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원아 Oct 11. 2020

첫 직장과 첫 퇴사

한원아의 픽션집 - 1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나는 어릴 적부터 늘 호기심이 많았다. 더불어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아서 관심 가는 거라면 일단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20대 초반은 학교 때문에 대전에서 거주를 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전공 수업 외에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한다는 학회 활동, 자격증 공부부터 (경영학과는 아니지만) 경영학과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학교 밖에도 자주 나돌았는데 포스터 공모전, 아이디어 공모전 등 관심이 가는 공모전이라면 보이는 족족 닥치는 대로 참가했으며 서울 소재로 한 대외활동도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고등학생 때 까지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 미련을 못 버린 건지 무대에 오를 기회가 있으면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대에 섰다. 무대에 오를 때 항상 내 실력은 원래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뭐, 대학생 시절을 그려보면 이렇다. 뭘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대표적인 게 이것들밖에 안 떠오른다. 이렇게 이것저것 찔러보는 성격 때문에 그런지 취업도 준비 기간 없이 바로 되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경험을 쌓기 위해 시작한 대외활동에서 대학생들을 관리하던 한 매니저님의 눈에 내가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내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고 디자이너가 아닌 '기획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직급은 주임이 되었다.


"박주임, 차장님한테 들었는데 너 클라이언트를 달라고 했다며? 아직 1년도 안됐으면서 건방 떠는 거야?"


클라이언트는 우리 회사에 일을 의뢰하는 다른 회사를 말한다. 우리는 다른 회사의 일을 대신해주는 마케팅 대행사이다. 그때의 매니저님은 지금 내 상사가 되었는데 직급은 대리이다. '원수는 직장에서 만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내 희망사항을 차장님께 말했더니 그 대리에게 말한 모양이다.


"아뇨... 잘못 전달이 된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달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오대리는 자기 식대로 그 말을 해석하고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지극히 건방을 떠는 신입사원의 기를 누르기 위해 회식자리 중간에 나를 불러낸 것이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너 아까 정주임한테 하는 행동 뭐야? 동갑이고 같은 주임이지만 너보다 4개월은 빨리 입사한 엄연한 선배야. 말을 그따구로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오대리님, 그게 아니라..."


더 이상 말을 해봤자 그녀는 자기 식대로 해석할게 뻔했다. 그녀는 그렇게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지어 그룹을 만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하며 그들의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그 즉시 불러내 바늘 같은 입으로 상대방의 몸을 구석구석 찔러댔다.


"박주임, 아니 박군. 당신도 내 사람이에요."

"..."


1차에서 먹었던 닭갈비와 소주가 뒤엉켜 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것들을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회사 상사야.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 이성의 끈이 내 흐린 눈앞을 서성거렸다. 가까스로 그 끈을 잡았다.


'내 사람'을 운운하는, 내 첫 직장을 안겨준... 어쩌면 내 첫 지옥을 안겨준 그 사람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난 첫 직장에서 1년을 가까스로 넘은 시점에 퇴사를 했다.


다음 편에 계속



<가끔은 픽션>

: 누구나 한 번쯤은 회사에서 겪을 사실 같지만 사실 같지 않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