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같이 언젠가부터 일요일에는 태엽을 감지 않게 되었다.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퇴근 후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자주 가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왔다.
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오늘은 새로 생긴 곳에서 저녁을 먹고, 또 같은 카페에서 같은 메뉴를 들고 나왔다. 요즘에는 앉아서 마시는 일이 드물다. 예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줄곧 이 곳에서 글을 썼는데...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갑자기 일본에 있어 버리는 꿈을 꾸었다. 일본 정도면 주말에 잠깐 갔다 와도 되겠다.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도쿄에서 살고 있는 한주와 미란누나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주말 아침 도쿄행 티켓을 예매했다.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일주일 중 가장 바쁜 금요일. 밤 10시부터 누워 괴롭게 잠들었다. 2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왔다. 새벽 공기는 제법 차갑고 거리는 어제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다. "빼빼로 데이 친구야 사랑한다" 울부짖는 사람들. 그들은 아직 어제를 보내는 중이구나. 공항버스에 올라타니 곧 만석이 되었다. 창문에 서리가 생길 즈음 잠시 눈을 감았다.
주말의 공항은 여느 휴가 시즌만큼 소란스럽다. 혼자 여행을 할 때, 특히 이렇게 여권을 들고 하염없이 줄을 설때면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귀찮을 정도로 잘 들려온다. 별로 공감가지 않는 내용들의 대화들이 특히 잘 들린다. 이럴 때면 정말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탑승동 근처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공항에만 오면 이런저런 이유로 평소의 그것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하루키의 여행법(사진편)이라는 책 한권만 꺼내 나리타행 JC1102편 창가석에 앉았다. 창문에는 어느새 맑은 하늘이 보였다. 물 한잔 마신 후 또 잠들었다.
아차. 또 펜을 꺼내는 것을 깜빡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꼭 주머니에 넣어 두어야지. 기내 가득한 젊은 친구들보다는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옆 좌석 승객에게 펜을 빌렸다. 이들은 어떤 목적으로 나리타에 가는 걸까? 주말을 포함해도 겨우 2박 3일인 짧은 일정만큼 가지고 온 짐의 무게도 여행의 목적도 간단하며 명확하다. 나는 도쿄에 살고 있는 5명의 한국인을 촬영하려 5년 만에 다시 도쿄에 왔다.
오후 1시 7분. 약속한 시간보다 7분 늦게 아사쿠사에 도착했다. A4 출구에서 생각보다 산뜻한 청색 코트를 입은 민우 씨를 만났다. 근처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촬영 전 점심을 먼저 대접받았다. 이치란 라멘. 5년 전 시부야에서 먹었던 그 라멘이다. 본래 1인 좌석으로만 되어 있는 유명한 라멘 체인점인데 어째서인지 여기 아사쿠사점에만 일반 테이블도 있다. 진한 육수와 추가로 주문한 차슈까지. 배가 몹시 불렀다.
센소지(浅草寺)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우리가 걸었던 나카미세도리(仲見世通り)는 가미나리몬(雷文)에서 호조몬(寶藏門) 앞까지 약 250m의 거리로, '내가 이 곳에 다녀왔다'라는 걸 증명해줄 수 있는 듯한 여러 소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민우씨는 이전에 도쿄를 13번이나 왔다고 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못 간 것이 후회가 되어 고등학생 때 혼자서 처음 왔다고 한다.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어려울 것은 없었고 그 때문에 이 곳의 첫인상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13번이나 오다니 정말 좋았나 보군.
걷다 보니 사이사이로 보이는 골목길의 풍경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풍경은 민우씨 입장에서는 하수관만 보이는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되어버린다. 음 이거 참 곤란하군.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근처까지 가다 보니 커다란 화로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손 부채질을 해가며 연기를 몸에 사람들이 보였다.
꼭 먹어야 하는 게 또 있다며 조금 더 사람이 없는 길로 안내했다. 고로케 처럼 생긴 아담한 크기의 멘치까스는 육즙의 풍미로 가득했다. 민우씨는 캔맥주까지 주문했다. 그런데 이렇게 먹으면서 걸어도 되는 걸까. "괜찮아요. 어차피 우린 외국인이잖아요." 뭔가 찝찝함이 남는 답변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바로 옆이 스카이 트리는 보고 가야 한다고 해서 전철을 탔다. 이렇듯 첫 번째 촬영은 관광과 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 한 정거장 거리를 이동하며 현재 한국의 비선 실세 국정농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으로 갈 곳인 하이지마에 대해 설명해주자 13번이나 도쿄에 왔던 사람도 처음 듣는 지역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연속으로 또 늦게 되다니. 서두르자.
멜버른, 시드니에 이어 이번 도쿄에서도 SNS를 통해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섭외했다. 도쿄에서 나리타 공항의 거리만큼 도쿄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아키시마 시(昭島市, あきしまし)의 금지씨에게도 연락이 왔다. 상대방 쪽에서 먼저 멀어서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분명 먼 거리였지만, 도쿄 중심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살짝 밤이 되어버린 하이지마 역(拝島駅, はいじまえき)에서 금지씨를 만났다. 함께 나온 친구는 장을 보러 나온 김에 잠시 구경하러 왔다고 했다. 역 뒤편으로 걸어가자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은 더 기다려 줄게' 하고 말하듯 토요일의 마지막 노을이 그런대로 남아 있었다. 침착하게 트라이 포드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쓴 금지씨의 친구는 행인이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 지나가요"라고 주의를 주거나 금지씨의 표정을 더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든든한 역할을 해주었다. 몇 분 후 친구는 정말 장을 보러 떠났고 우리는 계속 촬영을 이어 나갔다. 셔터를 누를수록 밤은 더 깊어간다.
