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할 게 있다. 나도 당신들처럼 꼰대가 싫다. 그런데 난 꼰대가 되려고 한다. 말에 모순이 있다고?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시라.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냥 꼰대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착한' 꼰대가 되고 싶다.
각자의 꼰대의 온도
꼰대란 통상적으로 편견, 권위적인 사고, 고정관념 등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비하하는 은어로 사용되고 있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이 겪었던 시대를 토대로 한 경험의 일부분을 정당화하여 그 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하거나 조언이라는 달콤한 말로 포장하는 것들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나 때는 말이야~" 이런 문장이 대표적인 꼰대들의 대사이다.
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를 비아냥하는 형태로 발전한 '라떼는 말이야~' (너 때는 너 때고..)
이러한 일방적인 방식으로 소위 늙은이(꼰대)가 젊은이에게 접근을 하고, 했었던 지난날의 행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주아주.
그러나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꼰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위의 꼰대를 A라고 한다면 지금 말할 꼰대는 B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사람들이 지칭하는 꼰대는 A를 넘어 B의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요 근래 알 수 있었다. 꼰대 B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몇 가지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꼰대 B의 유형 1.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어른) 2. 나와 다른 세대 이야기를 하는 사람(어른) 3.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어른) 등..
기존의 꼰대A는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다가가는 방식, 즉 '일방적인' 그들의 관념을 주입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확장된 꼰대B는 늙은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중요치 않다. 그냥 나와 다르면 그들은 꼰대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주입이건 소통이건 나발이고 간에 그냥 그들을 '꼰대'라는 몰상식한 집단으로 프레임화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오늘날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나에게 위로가 되고 달콤한 설탕 같은 말들은 쏙쏙 흡수하는 반면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거나 조금이라도 가시가 되는 말은 뱉거나 아예 처음부터 귀를 막아버린다. (그래서 위로와 관련된 책들이 그렇게 불티나게 팔리나 보다)
난 이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귀를 막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신은 틀렸어', '그러니까 꼰대', '응 - 꼰대' 등으로 못 박고 틀렸다 규정하며 철벽을 치는 것은 굉장히 씁쓸하다.
그들(늙은이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할 수도 없지만) 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나를 훗날 꼰대로 부를 잠정적 젊은이는 10대들이 될 것이다. 우연히 난 그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생겼다고 치자. 난 그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얘기할 테고 내 언어로 다가갈 것이다. (설령 그것이 조심스럽게 다가갈지라도) 자기와 다른 세대의 언어를 맞닥뜨린 어떤 10대는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그러면 참 다행이다) 어떤 10대는 몹시 당황하거나 굉장히 지루한 언어라 생각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거기까지면 괜찮다. 하지만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그(젊은이)에게 듣기 싫을 것 같은 문장을 던지는 그 순간, 난 어느덧 꼰대가 되어 있을 게다. 그것이 그를 위해 하는 말이건 소통이건 나발이고 간에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내 위치가 꼰대이기보다는 누구를 손가락질하며 꼰대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젊은이들은 애석하게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늙은이들을 싸잡아 꼰대라고 규정했다.
위에도 이미 언급했지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난 아직 20대이고 곧 30대가 되기에 그때가 되어 이 글을 쓴다면 '진짜 꼰대'가 말하는 땡깡 정도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약간은 남아 있는 꼰대라고 불리는 입장이 아닌 꼰대라고 부르는 입장으로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을 때 말하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