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일어나서 우리 침대로 꼬물거리며 기어 오면 그때서야 핸드폰을 잠깐 내려놓는다. 하지만 이내 아들내미 눈앞에 핸드폰을 들이민다. 똑똑한 구글 포토가 1년 전, 2년 전 사진들을 흥겨운 음악과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편은 과거의 흔적을 아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아들도 아주 재미있어한다.
나는 남편이 구글 포토가 선택해 주는 사진을 보여주는 대신,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물어보며 침대에서 데굴거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옆에서 소리친다.
여! 보!
아침밥을 먹을 때면 미리 이야기한다. 식탁 위에서는 핸드폰 금지라고.
남편은 핸드폰을 의도적으로 멀리함을 느낄 수 있다. 적어도 그의 노력이 느껴져 감사하다.
"오늘은 어디로 가서 놀까?"
"xx 박물관 어때?"
"거기 몇 시에 열지? 위치는 어디지?"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손을 뻗는다.
"아.. 여기네.. 여기에 주차하면 되겠다"
볼일을 다 보고 나면 핸드폰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데, 웬일인지 남편은 계속 핸드폰을 들고 있다.
"뭐 보고 있어? 급해?"
"어.. 보니까, 우리 회사 관련된 뉴스 기사가 떴네. 이거 엄청 중요해. 미리 대비를 해야 하거든"
남편이 했던 잠깐의 노력은 금세 물거품이 된다.
여! 보!
주말에 남편이 핸드폰을 잡고 있는 또 다른이유 중하나는 스케줄 관리이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고, 출장 스케줄도 있다 보니 편도 기차표 혹은 비행기 스케줄을 관리해야 할 때가 많다. 미팅 일정들이 유동적이다 보니 일일이 비서에게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서울-지방 스케줄은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기차를 예약했다가, 시간을 오전으로 했다가 오후로 바꿨다가...
스케줄 조정을 위해 핸드폰을 잡으면, 스케줄 조정 하고 나서, 회사 이메일을 보고, 그러다가 뉴스를 보는 루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 보!
연말에 부산의 고급호텔에 놀러를 갔었을 때다.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5성급 호텔. 우리 세 식구는 이른 저녁을 먹고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석양이 정말 멋졌다. 겸이와 나는 감탄을 하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남편은 그 순간에도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 연말이라 결재해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네"
"여! 보! 그럼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마저 일해. 나는 겸이랑 바닷가를 더 거닐다 갈게"
남편의 회사가 잘 되어야, 우리 가족도 평안할 것이다.
하지만 해운대의 석양을 아들과 나만 바라보는 것은 못내 서운했다.
사장으로서 남편의 책임은 막중하다. 여섯 살 어린 아들이 있건 주말 부부건 회사에 그의 위치는 사적인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사장은그 누구보다 정세에 예민해야 하며, 24시간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많은 정보를 통찰하여, 회사의 전략으로 엮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게 가족과 함께할 절대적인 시간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함께 있을 때만큼은 온 마음으로, 온 정신으로, 온몸으로 함께하는 것.
몸이 열개여도 부족한 사장님의 일정이겠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그 시공간만큼은 온전히 가족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