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al의 클래식 정복기

피아노시절

by Oneal Song

11. 농부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


소설은 읽지만 수필은 안 읽어요.

나의 지인, 이과생의 취향이다.


‘뭔가 깨달은 듯하게 말하는 게 별로여서........’


내가 피아노에 대한 에세이를 쓸 때 이 말은 기준이다.


깨달음이 있는 듯, 뭔가 새로운 것을 찾은 듯, 허세 부리지 않는 것.

그렇지만 모든 것이 다 내게 가르쳐준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농부가 된 나의 급격한 변화만큼 올해는 기후변화의 강도가 강하다.

냉해가 지나가니 가뭄이 덮쳤다.

밤마다 논두렁에 물을 대려고 서 있어도 물어 없어서 논바닥이 갈라졌다.


“그냥 가뭄 덕에 논 말리는 겨”

논농사 형님이 말했다.

그래도 벼가 죽을까 겁이 난다.

“벼는 그리 쉽게 안 죽는다”

논농사를 짓지 않는 정미소 손님이 한 마디하고 간다.

그래도 겁이 난다.


장마가 다가온다는 말이 들렸다.

‘논두렁을 챙겨야 한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논두렁에 구멍이 샌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안 된다.

구멍을 막으면 다음 날 다른 구멍이 생긴다.

큰 비가 오면 구멍 난 논두렁이 무너질 수 있다.

큰비는 어쨌든 무섭다.

KakaoTalk_20250731_204155088.jpg 인삼이 타 죽는다.

가뭄에 새끼 삼들이 타 죽고 있었다.

물 호스가 없어서 발만 구른다.

장마로 비가 오면 인삼밭 가뭄은 해소될 것 같다.

득도 생기면 실도 생긴다.

농사는 그렇다.


“농사는 하늘 못 이겨”

논농사 형님의 말이 늘 새롭다.


진도는 부쩍 나갔다.

쇼팽 녹턴 2번의 진도가 바흐 변주곡 보다 빠르다.

5분 정도에 세 페이지 악보니까 진도가 빠를 수밖에.

이제는 완성도를 높이는 수순이다.


“이 곡 하나는 멋지게 만들어 봐요.”

클라라가 다그친다.

이제는 그녀의 표준어를 윤허하기로 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어색한 서울말.

“본적은유? 부모님은유?”

내가 몰아붙인다.
“두 분은 여기 분이지만,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충청도네유”
“아니에요”

그래 마음만은 서울 사람이다.


두 번째로 클라라의 공연에 초대받아서 다녀왔다.

멘델스존의 두 대의 피아노.

손열음이 남자 피아니스트와 피아노에 앉아서 서로 바라보는 모습은 왠지 로맨틱했다.

(최근에 손열음은 파트너를 임윤찬으로 바꿔서 공연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의 한 장면 같은 모습.

나는 클라라가 그런 공연을 하는가 보다, 기대했다.


연습을 안 하는 파트너를 향한 클라라의 투덜거림에 한 편이 되었다.

‘클라라와의 공연이라면 죽도록 연습해야지.’


손열음과 파트너의 피아노는 나란히 놓인다.

피아노 건반 위치가 나란히 있어서 연주자는 상대를 옆에 둔다.

상대를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연주한다.

피아노에 집중하는 듯 하지만 보지 않는 상대를 계속 느낀다.

머리는 피아노에게 다른 감각은 상대에게.

연애란 이런 것이다

일상에 집중하는 것 같아도 기실은 상대를 온 맘으로 느끼는 것.

마주 보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느낌만으로 내 세포가 상대의 체취로 깨어나는 것.

서로를 바라보지 않지만 나란히 곁에 있는 것.

그리고 한 곡의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

‘너무 낭만적이다 ‘


기대와 다른 클라라의 공연을 보고 나는 살짝 몰래 웃었다.

먼저 파트너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분이었다.

'연습 안 한 사람이 저분’

연주를 들어보자.

‘그 뒤로 불철주야 얼마나 연습하셨나.'

피아노가 서로 마주 보게 세팅되어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서로 꼬나보고.

오직 하나 피아노에만 집중하는 포지션.

하나. 둘. 셋

시작을 맞추는 고갯짓.

다행이다.


연주는 참 좋았다.

로맨틱하지 않고 연주에만 몰두해서 너무 좋은 공연.

'이럴 거면 그냥 솔로 공연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클라라의 활달한 연주는 역시 좋다.


올해는 수 십 년 만에 온 빠른 장마였다.

그러나 장마다 소문만 무성했다.

이틀 장대비 내리고 장마 끝.

장마로 잠시 목을 축인 어린 인삼이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신 논은 큰일 없이 지나갔다.

마른장마다.

벼에게는 좋은 데 인삼에게는 나쁘다.

날씨는 농부에게 반반인가 보다.

냉해. 가뭄. 빠른 장마. 마른장마.

많은 것들이 찾아왔다.

농부는 늘 하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다.


표지사진 설명

매일 이렇게 어두운 새벽에 일을 나선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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