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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권 Apr 22. 2021

2021-04-21 봄이라는 눈의 이름

오늘처럼 상상보다 더 예쁘고 좋은 날이 되기를

폭설. '벌써 4월도 다 갔네...' 하고 방심할 때 즈음, 며칠 전기장판을 켜고 잠들어야 한다 싶더니 오늘은 눈이 쏟아졌다. 당황스러움에 우왕좌왕하다가, 아예 눈이 쏟아져버리니 체념하고 그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스노우볼에 봄이 오는 법을 쓰기가 무색하게, 인생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마음의 스노우볼 정도는 잠잠하게 만들 수 있나 노력해봤는데 도시를 스노우볼로 만들어버리는 인생의 스케일. 빼앗긴 봄은 언제 돌아오는가. 내 것이었던 적이 없으니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한국은 벚꽃엔딩이라는데 여기는 눈꽃엔딩이 언제인가. 실없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핫팩으로 이리저리 문지르고 있자니 멀리서 시계탑의 종소리가 울릴 무렵 눈이 그쳤다. 친구와 이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든다면 이름은 봄으로 하자고 했다. 눈 폭탄 덕분에 만들었으니 영화 마더처럼 bomb과 봄의 소리가 비슷한 것에서 착안한 상징적인 이름. 봉준호 감독님은 마더와 머더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아이러니는 담고자 했다고 했다. 우리는 봄이라는 눈사람을 만들어 어떤 아이러니를 담아낼 수 있을까. 봄이 오지 않았기에 탄생한 봄이라는 존재. 


21년 4월 21일. 날짜가 예쁘다. 날짜가 예쁜 날들은 다른 날들보다 더 기억에 잘 남는데, 아마 몇 년 뒤에도 오늘의 폭설은 잊지 못할 것 같은 기분. A moment I would never forget. 22년 2월 22일은 내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늘 그랬듯이,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람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오늘처럼 상상보다 더 예쁘고 좋은 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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