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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아 Jun 02. 2019

오늘도 배운다

6장, 당군신화(당근마켓 마케터의 에세이집)

"점심 뭐 먹을까요?"


세상에는 3가지의 고통이 있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타격으로 인한 고통이고, 두 번째는 심리적인 불안감 또는 압박감 등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며 마지막은 당근마켓 점심 메뉴를 뭐 먹을지 한참을 서서 고민해야 되는 고통이다. 대개 마지막 고통은 행복한 고통이라 부른다. 당근마켓에서 받는 고통의 대부분은 이 점심 메뉴 고르는 데에서 온다 — 아 물론 업무로부터 고통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


1층 짧은 복도에 당근전사들은 빽빽이 서서 한참 동안 메뉴를 생각하다 몇몇 동료들이 꽤 괜찮은 답안을 제시한다.

"오랜만에 양꼬치 먹으러 가요!"

"낙곱새 드실 분?"

곧 당근마켓은 강남역으로 이사를 가기에 당근전사들은 서초역에서만 맛보았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떠올린다. 각각 양꼬치전, 낙곱새전에 참전을 희망한 용병들이 한껏 배고픔을 무장한 채 길을 나섰고  나는 내 배고픔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떠오른 한 장소!

“길버트 가실 분!?”

길버트는 서초구에만 있는 수제 햄버거집인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금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꽤 많구나. 당했다. 어쨌든 지금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서초역 근처에만 있는 수제 햄버거집인 줄 알았던 그 당시의 나는 당당하게 길버트를 외쳤고, 달랑 머신러닝 엔지니어인 매튜만 손을 들었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이성계에게는 각자의 정도전이 있는 법*이다. 길버트전의 서막을 알리기엔 둘이면 충분하다.


*도서, <카오스 멍키>의 “모든 잡스에게는 각자의 워즈니악이 있는 법이다”를 내 식대로 오마주한 것이다.




매튜와 단 둘이 식사를 하는 것은 (내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처음이다. 매튜는 최근에 데이터를 뽑아주거나, 필요한 데이터를 볼 수 있게 가르쳐주는 등 마케팅팀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동료이다. 서초점이 유일한 줄 알았던 수제 버거를 뜯으면서 마치 내가 매튜와 둘이 있을 때를 준비한 듯 요 근래 가졌던 나의 생각과 고민을 퍼붓기 시작했다. 매튜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경청하며, 때론 끄덕이고 때론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내 생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주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제프”

정확히 서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해주었던 말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 안에 가진 셀 수 없이 많은 물음표, 그리고 대부분은 그 물음표에 대한 정답이 내 안에 존재한다. 어쩌면 그 정답이 진짜 정답이 맞다고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당신의 생각이 맞아요. 당신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어디선가 내 귓가에 속삭이듯 간지럽힌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라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내가 당근마켓에 하루를 보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1시부터 2시 30분 즈음이다. 우리는 1시(정확히는 12시 50분이다)에 점심을 먹으며 점심을 먹을 때, 그리고 돌아와서 당근 거실에 앉아 쉴 때 업무에서 약간은 벗어났지만 뼈가 있는 이야기를 동료 간에 주고받는다. 그래서 난 이 시간대가 하나의 작은 강연 같다고 항상 생각한다. 동등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가볍게 농담도 섞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전하는 말에는 배움이 있고 통찰이 있다. 그래서 난 이 시간을 좋아하고 즐긴다.


많은 동료와 앉아 있을 때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공중에 퍼지게 되는데, 가끔은 점심 메뉴를 고르듯 어떤 이야기에 더 집중할지 행복한 고통에 빠지곤 한다. 하나를 들으면 하나를 못 듣게 되니 이것 참 속상하다. 최대한 많이 들으려 하고 좋은 말들을 모두 체득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받은 만큼 나도 무언가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니 어쭙잖은 조언이나 껍데기만 화려한 말들 말고 오히려 그들의 말에 경청하고 있다는 추임새라도 주는 괜찮은 동료가 되고 싶다.


그렇게 난, 오늘도 배운다.


다음 장에 계속




<당군신화 : 당근마켓을 너무나 사랑하여 '당군'으로 불리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글쓰기 모임 '그치만 글쓰기를 하고 싶은걸'에서 JOBS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입니다. 해당 글은 8주간 진행합니다. 모임에 계시는 분들 개인의 글이 한데 묶여 책으로 발간될 예정입니다.


<잡스JOBS : 직장인실전편>

전국 독립서점에서 찾아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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