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Bitter, yet beautiful

by Ondo fiftytwo

일 년의 성적표를 받아 드는 계절이다.


차가운 모니터 화면 속 몇 줄의 평가와 등급.

그것들이 나의 지난 365일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Not everything that counts can be counted.


"더 잘할 수 있었을까?"

"그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이

먼지처럼 떠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그래서,

그 시간을 되돌려 다시 시작하고 싶어?”

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단호한 No다.


대단한 성취를 이뤘기 때문이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트로피를 손에 쥐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나는 그 시간들을

온몸으로 통과해 왔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5시 반,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끓이고,

쓴 커피 한 잔으로

억지로 정신을 깨우며 버텨낸

그 모든 아침이 나에게는 있다.

The best way out is always through.


남들이 말하는 정답 같은 길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때로는 요령이 없어서,

때로는 미련해서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울퉁불퉁하고 서툴렀던 시간들 속에는

타인의 평가로는 결코 측정되지 않는

나만의 밀도가 담겨 있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지금의 결과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내가 쏟아낸 그 시간의 무게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칭찬받지 못한 노력도,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고민도,

결국 내가 감당하고 살아낸 나의 삶이었다.


책상 위,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처음의 따뜻함은 사라지고

차가운 산미와 쓴맛만이 혀끝에 남는다.


하지만 이 맛 또한 커피의 일부다.


나의 일 년도 그렇다.

아쉽고, 조금은 쓰고,

만족스럽지 않은 구석이 있어도

이것은 온전히 내가 마신 시간이다.


그러니 나는 빈 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히,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치열했어. 그거면 됐어.

돌아가진 않을 거야.”


Bitter, but mine.

I own 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