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일상, 편안한 설렘

same place, new eyes

by Ondo fiftytwo

나는 5년째 같은 새해 여행지로 간다.

새해 첫 여행,

연말 여행으로 늘 같은 제주, 같은 숙소다.

출장으로도 1년에 1-2번은 가니까
그곳엔 이미 내가 머문 기억이 가득하지만,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새롭다.
못 보던 길이 보이고, 나무가 보였다.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싶은 가게도 눈에 뜨인다.

지나치던 풍경이 다르게 빛나보였다.

아마도 그 사이에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일상이 주는 지루함이 싫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장소 새로움만이 좋아 보였다.

운동이나 공부 뒤에 붙은 루틴은 멋져 보였지만,

일상은 지루하기만 하고

정체돼서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의 반복, 같은 길, 같은 시간, 같은 커피 —

그 안에서 우리는 ‘루틴’이라고 부르면 성실함이 되고,

‘일상’이라고 부르면 답답함이 된다.


하지만 매번 같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같은 곳으로 떠나도,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루틴도, 일상도 결국 나를 지켜주는 구조라는 걸.


사람들은 자꾸 일상을 벗어나려 한다.
여행을 꿈꾸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선다.


물론 그런 일탈도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똑같은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일상은,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바탕이다.


커피를 내리고, 러닝화를 신고,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 후 아이와 밥을 먹고,
그 모든 단조로운 순간들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루틴이란 이름을 붙이든,
그냥 일상이라 부르든,
결국 중요한 건 ‘반복의 온도’다.


같은 루틴이 주는 익숙함은

새로운 선택을 덜 두렵게 만든다.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편안한 설렘을 선택할 수 있다.


일상은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갈 여백을 준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는 것 —


그게 어쩌면,
가장 따뜻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우리를 묶어두지 않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