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젊음사랑> - 이세계
여행을 떠났다. 멤버는 뜬잡모(뜬구름 잡는 모임) 요원 4명. 영국의 '구름감상협회'에 착안하여 만든 이 모임은 예쁜 구름 모양을 발견할 때마다 단톡방에 사진을 올려 공유하는 모임이다. '아무리 바빠도 하늘은 보고 살자'는 모토 아래 2021년 설립되었다. 슬로건은 '뜬구름 잡고 자빠졌네'. (모임의 모토와 슬로건이 마음에 들어 내가 만든 사업체 이름에도 '뜬구름'을 넣었다. 3월부터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가 아니라 '뜬구름 에듀테인먼트' 대표, 정한량이다.)
하는 일은 별 거 없다. 예쁜 구름을 발견했을 때, 단톡방에 올리면 끝이다.
구름 사진에 따른 보상? 없다. 구름 사진 안 올리면 벌칙? 없다. 회비? 없다. 계획? 없다. 이토록 무해하고 무용한, 무대책 비영리 민간단체라니.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은 한량이 꿈이다. 이름도 한빛에서 한량으로 개명할까 고민 중이다. 눈치챘겠지만, 그 인물이 바로 나다. 그날의 여행코스도 내가 짰다. 음악 취향도 비슷하고 모든 구성원이 민주적인 우리는 여행 BGM도 돌아가며 튼다.
그날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다음 코스로 이동 중이었다.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중
뜬잡모 요원 A가 말했다.
"요즘 이 노래, 인스타랑 유튜브 BGM으로 자주 나오더라. 너희는 '낭만, 젊음, 사랑' 중 뭐가 젤 중요한 것 같아? 난 젊음. 젊으면 사랑도, 낭만도 참 쉽잖아. 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오케이. 너는 청춘파구나. 접수.
요원 B가 맞받아쳤다.
"나는 사랑. 사랑에 빠지면 젊어지잖아?그럼 낭만도 자동으로 따라오지."
오, 요원 B. 너한테 이런 면이. 너는 심수봉('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노래를 불렀다.)파. 접수.
운전하며 듣고 있던 한량이 말했다.
"나는 곧 죽어도 낭만. 낭만만 있으면 죽기 직전까지 젊게 살아갈 수 있어. 낭만에 빠지면 세상 모든 걸 사랑할 수 있지."
역시 나는 곧 죽어도 낭만파다.
그 낭만파 청년이 프리랜서(라 쓰고, 자발적 백수라 읽는다)전환을 며칠 앞두고, 학교를 찾았다. 아직은 학교 소속이니까. 학교 운영위원회에 올릴 자료를 결재받기 위해서였다. 행정실장님이 반겨주셨다.
"선생님, 그만두시더니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햇살 하나에도 웃음이 절로 나와요."
당분간은 지금의 기분을 만끽하련다. 어디선가 '얼어 죽을, 낭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소리가 들리면, 일은 그때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일단,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