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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Mar 04. 2024

사장님을 너무 욕하지 마세요

feat. 블라인드 게시판

나는 인사팀 팀장이라 주기적으로 블라인드 앱(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 접속해서 직원들의 동향을 살핀다. 직원들이 직접 인사팀을 찾아와 이야기하는 상황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을 잘 안다. 이런 경우 블라인드는 직원들의 민낯 혹은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 옆자리의 직원일 수도 있는 그 누군가는, 익명의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여 마음속의 말을 온라인상에 마구 품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블라인드 회사 익명 게시판의 내용은 아래 네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회사의 복리후생 및 급여에 대한 불만

'다른 회사는 A 혜택이 있는데 우리 회사는 없어요', '새로 변경된 복리후생 제도가 다른 회사에 비해 수준이 낮아요', '예전 제도가 더 좋았는데 점점 복지가 안 좋은 쪽으로 변해요.' 등등의 복리후생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급여 인상이 높지 않거나 동결되었을 경우에는 급여에 대한 이야기가 급증한다. '이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내 연봉이 이 정도인데, 적절하게 받는 거 맞나요?' 등등 익명의 탈을 쓰고 공개해서는 안될 개인의 급여 수준까지 논의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승진이나 급여 인상이 컸던 직원의 경우 이런 게시판에 아예 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쁜 경우의 일들이 계속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된다.

이 주제의 타깃은 인사팀이다. 인사팀이 복리후생이나 급여의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볼맨 목소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복리후생이나 급여는 아무리 좋아도 절대로 직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2.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

회사는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발견된 사건에 대해서는 회사가 철저하게 조사하고 징계를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일도 참 많은 것 같다. '유부남이 싱글 여직원에게 치근덕거렸다', '회식자리에서 나쁜 손이 보였다' 등 성희롱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떤 매니저는 아래 직원의 프로젝트를 자기 것처럼 보고를 했다', '회의시간에 막말을 해서 면박을 줬다', '주말에도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를 한다' 등등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이야기도 많다. 그럴 때도 역시 화살은 인사팀으로 향한다. 인사팀은 회사이라 직원을 위한 제대로 된 조사와 징계를 하지 않는다며 몰아세운다.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이 안 되니 블라인드에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가끔 억울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건의 조사와 징계는 철저한 보안아래 이루어진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소문이 나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때가 많다.  그래서 전체 내용을 모른 채 일부만으로 전체 사건이 평가되기도 한다. 결국 왜곡된 이야기가 꼬리를 꼬리를 문다.  안타까운 점은, 회사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이거나, 피해/가해자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익명 제보의 글 만으로는 공식 조사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3. 각종 유언비어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는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커뮤니티 상에서는 유언비어가 기정 사실화 되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 인사평가 항목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임원들의 사생활 등 소설을 써도 이보다는 잘 썼을 것 같은 각종 유언비어들이 떠돈다. 그런 잘못된 정보에는 엄청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한 번은 나도 그 유언비어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내가 팀원을 다 내쫓고 혼자 권력을 독식하고 있다나?? 깜짝 놀랐다. 사실은 당시 팀원들이 개인적인 고민과 글로벌 인사 조직의 문제로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나 역시 당시 회사를 떠나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이직의 기회를 마다하고 책임감 하나로 새로 팀을 꾸렸는데, 이게 웬 말인가. 며칠 동안 싱숭생숭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연예인들이 왜 악플에 고통을 받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4. 사장님의 무능함

사장님 무능하다는 전제 하에, 조직 운영이나 회사의 방향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진행하는 새로운 사업이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수익 구조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조직 문화를 이상하게 이끈다' 등등의 이야기이다.

일부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임원 미팅 때  현실화 가능성 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이 거칠어지면, 사장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장횽 잘 좀 하자!', ' 사장횽 요즘 일 안 하는 것 같아..'  등의 귀여움 섞인 불평은 어느 정도 웃고 넘어갈 수 있다. (익명 게시판에서 상대방을 지칭할 때 남녀/지위고가 상관없이 '형'을 '횽'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횽, 죽지 않을 만큼 패줄 거야', '능력도 없는 놈이 사장으로 앉아 있다' 등 인신공격적인 거친 발언이 등장하면 깜짝 놀란다.


며칠 전 남편은 남편회사의 블라인드에 자신을 공격하는 글이 올라왔다고 이야기했다.

안그래도 요즘 남편 회사 주가가 많이 떨어진 탓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였다. 아마도 회사에 개인 투자를 한 직원이 불만을 많이 품었던 모양이다.


우리 회사 블라인드에 사장님을 욕하는 글이 올라왔을 때에는 그것이 그냥 '사장의 무게'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 남편이 사장님으로서 공격당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더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늘 신경 쓰고 있는 것을 지켜봐 왔기에, 직원들의 무차별 인신공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회사의 불만을 '사장님'의 이름에 쏟아붓는 것은 이해하지만, 인신공격은 제발 자제해 주면 좋겠다.

사장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장도 가족도 나쁜 이야기를 들으면 똑같이 속상하다.

<출처 : https://news.sktelecom.com/13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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