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동물
지금 난 약 기운에 정신이 멍한 상태이다.
독감이 남기고 간 꽉 막힌 코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오늘 아이 등교 시키고 바로 이비인후과에 다시 찾았다. 한 시간이라는 대기시간을 인내하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서 날 꼼꼼히 진료해 주셨다.
“잠을 잘 주무시나요?”, “아뇨. 못 잤어요.”, “기침 때문에요?”, “아뇨,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웃음)”
우띠마세오. 딘따 코 때매 둑겠어요. 코 맹맹이 소리를 감추려 아나운서 흉내를 냈는데 잘 안 됐는지 의사가 웃어버렸다. 이렇게 양쪽 코가 꽉 막힌 건 처음이다. 마늘이는 내 코맹맹이 소리가 귀엽단다. 혀 짧은 소리를 귀엽다고 흉내 내는 초등학생이라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 근데 엄만 이제 곧 마흔이야. 너무 부끄러워… 약을 처방하고 주사도 맞고 가라고 하셨다. 예에- 감사합니다. 그럼 빨리 뚫리겠죠? 코로 시원하게 가을 내음을 맡고 싶어요 선생님.
나는 아직도 내가 젊었을 적의 건강한 몸인 줄 착각하고 산다. 이번 주는 유독 일정(일 아님)이 많았는데 하나도 취소 안 하고 강행했더니 결국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병원에 다녀와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낮잠을 잤다. 꿀잠을 자고 허기짐에 깨서 멍하니 집을 걸어 다니는데 오늘은 마늘이가 일찍 귀가하는 날인 걸 잊고 있었다. 문 열고 들어오고는 엄마 잤어?라고 아이가 묻는다. 들켜버렸군. 아이가 간식을 먹는 동안 밥을 대충 해결하고 피아노 학원을 가기 위해 같이 나왔다. 점심 약을 먹었더니 또 졸리다. 이놈의 약 그만 좀 먹고 싶다. 그러려면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지만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