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의 존재 이유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 요조
누군가 내게 연인 관계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나는 '망망대해에서 각각의 돛단배 한 척씩을 함께 저어나갈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삶은 늘 예측이 불가능할 것이고,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으니까. 특히나 미국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교수라는 정규직이 희박한 진로를 걷는 대학원생의 삶에게는 더더욱. 우리는 삶이라는 외부 환경, 그 광활한 바다 위에서 언제든지 막막함을 느낄 것이며, 그 바다는 평온할 수도, 풍요로울 수도, 쓰나미를 선사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의 배는 뒤집혀서, 그 배가 산산조각 난 것을 수리할 동안은 다른 사람 배를 함께 탈 수도 있고, 그 함께 하는 사람이 배를 고쳐주는 것을 도와주고,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두 사람의 배가 모두 난파되기도 하는 걸.
어떤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배를 따로 저어가냐고, 연인은 무조건 한배라고 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의 관계도 그러한 속성이 있으나 나의 표현이, 단어 선택이 틀린 것일 수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는 나의 가장 근본적인 삶의 가치에서 자유와 전문성을 갈망하는 것을 이해할 사람을 바라고, 그저 '나는 네가 왜 그렇게까지 커리어를 삶의 중심에 두고 그 온갖 모험을 하는지 모르겠어. 집에 돌아오면 내가 있는 일상을 지키는 수단만으로써의 커리어는 만족스럽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를 외롭게 하기에 이런 비유를 들었다. 내게 망망대해의 삶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은 나만의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혹여나 '모르겠어. 그래서 모르는 것을 삶에 들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모를 테지만 너와 함께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바뀔 필요도 없는 일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관계를 대하고 싶은지, 본인의 감정과 확신은 나신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대면할 수 있을 때만 알 수 있으니까. 때가 아닌 봉오리를, 혹은 영영 꽃이 피지 않을지도 모르는 봉오리를 손으로 필 수 없고, 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 소울의 영혼22에게 말하듯 하나의 감정이 싹트기 전에 알려줄 수 있다면, 그저 이 환경이 어떤 날씨이고 어떤 땅을 갖고 있는지 알려줄 뿐이다. '왜 모르는 것을 내 삶에 들이게 했어'라는 원망은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으므로.
'내가 행복해지려고 오빠를 만나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오빠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다독임에 결혼 확신을 가졌다는 유희열 작곡가님의 결심에 공명한다.
존 A. 셰드
그러나 모두가 배가 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저 본인에게 가장 편안한 삶의 형태로, 한 척의 배든, 두척의 배든, 혹은 배 자체가 아니든, 이 망망대해에 둥둥 몸을 맡기고 흘러갈 뿐, 정답은 없다. 연인관계라면, 서로가 바라는 대화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