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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권 Apr 21. 2021

2021-04-19 눈을 맞추면 생기는 마법 같은 능력

우리만 볼 수 있는 찰나의 순간

두 번째에서 세 번째 줄 중간쯤.


매 시간 자리를 고를 수 있는 대학에서 나는 늘 강연자의 표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질문을 하거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강연자가 바로 눈길이 가는 자리. 수업이 끝나고 질문하기도 편했으며,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으면 다시 설명을 들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수업에 가장 집중하기 좋았다. 물론 내 자신이 딴짓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드는데도 의의가 있었고.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있던 습관이어서, 언젠가 한 번은 머리를 해주시는 분이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하고 물으셨다. 거울로 눈이 마주치더라도, 웃거나 눈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고.


이렇게 눈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을 때는 내가 편안한 사람들과 있을 때였는데,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혹은 마음을 열은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그 표정의 찰나들을 포착할 때 행복했다.


어릴 때 그대로 장난기 어리게 씩 웃는 모습,

약간 부끄럽다는 듯이 귀 끝이 빨갛게 물드는 순간,

파르르 미세하게 떨리던 속눈썹.


그리고 그들 또한 나의 표정에 공명하여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좋았다. 설령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아는 사람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의 표정들.


어머니는 인상을 보실 때 '그 사람은 표정이 편안해' 혹은 '어딘가 편안하지 않아 보여. 그늘이 있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아주 조금, 그런 구름이 끼었는지 여부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에서 엿보는 능력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라면, 그들의 얼굴에 살짝이라도 먹구름이 드리워졌을 때 내가 그 먹구름을 거둬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의 얼굴에 비친 편안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풀어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법 같이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보고 나에게 그래 주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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