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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ISPLAY Nov 30. 2016

일요일의 도쿄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새하얀 아침과 불투명한 비닐봉지


일어나려 했던 것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났다. 일요일이지만 8시까지 출근이라던 한주도 아직 자고 있다.

"회사에 이야기했어. 오후에 출근하기로 했다."

계속 같이 있었는데 언제 연락한 거지? 칫솔과 면도기 같은 일용품을 사려고 혼자 편의점을 찾아 나왔다. 현관문을 여니 어젯밤과 확연히 다른 새하얀 주택가의 모습이 펼쳐졌다. 몇몇의 사람들은 나와는 반대 반향으로 걸어갔고, 가끔씩 흰색 차들도 지나갔다. 외투를 벗어둔 채로 나왔지만 햇볕이 따뜻해서 춥지 않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아침이다. 어느 정도 앞으로 가다가 갑자기 좌측의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손님이 한 명 있는 미용실의 직원들이 지나가는 내 모습을 번갈아가며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제각각의 사용 빈도를 보여주는 여러 빗자루들이 보인다. 무슨 용도의 집이길래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 걸까?



편의점 한쪽에서 속옷, 화장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모두 무인양품 제품이다! 한국의 편의점 도시락도 이제 충분한 숙련도가 쌓여 부러울 게 없다 생각했지만 이건 참 부럽다. 흰색 비닐봉지에 구입한 것들을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한주도 일어나서 아침 먹으러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나도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각진 샤프 티비에서는 원피스가 방영되고 있다. 익숙한 캐릭터에 생소한 성우.


한국으로 치자면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지만 오전 10시까지 가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딱 아침식사로 좋았을 법했는데. 편의점에서 간단한 아침거리를 골랐다. 일본 편의점은 한국과 달리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근처 공터에 가서 먹기로 했다. 청바지에 샌들, 빨간 니트에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햇빛에 눈부신지 두 눈을 질끈 감은 한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먹는 거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베이지색 비닐봉지에 담아온 덮밥은 대체로 밋밋한 맛이었고 딸기우유는 덜 달콤했다. 한주는 다시 집으로 나는 우에노행 JR 선을 탔다. 마음속으로 조그마한 화이팅을 외쳤다.










아트 얼라이브!


이번에는 10분 일찍 도착했다. 우에노 역(上野駅, うえのえき)에서 나와 공원 반대 반향으로 먼저 올라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햇빛이 강하다. 외투를 벗어 가방에 넣은 채 반팔 차림으로 무화씨를 기다렸다.



김광진의 <동경 소녀>에서 나온듯한 앳된 외모의 무화씨는 양손 가득 액자들을 들고 있었다. 먼저 이런 촬영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인사를 받았고, 어제부터 시작된 나의 여행은 별 다른 문제는 없는지 걱정부터 해주었다. 서두르는 법 없이 확신이 서 있는 말투를 듣고 나는 이 사람에게서 어떤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에노 공원을 지나 무화씨의 모교인 동경 예술 대학(東京藝術大学 , Tokyo University of the Arts)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도쿄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에노 공원의 활기찬 인파와 달리 주말 학교 안은 한적했다. 무화씨의 그림 앞에서 어떤 관람객이 펑펑 울었다고 했다. 갤러리를 통해서 들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작품 앞에서의 절규.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로든 작가에게는 분명 잊을 수 없는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그림이 더 궁금해졌다. 회화동(絵画棟, Painting) 앞 벤치에서 드디어 작품을 조우하였다. 한 소녀. 두 여자 아이. 마치 본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작품들에 대한 소개를 이어서 들었다. 실제 티셔츠에 위에 그린 작품. 옷에 새겨진 'Art Alive'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주 명료하게 작가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그런 매력적인 말이다. 아트 얼라이브!

구석진 곳에서 미대 학생들이 버린 재료들로 가득한 공간을 발견했다. 그녀가 다루었던 작업 방식과 닮았다고 느껴 그 앞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은 최근 작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쌍둥이 아이들의 얼굴 위로 전자 회로의 선들이 이어진 작품이다.

"저는 화가로만 불리는 게 싫어요"

서양화라고 해서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 학교는 특히 재미있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이 나오기도 했다고 했다. 예를 들면 2년 동안 소고기를 매달고 춤만 추던 친구처럼. 함께 가지고 나온 팔레트의 뒷면에도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팔레트의 형태가 임신한 여성의 배처럼 보여 손을 감싸는 모습으로 그렸다고 한다.


