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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Nov 20. 2023

[외국계 신입에게 고함] 4. 상상의 날개

그들의 동기부여

그녀는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는데 적극적이었다.

"육개장이요!"

그녀는 같이 입사한 인턴 동기들과 어제저녁 처음으로 같이 회식을 했고, 나름 술들을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전 아무거나 좋습니다'라며 선배들의 점심 메뉴를 마냥 따라가던 그녀가 먼저 메뉴를 정하니, 선배들도 육개장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꼰대처럼 그녀에게 인턴들 회식에서 뭐 좀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었는지 물었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 술자리에서 입사 동기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었는지 잊은 지 오래라, 젊은 친구들의 술자리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망설이며 영업팀 인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이 많기로 유명한 부서라 우리 인사팀 사람들은 육개장집 김치를 서걱서걱 자르며 집중했다. 

영업팀에서 일하는 인턴 친구가 우리 회사 및 경쟁사 관련 기사를 매일 요약해 보고 한다고 했다. 문과생인 그 인턴 친구가 전문 기술 용어가 가득한 기사를 요약하려니 힘이 든다며, 본인도 이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 결과물이 과연 부서 선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했다. 그래서 일을 하기는 하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화장실 다녀온 후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 마냥 찝찝하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한국에 아주 큰 고객사가 있다. 그래서 영업팀들은 직접 영업을 뛰는 것 이외에도, 미국 본사에 고객사 동향을 공유하거나 한국 대기업에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하면 이를 보고하는 일들이 영업만큼 중요하다. 본사 및 한국 오피스의 수뇌부들은 고객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반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협상 지점 혹은 변수들을 예측하고, 더 나아가 우리 회사의 매출 전략을 구상한다.

그래서 인턴들 혹은 신입사원들이 매일 기사를 검색하고 요약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바로 그 높으신 양반들이 협상의 우위를 쥐도록 도와주는 밑바탕이 되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의 흐름을 파악지 못하고 매일매일 구글링을 하며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요약하여 보고하는 일은 고역이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떻까? 내가 오늘 요약한 기사 한 줄이 부장님을 거쳐, 상무 전무님을 거쳐 본부장님께 전달되고, 본부장님이 고객사 사장님과 혹은 본사 임원과 미팅을 하며 내가 요약한 기사 한 줄을 이야기하는 상상 말이다. 그 기사 한 줄로 협상의 흐름이 바뀌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고, 그 이익이 언젠가 나의 보너스로 들어오는 그런 상상말이다. 

비록 혼자 피식거리는 상상일지라도, 적어도 이메일 Send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은 비장함이 감돌 것이다. 


내가 혼자 상상의 날개를 피며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묻는다. 그럼 저는 어떻게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 건가요?

"요즘 성희롱 예방교육 온라인 강의 찾고 있지?"

"네"

"당신이 교육적이고 재미있는 온라인 강의를 찾아야 직원들이 기한 내 100% 수강을 할 테고, 직원들의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우리 회사 사장님은 직원 분쟁에 신경을 안 쓰고 회사 운영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회사가 이익을 내면 우리 회사가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또 우리의 월급통장으로 보상되는 거 아니겠니?"

"아하!"

"자,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자. 육개장 다 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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