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퇴근길엔 그 라멘집으로 발이 간다.
집으로 가는 길을 조금 늦추는 일은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느낌이다.
문을 열면 국물 냄새가 먼저 닿고 김이 뒤따라온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얇게 울린다.
주문은 늘 같다.
라멘이 도착했을 때, 그릇은 아직 끓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눈앞을 가려 잠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잠깐의 기대가 좋다.
오늘의 표정, 오늘의 말들, 오늘의 무게가 그 사이에 한 번 지워진다.
첫 젓가락을 들어 올리면
면은 과장되지 않게 반짝이고
국물은 너무 뜨거운 색을 하고 있다.
알면서도 한 입 서둘러 들이킨다.
그리고는 예정대로
입천장이 덴다.
너무 뜨거운 건 늘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질끈 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을 찾는다.
그 작은 민망함 속에
불쑥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만 가까워지면 뜨거워졌다.
차분히 말해도 되는 일을 왜 늘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걸 '소란'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오늘은
입천장이 덴 채로
그 소란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오래도록 나는
사랑은 뜨거워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뜨겁지 않으면 부족한 것 같고,
뜨겁지 않으면 나를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 것 같고,
뜨겁지 않으면 결국 나를 두고 갈 것 같은.
그러니까 엄마의 소란은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서 계속 끓던 갈망의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내 마음을 알아보는 힘이 약했다.
원하는 게 뭔지 모른 채
원하는 것만 더 크게 느끼고
그걸 견디지 못해 상대를 탓했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라멘집에서, 입천장을 덴 사람이 할 만한 웃음이다.
조금 어이없고, 조금 창피하고, 그래도 따뜻한.
국물이 조금 식어간다.
뜨거움이 가라앉을수록 맛이 또렷해지고
나는 천천히 먹는 법을 다시 배운다.
사랑도 그랬을까.
끓는 온도에서만 확인하려 했던 것을
사실은 식어가는 과정에서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를 떠올리는 마음이 있다.
아주 뜨겁진 않다.
그냥, 라면을 먹다가도 그녀가 지나가는 마음.
그게 오늘의 내가 가진 사랑의 방식이라면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뜨겁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
일상 속에서 불쑥 떠오르는 것.
내 입천장에 남은 작은 통증처럼
오히려 더 오래 남는 것.
라멘집 문을 나서면 바깥공기가 차갑다.
나는 코끝에 스치는 상쾌함을 조금 챙겨두고
집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긴 사람은
입천장에 남은 열을 천천히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