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al의 클래식 정복기

피아노 시절

by Oneal Song

8. 사월의 왈츠


잔인하다.

목련이 다 피지도 못 하고 얼어 죽었다.

봉우리가 얼어서 떨어졌다.

목련이 예뻐야 벚꽃도 예쁜데 목련이 새까맣다.

날씨가 25도까지 올랐다가 갑자기 눈보라가 내렸다.

냉해다.

두 번째 변주곡 전반부 레슨이 지나갔다.

전반부는 4분의 2박자.

왼손이 8분 음표 네 개다.

4개의 음표 길이를 맞춰야 하는데 자꾸 틀린다.

왼손은 8분 음표 4개. 오른손은 4분 음표 2개.

세 번째 8분 음표에 오른손 셋잇단음표가 붙었다.

그래선지 왼손 8분 음표 길이가 들쑥날쑥 일정치 않다.

“메트로놈 연습하세요.”

처음에는 63 정도의 속도에서 시작했다.

30대까지 내려가도 메트로놈에 손을 못 맞춘다.

미칠 것 같다.

코뚜레에 매인 소 같다.

피아노 속도는 자기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악보에는 불변의 법칙 같은 속도가 정해져 있다.

피아니스트는 악보가 지시한 속도까지

따라붙어야 한다.
처음으로 피아노를 포기할 뻔했다.

주말농장에서 운영하는 텃밭에 도시농부가 고추를 심었다.

“5월 8일까지는 서리 와요.”

나에게 벼농사를 가르치는 농사의 왕(시골 농부)이 조언했다.

따스한 날씨만 믿고 심은 고추 대가 얼어서 죽었다.

농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지역가공협회 야유회를 갔다.

버스를 타고 소금강행 당일 코스다.

버스는 노래방이면서 댄스홀이다.

아침 7시 30분 출발. 저녁 7시 귀환.

버스에서는 잠시도 술과 노래가 멈추지 않는다.

“술 못 마셔요”

“젊은 사람이 술도 못 마셔”

실랑이를 대략 10회 반복.

야유회를 다녀오고 일주일간 트로트 멀미를 한다.

‘술 안 먹을 거면 농사도 짓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잠시 했다.

왼손 8분 음표를 논 레가토로 바꿨다.

논 레가토는 스타카토처럼 끊어치지만 스타카토보다는 조금 길게 쳐야 한다.

바흐 왼손의 논 레가토는 진화의 흔적이다.

바흐 시대에는 건반악기는 타악기가 아니고 발현악기다.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현을 때린다. 피아노 F(포르테)다.

발현악기는 건반을 누르면 고리가 현을 뜯는다. 클라비코드다.

나는 클라비코드 소리를 좋아했다.

클라비코드는 레가토로 치기 힘들다. 자연스레 논 레가토가 된다.

그래서 피아노를 칠 때는 스타카토처럼 끊어서 치지만 조금 길게 소리를 내야 한다.

이 미세함도 어렵다.

귀농 이 년 차.

두 번째 벼농사를 시작한다.

볍씨를 뜨거운 물에 약탕 한다.

농협에서 해준다. 지역에서 내가 속한 농협만 해준다.

조합원은 무료다. 이것도 자랑거리다.

약탕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발아기에 넣는다.

발아기에 사일 정도 넣어둔다.

발아가 안정되면 볍씨를 모판에 착상시킨다.

볍씨를 모판에 내리는 것을 ‘못자리’라고 한다.

‘모판을 자리 잡게 한다’에서 온 어원인 듯.

모판에 볍씨, 약물, 흙을 덮는다.

기계로 한다.

기계에 속도를 맞추기 위해 8명이 필요하다.

옛날에는 논에다 물을 대고 했는데 시골 농부는 하우스에 한다.

못자리하기 전에 발아된 볍씨를 말려야 한다.

날씨가 추워서 볍씨가 마르지 않았다.

하루 연기하는 탓에 인건비 6인분이 추가 지출됐다.

기후변화는 농부의 돈을 야금야금 털어간다.

“바흐만 치지 말고 쇼팽 녹턴 2번이나 드뷔시 달빛 같은 것을 쳐보면 어떨까요?

표준어로 내가 말했다.

”뭐 할까요? “

클라라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녀도 맨날 바흐 변주곡만 가르치기 지겨웠을 것이다.

이제 나는 두 개의 트랙을 달린다.

바흐 변주곡

쇼팽 야상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치는 것은

수도의 길을 가는 거 같이 길고 먼 길이다.

순례길에 서 있는 수양버들 벚꽃처럼

쉼이 필요하기도 하다.

쇼팽의 야상곡 OP.9 중 NO. 2로 정했다.

인삼 농부의 일과 벼농사 농부의 일과 정미소 일.

삼중고에 시달리다 몸살이 났다.

보름 동안 항생제를 먹었다.

낫지를 않는다.

그래도 쉴 수가 없다.

못자리가 끝났으니 15일 안에 모내기를 해야 한다.

모내기를 위해서 논에 물을 대야 한다.

농수로에 물이 내려오지 않는다.

농수로에 물이 내려오지 않으면 논에 물을 댈 수가 없다.

감기도 봄도 같이 끝났다.

딸기가 끝나간다. 잼 딸기가 주류다.

수박이 익어간다.

올해는 수박이 괜찮다는 풍문이다.

해가 져도 바람이 차갑지 않다.

서리가 멈췄다.

5월 8일. 시골 농부의 예언은 적중했다.

5월이 되자 농수로에 물이 내려온다.

감기로 밀어둔 레슨을 다시 시작한다.

바흐는 종교적이고 쇼팽은 관능적이다.

녹턴을 칠 때마다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했을

쇼팽을 생각한다.

기차는 길다.

그리움의 증거다. 1)



1) 하상욱 시집 <달나라 청소>

P.85 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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