마침 다음 일정까지 같은 방향이라 같은 전철을 탔다. 각자의 전시 계획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전시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함께 화이팅 하자고 말했다. 촬영하는 내내 보였던 진지한 아티스트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익살스러운 표정이 순간 보였다. 작업할 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도록과 엽서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내 인터뷰 실린 잡지가 포장된 상태로 아직 집에 남아 있는 게 떠올랐다. 회화 도록과 사진 잡지. 우리가 정말 함께 전시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성가대에서 가장 높은 테너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가제)> 연작 중 처음으로 종교 시설을 촬영하게 되었다. JR 메지로 역(目白駅, めじろえき)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쿄 주교좌 성 마리아 대성당(東京カテドラル聖マリア大聖堂, とうきょうカテドラルせいマリアだいせいどう). 조용한 부자 동네에 이처럼 웅장하고 모던한 건축을 설계한 단게 겐조(丹下健三)는 일본 근대 건축의 영웅이라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Tadao Ando)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버스에 내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솔씨와 악수했다. 그동안 만나온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편안하면서도 깊음이 있는 인상과 긍정적인 목소리. 한솔씨는 반갑게 성당으로 안내했다. 유난히 높게 쏟아 오른 첨탑을 지나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의 형태를 보이는 독특한 구조의 성당을 마주했다. 성당 내부의 촬영은 제한하고 있어더라도 눈으로 보고 싶어 잠시 들어가 보았다. 외부의 단단한 인상과는 반대로 대체로 어두운 내부는 그 조용한 분위기만큼이나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결혼식이 진행 중이어서 곧바로 나왔다. 한국의 명동 성당과 같이 주말이면 결혼식도 진행된다고 한다.



촬영이 거의 끝나갈 때쯤 중년의 부부가 지나갔다. 한솔씨에게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연습 중인데 너는 여기서 뭐하냐고 웃으며 말했다. 한솔씨 역시 웃으며 곧 들어가겠다고 대답했다. 무슨 연습을 하는 거냐고 묻자 성가대 연습을 한다고 했다.

"성가대에서 가장 높은 테너예요"

다시 돌아오는 길에 처음에 보았던 첨탑이 다시 보였다.









스기모토와 맞바꾼 메지로


메지로 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버스 창문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웠다.


버스 정류장 앞 화분, 반쯤 깨져버린 나무 간판, 공사 가림막 곧은 가로수들, 버려진 색색의 플라스틱, 안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는 젊은 가족, 길가에 벗어둔 흰색 장화, 전체 게시판 4칸 중 2칸에 적힌 자전거 도난 주의문, 어항 속 물고기, 테이프로 덧칠한 쇼케이스 냉장고 문, 의미 없이 올라간 육교에 그려진 코끼리 그림과 거기서 바라본 공사장 풍경, 입이 가려진 선거 포스터, 차에서 본다면 제대로 보일 테지만 바로 옆에서는 길쭉하게 늘어나 보이는 도로의 숫자들, 손으로 휘 저어 논 듯한 벽의 무늬, 수많은 술병의 라벨들로 장식된 어느 술집의 셔터, 한쪽 면만 녹이 슨 놀이터의 간이 건물, 무릎 높이로 진열된 커다란 어금니 장식, 이름이 거의 지워진 녹슨 이정표, 반쯤만 그림자가 보이는 자전거와 그림자가 아예 없는 길쭉한 판자.



차분하지만 나른하지는 않은 따뜻한 오후. 나는 주로 이런 거리의 초상들을 마주하는 것으로 몇 주전부터 기대했던 히로시 스기모토의 전시를 대신했다.









오래 전의 인연이 이어준 새로운 인연


에비수 역에서 내려 철길 옆에 자리한 VDI(Vantan Design Institute)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지원씨를 만났다. 학원 측에 미리 촬영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면서 우선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인사를 나누었다. 짧지만 굴곡 있는 헤어 스타일은 그녀의 우아한 귀고리 모양과 닮았고, 펑퍼짐한 티셔츠와 청바지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도드 라보이지 않게 균형감을 갖추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살짝 때가 탄 흰색 에코백에 꽂은 금색 집게 액세서리까지. 누가 보더라도 패션에 활동적이며 적극적일 거라는 인상이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백색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왔다. 가장 창쪽과 가까운 빈 강의실로 들어갔다. 앞은 평범한 나이키 맨투맨 티셔츠인데, 뒷모습이 예상외로 아방가르드하다. 강의실 내에 있는 거울을 이용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원씨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면서 일요일에만 여기 패션 스쿨에 수업을 들으러 온다고 했다. 일종의 취미 생활인 셈이다. 좋아하는 취미라지만 그래도 주말에 4시간씩 투자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것이 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것 같다. 사실 지원씨를 소개하여준 예원 누나도 이런 취미 수업을 통해서다.

"정말요? 어떤 수업을 같이 들은 거예요?"

