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욕망이 투영된, 내가 갖고 싶어 해서 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물건을 갖고 있는 내가 갖고 싶었음'을 깨닫게 되는 소유물 말고, 순도 100%짜리 내 소유욕만 들어간 그런 소유물.
나에게는 그런 게 딱 2개 있다.
하나는 클래식 바이크 로얄 엔필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브래드피트가 클래식 바이크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을 본 순간 이후, 내 마음도 로얄 엔필드를 타고 지구 어딘가를 질주 중이다.
또 하나는 캠핑카. 캠핑카를 사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은 ‘돈이 많으신가봐요?’라고 하겠지만, 나에겐 전제조건이 하나 붙는다. 은퇴하면 '집 대신' 캠핑카를 하나 사서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살고 싶다. 이제는 감히 실행해 볼 엄두도 안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같은 삶도 캠핑카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지루한 일상을 버틴다. 요즘 캠핑카 수요가 늘어나면서 캠핑카 가격에 거품이 빠지고 있어 내심 기대가 크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그 외에 집, 차, 시계, 옷, 가방, 각종 수집품 등에는 아무 욕심이 없다. 서른 초반에 나에게 소유욕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미니멀 라이프의 비우는 즐거움을 매순간 느끼며 살다가, 뒤늦게야 깨달았다.
나에게 소유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내 소유욕의 정체는 '시간'이었다.
난 갖고 싶은 건 별로 없는데,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이제 100개를 향해 달려가는 내 버킷리스트 중 갖고 싶은 건 단 2개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고 싶은' 것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바다도 보고 싶다. 물론, 가족도 보고 싶다. 어떤 날은 걷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달리고 싶고, 파도가 치는 날엔 서핑도 가고 싶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엔 자전거도 타고 싶고, 햇빛 좋은 날엔 여행을 떠나고 싶다(솔직히 여행은 늘 떠나고 싶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내 입가에 평생 마르지 않는 웃음 샘을 선물해준 두 딸 덕분에 행복에 겨워 사는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오롯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늘 아쉬웠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육지에 있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무덤덤히 말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운 타인'으로 기능하는 유럽식 가족주의를 추구하는 나는 주말마다 올라가겠다며 무심한 듯 그러라고 했지만, 질문을 하나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애들은?"
"내가 데리고 갈게요."
'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여기까지가 얼떨결에, 평생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사연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대가로 지불하고, 그동안 살아보고 싶었던 삶, 내게 필요 없는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하루를 채워 시간을 소유하는 삶을 살아볼 기회! 이런 건 아무한테나 오는 게 아니다. 갑자기 소유하게 된 시간들을 어떻게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소설가 성석제의 책 제목)으로 빚어낼지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생활의 기본 틀부터 그려봤다.
역시 나는 미니멀 라이프가 체질에 맞다.
미니멀 라이프 :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
(Daum 검색)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는 배낭 하나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