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의 예술 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측은지심(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마음)은 수천 년 전 맹자도 이야기했던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이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 차이이기도 하다. (동물에게도 공감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동물은 사람처럼 다른 생명체에 감정을 이입하여 공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가진 것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베푸는 마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텁텁하다. 사랑이 증발한 자리에 건조하고 삭막한 바람이 불어와 희망이라는 단어 위에 잿빛을 덧칠한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가진 것은 늘어나는데 왜 베푸는 마음은 점점 줄어드는 걸까? 어려서부터 느껴온 한국 사회 특유의 '정'을 왜 지금은 느끼기 힘든 걸까? 나 어릴 적, 부모님께 일이 생길 때마다 날 대신 봐주시던 옆집 아주머니는 어디 갔을까? 없는 돈 모아 우리 반 가난한 친구들에게 군것질 거리를 사주던 나는 또 어디로 갔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버린 악성 전염병에 나도 걸려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가 단기간 안에 경제 성장을 이뤄내고 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이 전염병은 1998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멀쩡하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타인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부자 되세요'가 국민 유행어가 됐고, '당신이 사는 아파트가 당신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따위의 가시 감춘 말들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을 잠식해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멀어져 갔다.
IMF 사태는 있는 사람은 돈을 더 벌고 없는 사람은 가진 것 마저 잃게 되는 구조적인 모순을 구축했다. 전염병의 바이러스가 퍼지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때맞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과 돈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부지불식간에 사람이 돈을 낳는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낳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을 돈에만 두고 일생을 돈만 좇는 증세를 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설사 그들이 평생을 써도 모자를 거금을 손에 거머쥔다 해도 그 욕심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 전염병의 이름은 어플루엔자(affluenza). 풍요를 뜻하는 어플루언스(affluence)와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로, 소비 중독 증상을 뜻하는 말이다.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탐욕이 빚어낸 질병으로, 주요 증상으로는 무력감, 과도한 스트레스, 쇼핑 중독, 우울증 등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당신이 어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준비했다. ‘예’라는 대답이 많을수록 위험한 상황이다.
․ 나의 재산과 다른 사람의 재산을 자주 비교한다.
․ 뭔가 소비할 것이 없으면 따분하다.
․ 그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그 사람만큼 중요하다.
․ 쇼핑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 대체로 사람보다 물건을 자주 생각한다.
․ 금전관계로 가족과 자주 다툰다.
․ 내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는다.
․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보다 그 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어플루엔자 자가 검진 테스트'를 찾아보면 보다 다양하고 세부적인 자료가 나올 것이다)
만약 어플루엔자라는 전염병이 실제로 존재하여 세계 보건기구에서 전염병 지도를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분명 위험 국가로 분류될 것이다. 이 병을 치료하는 백신은 진정 어디에도 없는 걸까? 나는 의외의 곳에서 백신을 발견했다.
소유냐 존재냐
독일 출신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과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유 양식이 사람들 간에 갈등과 소외를 낳고 사람조차 소유물로 보게 하여 결국 사람을 고립시킨다고 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존재 양식(삶에 대한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함으로써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살기 바라는 마음을 책에 담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나는 소유와 존재 중 어디에 가까운 사람일까? 오랜만에 버킷리스트를 들춰봤다. 버킷리스트 대부분이 하고 싶은 것들이었고, 소유하고 싶은 것은 2개뿐이었다. 하나는 캠핑카, 또 하나는 클래식 바이크 로얄 엔필드.
집 평수를 줄여서, 차의 배기량을 줄여서 그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일정 금액은 어려운 사람을 도움으로써 나의 존재 이유를 느끼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의 방식임을 깨달았다. 좋은 집, 좋은 차를 일생일대의 꿈으로 말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 자기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 눈에 행복해 보이려고 목매는 사람들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나도 처음부터 소유욕이 작았던 것은 아니다. 나야말로 한때 소유에 집착하던 사람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아끼면 잘 산다’는 경제관은 확고해서, 미래를 대비해 일단은 아끼고 모아두자는 경제관념을 갖고 있었다. 순전히 돈 자체에 대한 소유욕이었다. 돈을 쓸 줄 모르니 돈이 쉽게 모였지만, 그 돈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한마디로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바르게 쓰는 법을 몰랐다.
