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본인을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는 건 무례한 것 같아

by 온돌

입사 후, 첫 본부 워크샵이 있었다. 본부 유일 신입사원인 내게도 특명이 떨어졌다. 워크샵에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 첫인상이 중요하다던데 회사 선배들에게 처음으로 나를 보여주는 자리인 만큼 어떻게 나를 소개하면 좋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하다 보니 부담감만 더해져 힘을 빼고 무난한 구성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자기소개의 국룰이라고 할 수 있는 MBTI 소개로 서문을 열어, TMI에 가까운 내 취향과 취미를 소개하고, 훌륭한 패스플레이를 하는 후배가 되고 싶다는 마무리로 구성했다. 강렬한 인상은 못 남겼어도 그럭저럭 흠 잡힐 구석 없이 이 시간을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의외의 부분에서 이슈가 발생했다.

"나는 본인을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는 건 무례한 것 같아."


선배가 툭 던진 말에 마음이 뜨끔했다. 내 자기소개 첫 시작이 '저는 I 성향이라서 낯을 많이 가리는데요~' 였기 때문이다. MBTI가 대중화된 이래로 늘 스스로를 내향인으로 소개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첫 인사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는 선배의 말에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화제는 빠르게 넘어갔다. 이유를 영 모른 채 마음이 계속 따끔거렸다.


며칠간, 그 말이 가시처럼 남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의 말을 최대한 소화해 보려 노력한 결과, 내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 만남은 사실 모두에게 어렵다. 다들 어색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본인을 '내향인'으로 규정하며 소개하는 것은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셈이 된다. 나는 내향적이니까, 네가 분위기를 풀어야 한다 -라는 식의 선언이라고나 할까.


당연하게도 내 의도는 그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정형화된 MBTI라는 툴을 사용해 나를 효율적으로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고, 내가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모두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많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말이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면,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무례함이 맞는 것도 같았다. 난 내향인이니까,라는 말에 숨어 상대에게만 책임을 돌린 것도 같았다. 한동안 누군가와 대화할 때면 미처 소화하지 못한 가시가 심장을 쿡쿡 찔러 억지로 말을 꺼내곤 했다.


첫 자기소개를 하고 일 년이 흘렀다. 본부에 또 새로운 신입사원이 오게 되어 자기소개를 듣는 자리가 있었다. 작년의 내 모습을 슬쩍 떠올려보다가 또다시 가시 같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꽤나 지난 일임에도 다시 떠올리니 따끔따끔. 어떤 말은 참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꼭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을까?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척 감추어 '넌 참 무례해'라고 말을 던진 그가 더 무례했던 건 아닐까? 내가 정말로 무례하게 느껴졌던 걸까? 그때는 의문과 의심 없이 어떻게든 소화하려고 했던 그 말은 소화할 필요 없는, 애초에 소화할 수 없는 가시였다. 그냥 뱉어버리면 됐다는 걸 난 이제야 알게 됐다.


일 년 동안 마음을 찔렀던 가시를 오늘에야 퉤 -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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