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당군신화(당근마켓 마케터의 에세이집)
제프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유일한 마케팅팀 동료 니콜이 대답했다.
니콜은 당근마켓의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 설정과 운영 등 마케팅팀을 리드하는 퍼포먼스 마케터이다. 콘텐츠 기획과 생산 쪽의 성향이 강한 내가 당근마켓에 들어와서 니콜로부터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배웠으며,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다른 동료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요한 동료이다.
당근마켓의 마케팅팀은 이렇게 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에 우리는 업무량이 많아짐에 따라 2명이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로써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포지션인 크리에이티브(콘텐츠, 광고 소재) 제작 능력이 있으신 분을 뽑기로 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려고 니콜과 둘이 회의실에 앉아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였고, 채용과 관련 없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을 때 내가 했던 말에 니콜이 대답한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했기에 니콜은 '대단하다'라고 대답했을까.
"최근 몇 달간 저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근데.. 이게 참 웃긴 게, 지금도 그 고민이 스스로도 정리가 잘 안되네요"
그리고는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주섬주섬 풀어나갔다.
"내가 지금 당근마켓에 정말 도움이 되고 있나?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우리 동료들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모두 대단한 사람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내가 있어도 되나, 싶은 그런.. 뭐랄까.."
다시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 생각을 더듬거렸다.
"제프, 제프가 지금 마케터로서 얼마나 됐죠?"
실밥이 터져 나와 제대로 말을 이어갈 수 없을 때 즈음, 니콜이 나긋하게 물었다.
"전 직장에서는 1년 반 정도 일했는데 사실 마케터라는 직군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근에서 마케터가 처음이죠. 그러면 약 9개월 정도 된 것 같네요"
전 직장의 1년 반 동안의 업무를 반추하며 그곳에서의 내 경력은 딱히 내세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 약간 슬퍼졌다.
"제가 신입일 때 첫 회사에서 1년 동안 카드뉴스만 주구장창 만들었어요"
아니. 마케팅의 전반적인 흐름을 꿰뚫고 데이터 분석에 능한 니콜이 신입 마케터로서의 첫 업무가 카드뉴스 만들기였다고? 그것도 1년 동안? 콘텐츠 제작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니콜의 마케터 첫 시작의 설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제 말은 그러니까..."
니콜은 잠시 뜸을 들이는 듯싶더니 곧바로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급해하지 말아요. 아직 제프는 성장할 날이 많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잖아요. 제프, 제프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울컥하는 가슴을 눈치채지 못하게 꾹꾹 눌렀다. 내가 풀기 위해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던 이 실타래는 사실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실밥이 터져 금방이라도 삐져나올 것 같은 실뭉치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침묵을 유지한 채 있었다. 그리고 차근차근할 말을 정리하고 입 밖으로 터트렸다.
"사실, 최근에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고민들을 해결하고 싶어서 책을 읽는 등 자꾸 내 바깥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정답은 제 안에 있었던 것 같네요"
어쩌면 내 안에 있는 정답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확신에 서지 않아 누군가가 대답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작은 격려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 조급해 말라. 다 괜찮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조급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반경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내 위치에는 어떤 좌표가 찍혀 있으며, 그 위치에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다음 장에 계속
<당군신화 : 당근마켓을 너무나 사랑하여 '당군'으로 불리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는 글쓰기 모임 '그치만 글쓰기를 하고 싶은걸'에서 JOBS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글입니다. 해당 글은 8주간 진행합니다. 모임에 계시는 분들 개인의 글이 한데 묶여 책으로 발간될 예정입니다.
<잡스JOBS : 직장인실전편>
전국 독립서점에서 찾아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