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1-04-13 스노우볼

스노우볼의 폭설을 그치게 하는 법

by 한권

ADHD 관련 유튜브를 하는 유튜버는, 자신의 마음이 들뜨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스노우볼(snowball: 눈이나 반짝이가 내리는 수정구슬)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담가가 '이 스노우볼처럼 너의 마음은 지금 소용돌이치고 뒤섞여서 뭐가 뭔지 안 보이지만, 차분히 가라앉히면 또렷하게 보일 것'이라고 한 뒤로, 스노우볼을 다르게 본다고. 이 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누구나 침전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오히려 이 불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드러내면 스노우볼이 더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손에 닿아 깨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깨달음.


나 또한 불안하면 새벽에도 전화를 거는 연인이 된 적도 있었고 반대로 그런 연인을 만난 적도 있으나 두 방향 모두를 겪으며 얻은 답은 '나 자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불안함이든 외로움이든. 나의 불안을 감내하지 못하고 똑같은 이유로 불안해하고, 상대에게 매달리며 다독임을 바라는 시간은 결과적으로 결코 구원받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불안을 없앨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꾸준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현실에 대한 건강한 인지와 자기 격려를 도와봤지만, 홀로 설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목발을 줘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목발을 안 쓰겠다고,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그러나 재활치료와 상담을 비롯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원할 수 없었다. '넌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지금까지 빛을 뿜으며 뛰어왔고, 지금도 느리지만 멋지게 걷고 있어, 나는 어떤 모습의 너라도 사랑해'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그들은 '아냐 난 불행해. 불안해. 나를 다독여줘.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나는 너의 힘듦을 볼 여력이 없고, 나는 네가 나를 걱정해주고 조금 더 챙겨주고 이 모든 감정을 언제 어디서든 받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중요한 사람인데 이 정도도 못해줘? 내가 이렇게까지 불안해서 하는 행동인데 이것도 이해 못해줘?'라는 말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무리 방독면을 쓰고 함께 재활치료를 하자고, 우리 조금이라도 더 걷고, 조금이라도 더 잘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중심을 잡자고 해도 감내할 수가 없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제 내가 불안하면 이 네 가지는 꼭 지키고자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잘 재우고 있는지, 규칙적인 시간에 건강한 음식을 잘 먹이려고 하고 있는지, 땀이 나고 숨이 차며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하는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괜찮다고 다독여주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러하듯, 내 자신에게도 자조적인 말, 뾰족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점이 중요했다. '망했어', '자살할까', '노답이야' 등의 말은 그 당시에는 웃어 넘기는 약처럼 보일지 모르나, 카페인 크래시처럼 이자까지 쳐서 마음을 깊숙히 할퀴므로.


눈이 내리는 스노우볼에 봄이 오게 하는 법은 이리저리 스노우볼을 돌려가며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히 그 스노우볼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스노우볼을 놓는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균형을 맞춰주며, 흔들리거나 휘청이지 않는 다리를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혼자 눈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는 과정까지 사랑할지도 모르는 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1-04-12 모른다는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