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볼의 폭설을 그치게 하는 법
ADHD 관련 유튜브를 하는 유튜버는, 자신의 마음이 들뜨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스노우볼(snowball: 눈이나 반짝이가 내리는 수정구슬)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담가가 '이 스노우볼처럼 너의 마음은 지금 소용돌이치고 뒤섞여서 뭐가 뭔지 안 보이지만, 차분히 가라앉히면 또렷하게 보일 것'이라고 한 뒤로, 스노우볼을 다르게 본다고. 이 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누구나 침전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오히려 이 불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드러내면 스노우볼이 더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손에 닿아 깨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깨달음.
나 또한 불안하면 새벽에도 전화를 거는 연인이 된 적도 있었고 반대로 그런 연인을 만난 적도 있으나 두 방향 모두를 겪으며 얻은 답은 '나 자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불안함이든 외로움이든. 나의 불안을 감내하지 못하고 똑같은 이유로 불안해하고, 상대에게 매달리며 다독임을 바라는 시간은 결과적으로 결코 구원받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불안을 없앨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꾸준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현실에 대한 건강한 인지와 자기 격려를 도와봤지만, 홀로 설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목발을 줘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목발을 안 쓰겠다고,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그러나 재활치료와 상담을 비롯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원할 수 없었다. '넌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지금까지 빛을 뿜으며 뛰어왔고, 지금도 느리지만 멋지게 걷고 있어, 나는 어떤 모습의 너라도 사랑해'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그들은 '아냐 난 불행해. 불안해. 나를 다독여줘.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나는 너의 힘듦을 볼 여력이 없고, 나는 네가 나를 걱정해주고 조금 더 챙겨주고 이 모든 감정을 언제 어디서든 받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중요한 사람인데 이 정도도 못해줘? 내가 이렇게까지 불안해서 하는 행동인데 이것도 이해 못해줘?'라는 말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무리 방독면을 쓰고 함께 재활치료를 하자고, 우리 조금이라도 더 걷고, 조금이라도 더 잘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중심을 잡자고 해도 감내할 수가 없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제 내가 불안하면 이 네 가지는 꼭 지키고자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잘 재우고 있는지, 규칙적인 시간에 건강한 음식을 잘 먹이려고 하고 있는지, 땀이 나고 숨이 차며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하는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괜찮다고 다독여주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러하듯, 내 자신에게도 자조적인 말, 뾰족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점이 중요했다. '망했어', '자살할까', '노답이야' 등의 말은 그 당시에는 웃어 넘기는 약처럼 보일지 모르나, 카페인 크래시처럼 이자까지 쳐서 마음을 깊숙히 할퀴므로.
눈이 내리는 스노우볼에 봄이 오게 하는 법은 이리저리 스노우볼을 돌려가며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히 그 스노우볼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스노우볼을 놓는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균형을 맞춰주며, 흔들리거나 휘청이지 않는 다리를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혼자 눈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는 과정까지 사랑할지도 모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