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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권 Jul 08. 2020

대학원 와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 네...? 있긴 한가요? 하하... (묵념)


.

대학원이 그렇게 힘든 곳이라면...

애초에 왜 간 건가요?

도대체 왜 진작 안 나오고 거기 있는 거예요...?




대학원 다니면서 슬럼프가 꽤 길게 있었습니다. 한두 달 정도? (<아마 기억의 미화일 듯...)


막 우울한 건 아닌데,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없었던 시기.

도대체 언제 내가 행복했는지, 내가 연구를 좋아하긴 했는지,

내가 오늘을 힘겹게 버텨서 내일을 기다리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있긴 있었는지 헷갈리던 시기.


그때 마침, 직업 만족도를 조사하는 대상에 랜덤 하게 걸려서 참여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검사하면서 저는 꽤 놀랐었습니다.


제가 왜 안 행복한지 모를 정도로,

제가 꿈꾸던 직업의 많은 것들을

대학원 생활이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빼고.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는 제 생각보다 훨씬 훨씬 중요했고 실제로 너무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하하!!!)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가볍게 사소한 것들을 적습니다.

제가 대학원 생활에서 사랑하는 것들, 존재들, 순간들.


연구 생활의 특성(랩 by랩, 교수님 by교수님, 학생 by학생) 상

주관적일 수도 있고, 그저 저 혼자만의 행복일 수도 있지만,

제가 정말 행복하고 행운이라고 여기는 작고 사소한 것들.



새벽에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것.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 저는 중학교 때부터 새벽에 가장 마음이 차분하고 집중이 잘 되는 인간 유형인데, 이게 참 행복합니다.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새벽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


옷을 마음대로 입어도 된다는 것. 꾸미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 저는 옷을 신경 쓰지 않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특히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데 구두를 신거나, 정장을 입거나, 좋은 가방을 들고 시계를 차거나, (남자나 여자나) 화장을 해야 한다면 저는 몸보다도 정신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더 좋은 옷, 예쁜 옷, 장신구를 알아보고 가꾸는 것은 제게 행복을 주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토론을 해도 된다는 것.

> 저는 토론을 사랑합니다. 늘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대화가 편안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주제든, 토론과 질문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문화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편안합니다. 심지어 혼자 생각해보다가 더 찾아보고 나중에 질문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거나 어색해지지 않는 환경이 너무 좋아요...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적다는 것.

> 연구실은 사회생활이 비교적 적고, 학문이라는 비슷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서로의 감정교류가 적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일이 확실하게 주어져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감정에 휩쓸리면 연이어 밤샌 것보다 그 여파가 큰 사람인지라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적다는 것, 사람과의 교류가 한정되어있다는 것에서 불행할 요소가 적은 것 같습니다.


감정에 휩쓸리더라도, 다시 내가 나 자신을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 언제든지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들든 아니든, 어딘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분을 주더라고요. 감정도 휩쓸리거나 휘말릴 때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더 잘 이해가 기도 했고요. 정말 개인적인 이유군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

> 학계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은 명품, 좋은 차, 이런 것 별로 관심 없습니다. (학계는 대부분 풍요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바라시는 분들은 이미 갖추셨거나, 보통 학부 때부터 학계가 아닌 길을 가시더라고요...) 특히나 돈으로 직결되지 않는 연구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연구를 하는 이유는, 보통 정말 재밌어서/궁금해서 이거나 내가 이 연구에 의미를 찾는 경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화할 때 한결 수월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그냥 운이 억수로 좋아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신 것일지도 모르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평생 이 일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 제겐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일이 없는 제 삶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제가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고 상상이 안 갑니다. 따라서 대학원에서 전공을 하나 잡고 공부를 하며 이 전공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이 제 전문성으로 이어진다는 것, 따라서 지금 하는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제게 매우 중요하고 안정감을 주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언어논리가 중요시되는 세계라는 것

> 학계는 생각보다 어떤 전공이든 활자(text) 위주로 정보 전달이 됩니다. 물론 이론 물리, 수학 쪽으로 가면 덜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언어논리로 논문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글을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었고, 활자가 점점 영상으로 대체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글을 많이 읽고 쓸 수 있는 분야, 언어논리를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학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잘 쓰인 글을 읽고, 더 발전된 논리를 고민하고 전개하는 것은 행복해요. 학계에 온 덕분에 학위를 포기하거나 탈락하지(도태되지) 않는 한, 전 평생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것 같고, 이는 제 행복에 매우 중요합니다.


양적 연구(quantitative research)에 대한 경제적인/환경적인 지원이 있다는 것.

> 늘 경제 문제가 큰 불안과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 저는 제가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졸업에 필요한 인지신경 연구 실험을 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온전히 제 개인적인 돈으로 진행한다거나, 연구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서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행운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건 제가 영문과로 석사 과정을 했다면 있었다면 아마도 꿈꿀 수 없었던 것들이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학계가 아니었다면, 대학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가 지금 제가 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결과에 대해서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단어로 요약하자면:

자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일이겠네요.



수요일인 만큼 가볍고 짧게 쓰려고 했는데...

추후에 수정하면서 짧게 편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감하시는 부분이 있으시거나, 본인만의 행복포인트가 빠져서 아쉬우시다면 작은 용기를 내어 댓글로 알려주세요! ㅎㅎ


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일에는 좀 더 근본적으로 대학원을 사랑하는 이유들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모두 평안한 밤, 평안한 한주 되세요 :)



몸살이 난 관계로... 1주일 푹 쉬고 7/22 수요일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세이브 분도 미리 만들어 놓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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