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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쿨타임

부유하는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걷어내는 시간

by 한권

'이 생활을 앞으로 4.5년 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는 내게 물었다. 지금 내가 가진 마음의 상태가 외로움이 아니냐고. 내게는 이 생활이 할 수 있다 없다는 옵션이 아니었는데. 그저 해내야만 하는 것. 유학길에 오른 이유가 있고, 간절하게 삶을 걸고 박사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나는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나의 마음 상태가 무엇인지 안 그래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외로운 감정의 그것과, 외딴곳에서, 철저히 외부인으로서 취급되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은 그 결과 감촉이 달랐다. 불안함에 내 삶이 휘청거리는 사람은 혀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되고 싶지 않았는데. 휘청거리는 사람은 자신이 휘청거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것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술 취한 사람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면서도, 취하지 않았다고 나는 멀쩡하다고 외치는 것처럼. 지금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의 중심을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겠지. 나 자신의 한순간에 감정에 무책임하게 휘말리는 사람은 죽어도 되고 싶지 않으며, 나는 내가 나중에 돌아봐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이고 싶다. 술, 지방, 군살, 수면부족, 카페인 러시를 비롯하여 나를 탁하고, 둔하게 하며, 무겁게 하는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덜어내기. 날을 세우게 하고, 불편하게 하며, 쓸데없는 불안에 쎄한 second guessing을 하게 만드는 독성들. 말과 교류를 줄이고 침전. 부유하는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걷어내는 시간. 삶을 불필요한 해독 과정에 낭비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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