나의 경제관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호주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사람을 잘못 믿은 죄로 한순간에 빚을 떠안게 됐다. 멘붕이 찾아왔다.
큰돈을 허공에 날려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일단 큰돈을 날리면 초기 증세로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하아... 그 돈이면 ~할 수 있는데... 그때 ~하는 게 아닌데... 차라리 그전에 미리 다 써버릴 걸... 애초에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후회라는 감정은 그래서 위험하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마음의 닻을 내린다. 그 닻을 스스로 끊기 전엔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끊고 싶었지만, 끊는 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여기서 후회를 거듭하고 지난날에 매어버리면 그곳에서의 시간들마저 무의미한 게 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보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내가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의 밤하늘과 유난히 차가웠던 밤공기를 기억한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와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지난날은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의 삶의 방식은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마음의 닻을 스스로 끊어냈다.
마음 한편이 쓰라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그저 새로운 삶으로 향하기 위한 레슨비를 치른 거라고. (레슨비 치고는 금액이 크기는 했지만, 금액이 적었다면 그만큼 깨달음과 변화의 크기도 작지 않았을까?)
삶은 마음가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날부터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다. 현실에 떠밀려 비우는 삶을 살게 됐을 뿐인데, 비운 자리에 행복이 채워졌다. 예전보다 가진 것은 줄어들었고, 빚은 늘었지만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게 됐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게 됐다. 우리 집의 경제 기조를 미니멀 라이프로 바꾸고 가능하다면 내 것을 더 나누기로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나눔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나눔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누군가 기부를 했다는 뉴스 기사가 나오면 ‘좋은 일 하는 건 좋은데, 그런 일은 남들 모르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는 댓글이 달린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도 좋지만, 왼손으로 좋은 일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야 나누는 문화가 퍼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세계적인 부자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기부 천사다. 버핏은 자신이 먼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서약하면서 자신도 그런 결정을 내려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최고의 투자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투자였는지도 모른다. 외국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기부나 선행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 알려야 한다. 그래야 가뜩이나 움츠러든 기부나 선행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
내 비록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내 것의 일부를 나눠 약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어플루엔자를 치료할 유일한 백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불편함,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워런 버핏처럼 부자가 아니다. 버핏처럼 99%를 기부하면 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 어떻게 남들을 도울 수 있을까?
뜻하지 않은 계기로 미니멀 라이프의 삶을 살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돈을 아끼지 말자는 여행자의 미니멀리즘을 함께 실천했기 때문에 나눔에 쓸 여력이 모자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돈을 만들어내야 했다’. 매달 일정액의 비슷한 월급이 통장에 꽂히는 월급쟁이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 낸단 말인가?
비밀은 ‘기분 좋은 불편함’에 있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나만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건데, 어느 비 오는 날 스쿠터 위에서 처음 떠올린 개념이다. 그날도 나는 스쿠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자니 차를 한 대 더 살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때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지금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만, 불편함으로 돈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그럼 이 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써보자’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비 맞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마음’이 생겼다. 내가 조금 불편해지면 기분 좋게 돈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기분 좋게 만들어낸 돈은 기분 좋게 다른 사람을 위해 쓰자!
기분 좋은 불편함이 형용모순의 말이다 보니 다소 생소할 것 같아 예를 하나 들자면,
나는 핸드폰 요금제로 통화, 문자 무제한에 데이터 1.5GB가 제공되는 29,900원짜리 요금제를 쓰고 있다. 이 경우 데이터 이용이 제한되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무제한 요금제와 비교해 대략 3만원의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의 불편을 감수해서 생기는 돈을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마음먹으면 ‘불편이 더는 불편하지 않게’ 느껴진다. 여기서 내가 아낀 돈 3만원이면 제3세계 빈곤 아동과 결연을 맺어 정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조금 불편해서 만든 돈으로 아무런 희망 없이 살던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