여기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여름에 일본으로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고 또 몇 달 뒤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짧게 있는 듯하다. 왜 일본을 선택한 걸까?
"처음엔 호주를 생각했는데 좀 그런 소문도 있고 해서 가까운 일본으로 왔어요."
이어 도착한 곳은 오크 하우스라는 이름의 쉐어 하우스. 몇 분 전 150명이 사는 곳이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건물의 규모를 보니 고개가 끄떡거려졌다. 더 재미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함께 내부로 들어왔다. 인원수를 짐작케 하는 많은 캐비닛을 보인다. We Are Family라는 문구 아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가득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국적인 친구들이 살고 있는 쉐어 하우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라운지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금지씨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라주쿠나 시부야로 가서 촬영을 하고 이후 집에서 리터칭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 거의 재택근무와 같은 형식이라고 했다. 해외에 살고 있다고 해서 매일이 여행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장 보러 갔던 친구가 다시 현관 앞으로 돌아올 때서야 촬영이 끝났다. 일단 이걸로 오늘의 공식적인 스케줄은 끝이다. 신주쿠로 한 번에 가는 전철을 탔다.
신주쿠 동쪽중앙출구에 내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거의 2년 만에 한주를 만났다. 우린 다른 친구들이 제법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눌 때에도 여전히 20살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이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정말 반갑다는 것에 대해 10분 정도는 이야기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잠깐 신주쿠 거리를 걸었다. 빅쿠로 빌딩을 지나면서부터 그동안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한주의 일본 생활 관해 듣게 되었다. 일단 빅쿠로(ビックロ)는 가전제품 판매점인 비쿠 카메라(ビックカメラ)와 캐주얼 의류 판매점인 유니클로(ユニクロ)의 합작품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협업을 했고 또 어떤 제품이 판매되는지 쉽게 상상이 안된다. 아무튼 한주는 여기 유니클로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이어 테이프를 사기 위해 도큐핸즈를 찾았다. 문구를 판매하는 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한주는, 지금 일하는 글로벌 여행 업계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주말마다 도쿄에 와서 테이프나 피큐어를 도매로 사다가 한국에 판매하는 장사를 했다고 했다. 매번 올만큼 장사가 잘 됐냐고 묻자,
"항공비랑 호텔비 하고도 조금 남았어. 그러면서 천천히 일본 생활을 준비했지.""
축구만 좋아하던 친구인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이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쌓았다.
성수동에서 함께 전시했던 유진씨가 신주쿠의 Golden Gai란 곳을 추천해주어서 우리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넉넉 잡아도 5평도 안 되는 좁은 술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마치 이태원 골목과 옛 아현 고가 밑 매춘 거리와 비슷한 풍경이다. 실제로 이 곳은 매춘이 행해지던 사창가였다가 1958년 매춘 방지법 시행을 계기로 195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술집 골목으로 변신하였다고 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술집 안의 광경 또한 굉장하다. 외국인들ㅡ나도 여기선 외국인이지만ㅡ이 그 좁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근데 Golden Gai는 도대체 어디야?"
"무슨 소리야. 여기가 전부 Golden Gai인데"
가게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냥 거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수많은 술집 중 유독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곳이 있었다. 한글로 쓰인 '나그네'란 곳. 좁은 문을 열자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흰머리의 남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안녕하세요 인사했고, 그는 자신이 재일동포이며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별 다른 안주나 메뉴 없이 맥주나 니혼슈(日本酒)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서 일단 맥주를 2잔 주문했다.
짭짤한 무 조림과 멸치 안주가 나오자 그 옆에 꽤 마음에 드는 흑백 사진엽서가 보였다. 2층과 3층에서 전시하고 있단다. 이렇게 좁은데 한층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어떤 모습으로 전시가 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전시를 볼 수 없다 말했다. 이것을 계기로 한참 동안 한국과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멀리서도 통용되는 우리 선생님의 이름을 들으며 괜히 흐뭇했다.
왜 가게 이름이 나그네 일까. 재일동포로 살아가는 삶이 어느 순간 이곳저곳 정처 없이 방랑하는 나그네의 삶과 같다고 느꼈단다. nagune 익숙한 단어가 순간 묘하게 일본어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보통 이런 우연한 것들이 평생 잊지지 않는 기억들이 된다. 미리 이 곳을 조금 더 알고 있었다면 게 중에 이름 난 곳에 가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은 곳을 소개해주다니 유진씨의 흑백 사진만큼 멋진 곳이다. 여기 모인 셋 모두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로 지금 여기 도쿄 신주쿠 골든 가이 나그네에 앉아 있구나.
12시 무렵이 되자 바쁘게 플랫폼으로 뛰어가는 무리들. 잠자는 사람들. 결국 토해버린 한주. 나의 멈추지 않는 딸꾹질. 암흑의 발걸음. 그것이 이틀간 머문 사이타마 니시보리의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