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브런치의 핫 키워드 '퇴사', 퇴사를 하고 싶다를 한번 펼쳐봐도 좋고, 오늘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먹고 싶은 것을 써봐도 됩니다. '영양가'있는 글이라는 소리를 듣진 못할 순 있어도, 어쨌든 나는 나를 한 번 완성해본 것이니까요.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막 쓸 순 있어도, 막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네요. 좀 그래도 될텐데. 글쓰는 것이든 하루를 사는 것이든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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