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는 20년이 넘은 오래된 25평 아파트이다. 당시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한, 방 3개에 화장실 2개가 구성된실용적인 아파트이다.
친정 부모님이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지금껏 살고 계신 터라, 결혼하고 나서 의심의 여지없이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들어와 살았다.
워낙에 인테리어에 문외한이라 신혼 가구를 정할 때에는, 한 치의 고민 없이한 가구점에 가서 '요즘 인기 있는 모델이 뭐예요?이거 이거 이거 주세요'했다.그렇게 몇 년 살다 보니 그때의 신혼 가구들이 나의 라이프 사이클과 잘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침대 옆 협탁이나 전자레인지 선반 같은 것은 책을 꽂아두거나 각종 문방구 용품을 넣어두는 등 원래 목적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당근마켓에 중고로 팔아도 될법한데, 신혼의 정이 있어 방구석구석 테트리스처럼 잘 배치해 두고 그냥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거실은 더 좁아져서, TV와 소파사이는 성인 걸음 세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신혼 때는 성인 두 명이 거의 잠만 자는 집이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이 살림이 늘다 보니 이래저래 25평의 집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좁지만 아들에게는 신나는 서울집 거실>
그에 반해, 남편이 주중에 살고 있는 지방의 35평짜리 아파트는 극미니멀리즘의 집이다.
방 3개와 큰 거실, 그리고 구석구석 수납공간이 많은 신축 아파트이다.
집이 넓으면 뭐 하겠는가. 주중에는 집에서 잠만 자고, 주말에는 대부분 서울로 올라오니 집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침대, 책상, 소파, TV, 식탁 정도가 다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지방 아파트는 아들에게 놀이터나 다름없다. 거실에서 마음껏 공을 차도 걸리는 살림이 없다. 세 개나 되는 방은 가구가 하나도 없으니 텅텅 비어 있고, 방에서 소리를 지르면 울림도 좋다. 공을 가지고 이 방 저 방 드리블을 해도 공간이 차고 넘친다. 또 아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다양한 수납공간이다. 구석구석 짜인 옷장이며 수납장에는 옷과 물건이 거의 없기에, 아들은 남편 집에만 가면 텅텅 빈 옷장과 수납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실제 옷장 안에 숨어 있으면 찾기도 어려우니, 아들은 아빠 "새집"에서 숨바꼭질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좋아한다.
<드넓은 아빠의 지방 새집. 콩주머니 던지기를 해도 걱정할 살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한다.
'명색이 사장님 집인데, 서울집을 더 큰 평수로 이사 가는 건 어때요?'
나도 고민이 좀 되긴 한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서울에 올 때마다 아이 살림에 치여있는 모습이 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서울에서 25평 집에 살고 있는 것은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옆집에 살던 의사 선생님 가족도 35평으로 이사를 했고, 아들내미 친구도 길 건너에 있는 40평대 주상복합으로 이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하기도 한다.
가끔 아들이 집에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왠지 아이들이 놀기에 좁은 느낌이라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도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일주일에 5일은 여섯 살 아이와 나만 살고 있는 공간. 더군다나 회사 다녀와서 6시 이후에만 머무는 우리 집. 25평이면 무척 충분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회사 다녀오면 청소도 제대로 못해 먼지가 선반 위에 소복한데, 더 큰 평수로 이사 가면 관리가 더 안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남편과 이야기했다.
남편이 지금 회사의 사장자리에서 다른 보직으로 변경되어 서울로 올라와야 하면, 그때 더 큰 평수로 이사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지방에 있는 남편의 짐이 25평짜리 서울집에 오려면, 대대적인 짐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때 이사를 고려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 남편이 사장으로 지방에 오래오래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님 남편이 지방 사장님의 삶을 정리하고 서울로 와서 서울집을 큰 평수로 넓히는 것이 더 좋은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