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선언
화장실의 차가운 조명 아래,
숨을 죽이고 플라스틱 막대기를 내려다본다.
시간이 멈춘 듯한 3분.
그리고 서서히,
그러나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른 붉은색 두 줄.
그 순간, 나의 세계는 뒤집혔다.
기쁨, 당황, 설렘, 두려움...
수만 가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그 모든 감정의 끝에 가장 먼저 든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은 이것이었다.
'잠깐, 그럼 나 이제 커피 못 마시는 거야?'
나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몽롱한 정신을 깨워주는 알람이자,
복잡한 업무 스트레스를 씻어내리는 위로였고,
나라는 사람의 온도를 유지해 주는 소울메이트였다.
그런데 그 존재를 하루아침에 끊어야 한다니.
임신이라는 사실은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선언과도 같았다.
"이제부터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그날부터 나의 모든 일상은
'나'를 중심축으로 돌아가던 궤도에서 이탈해,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먹고 싶은 것보다 먹어야 할 것을 찾아야 했고,
하고 싶은 행동보다 조심해야 할 행동이 늘어났다.
가장 먼저 카페인과 작별을 고했다.
회사 카페를 지날 때마다 퍼지는
고소한 향기가 나를 고문했다.
동료들이 점심 식사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들어올 때,
나는 미지근한 루이보스 차나
오렌지 주스를 홀짝여야 했다.
그 사소한 박탈감이 어찌나 서럽던지.
고작 커피 한 잔 마음대로
못 마시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엄마'라는
무게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습관, 나의 취향...
이 모든 것을 하나둘씩 양보하고 포기해야만
비로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
뱃속의 아이는 콩알만 한 크기로 자리 잡았을 뿐인데,
내 우주는 이미 거대한 충돌을 시작하고 있었다.
출근길,
습관처럼 단골 카페 앞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입안이 씁쓸했다.
엄마가 되는 길은, 시작부터 참 목마르고 험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