2010년 겨울, 홍대 상상마당에서 들었던 프로그램의 정확한 이름은 <트래블로그>이다. 대체 무슨 수업인지 가늠하지 힘든 이름이며, 실제 수업도 다양한 것들을 다루는 내용이라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여행에 대한 수업이었어요. 근데 그것보다는 끝나고 모여서 놀았던 게 더 재미있었어요.”

초점을 확인하려 화면을 확대를 하자 LCD 화면 가득 지원씨의 얼굴이 보였다.

"예원 누나 동생이 확실하네요"



토요일처럼 오늘도 밤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촬영이 끝나갈 때 거의 저녁이 되었다. 일본인 남자 친구가 학원 앞으로 도착하였고, 우리는 에비수 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알고 보니 지원씨는 나와 동갑이었다. 참, 예원 누나는 몇 살이었지? 잊고 지냈왔던 오랜 인연이 지금의 새로운 만남을 이어 주었다.









양재동에서 오모테산도로


여전히 장관인 시부야 사거리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하고 있을 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미란 누나. 그 때그러니까 3년 전 우리가 같은 팀으로 일할 때처럼 언제나 완벽한 모습. 여전히 멋쟁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내가 만난 여러 사람 중 여행자 신분인 나와 가장 비슷한 처지였다. 일본어는 조금 익숙해졌냐고 묻자, 정말 살기 위해 쓰다 보니 조금은 늘었다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놀러 나온 듯 도쿄의 밤을 즐겼다.



시부야에서 오모테산도 쪽으로 걸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가게들 사이로 우리가 우연히 들어간 곳은 Found MUJI Aoyama. 일반 무인양품 매장과는 다르게 상품 간의 공간이 넓었다. 엄선된 제품들만 판매하는 건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 1983년에 처음 문을 연 무인양품 1호점 아오야마 점이 2011년 11월 11일 Found Muji Aoyama으로 다시 오픈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이 꼭 5주년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서로에게 마음에 드는 것 하나씩 선물하였다.



바로 맥주를 마시기엔 배가 조금 고플 것 같아 적당한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지하로 내려가 일부러 오래된 것처럼 꾸며놓은 식당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로스 가스. 누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카메구로 주위에 튀김에 얇아서 맛있는 돈가스 가게가 있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내게 보여주었다. 히라가나 위에 그려진 아이콘들을 보고 있으니 일본에서도 똑같이 늦게까지 일한다는 누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배 부른 저녁을 먹고 일어났다.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잊을 정도로 밤거리를 한참 걷고 있을 때 COMMUNE 246에 도착했다. 누나가 왜 여기를 오자고 했는지 알겠다. 땅값 비싼 아오야마, 오모테산도 골목 안으로 다음 단어들로 설멸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청춘. 개성. 공동체. 푸드 트럭 그리고 맥주. 테라스 가득 기분 좋은 왁자지껄. 누나가 맥주 주문을 했다. 주문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더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더 마셨다. 조금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 그녀는 어릴 적 가장 즐거워했던 ‘나를 꾸미는 행위’를 지금의 모바일 콘텐츠를 꾸미는 영역으로 이어가고 있다. 현재 비즈니스의 한계점과 디자인 트렌드에서도 이야기했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으니 일본에서 누나 자신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니 말이 맞네. 난 여기 와서 오히려 정체성을 찾게 되었어.”



양재동 지하 디자인실에서 현재의 불만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가 지금은 오모테산도 밤길을 걸으며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함께 플랫폼까지 내려가서 누나는 메이지 메구로 방향으로 나는 신주쿠 방향으로 돌아섰다.









어쩔 수 없는 것들


나카우라와 역에 다시 도착한 건 11시 11분. 이미 늦은 시간이라 캔맥주라도 사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한주는 기꺼이 역까지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오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얼굴. 아침 식사 거리를 사러 갔던 역 앞 패밀리 마트에 또 들어가서 캔맥주 2캔과 감자칩 하나를 골랐다.


바로 씻을 준비를 했다. 내 카메라에 들어 있는 사진을 봐도 되겠냐고 한주가 물었다.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들을 몇 장의 사진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제 한주의 방 안을 보며 느낀 그의 삶의 변화에 관한 생각과 비슷하겠지.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와 과자를 먹었다. 내일은 제시간에 출근하는 한주는 작은 300ml의 기린 맥주를. 나는 500ml의 산토리 맥주를 마셨다. 점점 잊혀 가는 친구들 이야기를 나눴다. 어쩔 수 없는 대학교 친구들의 운명인가 보다는 씁쓸한 마무리를 지었다. 어제보다는 춥지만 그래도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웠다. 잊혀지는 것 혹은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짧은 고민을 안고 곧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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