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al의 클래식 정복기

피아노시절-별책부록

by Oneal Song

1. 순대 이야기

나는 소멸 도시에 산다.

그래서 늘 죽음이 곁에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영화 제목의 그 메멘토다.

‘메멘토는 기억하다 ‘라는 라틴어다.

고기토- ’ 나는 생각한다’처럼 한 단어인데 동사다.

나는 기억한다.

'모리'는 죽음이라는 단어다.

죽음이 늘 곁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노인이 많다.

월세를 내듯 다달이 장례를 치른다.

그리니 가야 할 장례 돈만 보내야 할 장례를 구분한다.

이번에는 꼭 가야 할 장례식이었다.

순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새벽 4:30.

어두운 신작로.

식당에 불이 켜진다.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부터 따뜻한 국물이 끓어오른다.

칼은 순대를 자르며 도마를 두드려 깨운다.

기운 내서 일 나가라고 고기는 그릇을 가득 채운다.


KakaoTalk_20250814_115654867_07.jpg 할머니 순대-맑은 국물. 파 다진 양념을 넣는다.



할머니의 규칙이다.

연중무휴.

추석과 설 당일 하루만 식당을 열지 않는다.

제사만 아니라면 할머니는 이날도 식당을 열었을 것이다.

처음엔 돈 버는 재미

나중에는 사람들 밥 먹이는 재미


나는 순대를 먹고 자랐다.

내가 1센티라도 더 크고

1킬로라도 더 무거워진 것은 다 할머니 순대 덕이다.

할머니는 오일장에 나와 무쇠솥을 걸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앉은뱅이 의자를 깔고 장사를 했다.

오일장 장사꾼들을 먹이려고

그 시절 새벽부터 국물을 끓였을 것이다.

가스나 기름이 없었으니 그 무쇠솥은 큰 아궁이에서 장작으로 불을 지폈을 것이다.

장돌뱅이들 구경으로 시장을 맴돌던 나는 돈 낼 생각도 없이 자리에 앉아 순대국밥을 먹었다.


KakaoTalk_20250814_115654867_03.jpg 기본반찬-마늘이 맛있다.

5일 장 장사로는 생계가 벅찬 할머니는 식당을 내기로 결심하고 우리 모친을 찾아와서 빚을 부탁했다.

모친은 늘 이 얘기를 한다.

‘이 식당의 모태는 내가 빌려준 돈이다.’

순댓집의 정서적인 주주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테고

이제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맛집이고 제일 돈을 많이 버는 식당이 되었으니

자기 공로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식당이 어떻게 지금처럼 커졌는지 모른다.

순대가 장터에서 매일 열리는 식당으로 옮겨 간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가끔 집에 오면 소문으로만 식당 소식을 들었다.

이때는 나는 순대도 식당도 모른척했다.

순댓국은 시골 음식이다.

나는 서울 소년이 되고 싶었다.

순댓국은 이제 고향 음식이다.

고향에 돌아오니 고향 음식이 좋아진다.


KakaoTalk_20250814_115654867_02.jpg 할머니의 의자

식당 한쪽에 할머니 의자가 있다.

아들이 지키고 있는 카운터 옆.

순대를 썰고 국물을 끓이고 밥에 국물을 들이부어 토렴하고

쟁반에 담아서 내는 주방을 마주 보는 곳.

나는 고향에 내려와서 마주친 할머니를 꼭 껴안았다.

내 할머니처럼.

“내 새끼 고생 많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내 품에서 새근새근 고운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한 번 보고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

힘에 부쳐 가게에 잘 못 나온다는 소식.

자꾸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소식.

응급실에서 요양원으로 간다는 소식.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

할머니가 다시 식당에 오신 것은 장례 마지막 날이었다.

6월 30일 미치게 더운 날.

할머니 순대 식당에서 노제를 지냈다.

모친은 할머니의 사진을 잡고 한 없이 울었다.

나는 모친이 자지러질까, 봐 옆에서 토닥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를 이어서 3대 사장인 아들 목에는 유골함이 걸려있었다.

아들은 삼성화재를 다니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내장에 피를 넣는 일을 시키기 싫었다.

그러나 아들은 60살이 되기도 전에 식당으로 들어와 돼지 창자를 닦았다.

순대를 삶는 날처럼 할머니의 유골함을 맨 아들은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손자는 버스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단다.

아들은 자기 아들에게 서울에서 고생하느니 식당에 내려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단다.

아들은 고민하다가 수긍하고 일을 시작했다.

손자는 편안 홀 서빙이 아니라 바로 창자를 닦고 피를 채우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할머니 순대’는 4대째 이어지게 되었다.

이제 할머니 순대는 음악가가 만들어 주는 순대다.

할머니의 시장 순대는 활기찬 트럼펫을 앞세운 경쾌한 군악대다.

손자의 순대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콘트라베이스가 이끄는 재즈다.

할머니 순대는 하얀 피순대다.

샌 양념이 아니라 고운 국물, 고운 순대가 매력이다.

할머니의 고운 얼굴을 닮았다.

집을 떠났다가 열흘 만에 왔다.

할머니 순댓국이 먹고 싶었다.

조금 있으면 할머니의 사십구재다.

할머니를 보러 가야겠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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