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내일은 마늘이의 2학기 참여수업날이다. 1학기 때는 참관 수업이라 수업 진행하는걸 보고 왔었는데 내일은 발표회다. 순서를 정해서 본인이 자랑하고 싶은걸 발표한다고 했다. 마늘이는 3번째 순서로 2명의 친구와 한자 퀴즈를 한다. 스스로 대본을 써서 큐시트도 만들었다. 내일 발표회가 기대된다. 이건 나의 표면적 감정이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못오시거나 없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같은 맥락으로 운동회가 있다. 우리 부부는 마늘이가 유치원 때부터 코로나로 인해 모든 부모 참여 행사가 취소됐었다. 졸업전 학예회를 하긴 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운동회를 기대했지만 부모는 참여하지 않고 학생과 선생님들끼리 진행했다. 심히 실망스러웠다. 보통 가지고 있는 운동회의 좋은 기억들이 있을거다. 달리기를 하고 공책을 딴 뒤 돗자리 위에서 엄마아빠와 먹는 김밥, 치킨의 즐거운 기억들. 나는 마늘이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싶었다. 마늘이가 친구들과 줄지어 서있는 모습, 달리기를 하는 모습,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와 안기는 모습, 같이 김밥과 음료수를 먹는 모습.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만한 행복한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게 되는 순간인것이다. 위에 말했듯이 참여할 부모가 없어서 조부모가 참여하거나 있어도 바빠서 못오시거나 아니면 참여한 부모님의 모습이 창피했던 철없는 시절의 상처들. 그래서 들게 된 생각은 꼭 이런 행사를 해야할까. 누군가에게 평생 지니게 될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한명이라도 상처를 받는다면 그만해야하지 않을까. 내 행복한 기억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지 않을까.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주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순간들. 내가 가진 것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능숙하게 학교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애초에 스마트폰이 없을 수도 있다. 집에 출력기가 없을 수도 있고 컴퓨터가 없을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모순된 행동을 하고 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팩을 하고 있다. 좀 전엔 내일 입고 갈 옷을 마늘이와 골랐다. 내가 치마를 입고 왔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엄마가 예쁘게 하고 갈께했더니 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아아... 나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