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리자마자 누군가 like를 눌러주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 글을 어떻게 알고들 읽고 계신가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몇 편을 쓰다 고민이 생겼다. 구독자도 얼마 없고 별로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다 인기 있는 글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인기 있는 브런치의 주제를 잘 살펴보았다.
일단 독자에게 흥미로운 주제여야 하고, 그 주제가 더욱 흥미롭게 보이도록 제목도 잘 뽑아야 했다. 글이 술술 읽힐 수 있는 필력은 기본 중에 기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흥미로워하는 점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남편이 대기업 자회사의 사장이 된 이야기를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사장이 되기에 적절한 나이었지만, 사장님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10살 차이 나는 아내, 6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 맞벌이 부부, 주말부부, 사장 같지 않은 사장, 사모님 같지 않은 사모님 등등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재미있어하는 부분을 글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3년 12월 31일 저녁에 남편과 새해 다짐을 이야기하며, 브런치에 남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는다고 공표했다. 남편도 꽤나 흥미로워했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모아, 24년 1월 '사모님 퇴근하십니다'를 연재하게 되었다.
두 번째 연재글을 올린 다음날, 감사하게도 내 글이 다음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 구독자수는 급등했고, 자신감이 가득 찼다. 남편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남편은 내 브런치 링크를 지인들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며칠간의 흥분 후 포털 사이트 노출발이 떨어지자, 연재글은 구독자를 중심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평균 15-20%의 구독자들이 내 글에 like를 눌러주셨다. 늘 like를 눌러주시는 감사한 구독자 분들도 계시고, 글의 내용이나 톤에 따라 구독자분들의 취향이 또 세세하게 달라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석 달 동안 매주 글을 썼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가 놀이에 집중하면 그 옆 식탁에서 혹은 아이가 잠든 밤 침대에 걸터앉아 짬짬이 글을 썼다.
지난주 10번째 연재글을 올리기 전에 남편에게 이제 두 번 정도 마무리 글을 쓰고 '사모님 퇴근하십니다'의 연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나에게 더 써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할만한 소재 혹은 상상을 뛰어넘는 신기한 소재가 이 주제 아래서는 더 나올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많이 아쉬워했었다. 나름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아내가 쓰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나 보다.
이렇듯 남편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 더 좋아하며 재미있어한다.
결혼 전에 블로그를 했을 때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도, 첫 연재를 시작했을 때도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같은 맥락에서 남편은 나의 회사 생활도 많이 응원한다. 20여 년간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이 멋지다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xxx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내가 멋있단다.
그래서 내가 회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신나게 웃고,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면 제 일처럼 같이 고민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하면, 회사 그만두고 사모님만 하라고 허허 웃는다.
초상화를 그릴 때면 대상이 되는 인물을 사랑으로 관찰해야 예쁜 초상화가 나올 수 있다.
연재글을 쓰는 매주 나는 남편의 일상을, 그리고 나의 일상을 사랑으로 관찰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정말 사모님만 해야 하나 기로에 섰을 때도, 브런치 북을 기획하고 연재하며 나와 남편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일도 글쓰기도, 나를 오롯한 나로 만드는 일은 계속하기로 말이다.
자~ 그래서 오늘도 사모님은 퇴근합니다.
<신나는 내 삷을 만들어보자구>
PS. 지난주 연재글이 또 포털 사이트 메인에 떴다. 3일 연속 쫄쫄이 입은 아들의 뒷모습을 다음 메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많은 분들이 연재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구독해 주셨다. 곧 마무리할 예정인데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주 못다 쓴, 실은 필력이 부족해서쓰다가 완성 못한 이야기를 마저 풀고 정말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