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아한 먼지가 되는 법.
세탁기에서 꺼낸 축축한 빨래를
털어 널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건조기가 보송하게 말려주고,
식사 후엔 식기세척기가 그릇을 닦는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갈 시간조차 아까워
스마트폰을 두드리면,
새벽배송을 넘어 이제는 30분 만에
라이더가 문 앞에 식재료를 놓고 간다.
가사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가전과 편리한 서비스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산술 적으로라면 우리는 과거의 어머니들보다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은 더 여유로워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우리는 더 바쁜가.
기계가 벌어준 그 시간은 다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우리는 그 빈틈을 기어이
다른 것으로 채워 넣고야 만다.
남은 시간에 멍하니 하늘을 보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훑고,
자기 계발서를 읽고,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점검하고,
밀린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편리함은 우리에게 '여유'를 선물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요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성취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
그렇게 숨 가쁘게 달리다 잠시 멈춰 선 곳,
포도뮤지엄이었다.
우주.
그 압도적인 시공간 앞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나의 시간은
먼지 한 톨의 깜빡임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쫓기듯 처리했던 그 수많은 일들,
논문의 압박,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의
파김치 같은 피로, 그 모든 치열함이
우주의 눈으로 보면 그저 찰나의 정적일 뿐이었다.
오늘 내가 쓴 글이 별로여도, 연구가 막혀도,
아이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지 못해 자책했던 밤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티도 안 나는 일이다.
그 '별거 아님'이 나를 일으킨다.
우리는 너무 비장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찰나를 살다 가는 먼지라면,
빽빽하게 채우려 애쓰기보다 둥둥 떠다니는
이 순간의 유영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나의 작고 소소한 꼼지락,
어설픈 도전, 그리고 실패들.
그 모든 것이 우주를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괜찮다.
먼지 같은 우리는,
오늘 좀 대충 살아도,
실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 가벼움 덕분에
우리는 내일 또
담대하게 무언가를 저질러 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