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al의 클래식 정복기

피아노 시절-별책부록

by Oneal Song

2. 세토우치 예술 기행

세토우치.

세토는 좁은, 우치는 내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좁은 바다를 가리킨다.

세토우치시는 혼슈에 있고 세토우치 예술제의 중심 도시 다카마쓰는 시코쿠에 있다.

세토우치 예술제는 시코쿠의 다카마쓰와 세토우치의 여러 섬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내가 가본 축제 중 가장 복잡한 축제다.

세토우치 좁은 바다.jpg 세토우치-좁은 내해

축제를 가는 사람과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는 축제의 동선을 놓고 무언의 밀당을 한다.

”여기에서 시작해서 저기에서 나오세요. "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렇게 지도를 그리면서 그 속에 의도를 숨긴다. 의도에는 의미와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축제에 가는 사람은 이들이 만든 길을 따라가며 그 의도를 파악하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이게 축제를 하는 재미, 이게 축제를 가는 재미다.

보물 찾기를 하는 것과 같다.

세토우치는 이런 보물찾기 재미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축제다.

이제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

그들이 깔아놓은 길을 따라갈 것이지

그들의 깔아놓은 길을 무시하고 역주행할 것인지.

여권사진.jpg 여권에 도장을 찍는 세토우치 예술제

세토우치 미술 여행은 여권(비행기 탈 때 그 여권 말고)이 필수다.

거기에는 차례로 숫자가 적혀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다카마쓰 권역 1-30

나오시마 권역 1-27

지정된 위치에 가면 여권에 찍을 도장이 준비되어 있다.

(도장은 다 똑같다. 나중에 알았지만 1번 구역에 가서 30개를 다 찍어도 된다.

물론 그러면 재미없다)

지도에는 1번부터 끝 번호까지 표시가 되어있다.

점선으로 최소 동선의 안내도 되어있다.

종일 번호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작품은 휘뚜루마뚜루로 지나간다.

도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리고 다짐해도 안 된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백화점에서 오픈 런 하는 민족이다. 맘먹으면 달려야 한다.)

여권에 대한 집착.jpg 여권 도장 찍기에 대한 집착

이 여행은 반드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이유는?
여행하기에는 너무 혹독한 기후 때문이다.

8월은 얼마나 더운가?

이러다 죽겠다는 느낌이 온다.

이거는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핑하고 어지럽다.

8월 초의 일본. 더위는 살인마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38도. 39도.

체온보다 외부 온도가 높다. 뜨거움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물을 마신다. 물이 떨어지면 죽는다.

세토우치예술제 앱에서는 폭염경보와 열사병 주의보가 뜬다.

여긴 어디?

내가 보는 바다는 동해가 아니라 태평양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호텔 로비 소파에 누운 채 얼음이 가득한 탄산수를 마시며 창밖으로 태평양 바다를 볼 수도 있었다.

천국을 버리고 나온 아담과 이브는 뜨거운 태양 아래 눈물을 흘린다.

스스로 고통과 바꾼 선택은 예술이다.

예술 그대는 무엇인가? 물처럼 살리는 존재인가 더위처럼 죽이는 존재인가?

물이 넘어가서 습기가 채워진 뒤에나 같이 있는 존재를 돌볼 여유가 생긴다.

물도 넣어주고 안 덥냐고 기운도 북돋워 준다.

“손 잡을래요”

“싫어요. 더워요”

다음에는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동토로 가자.


우동의 세계.jpg 우동의 세계- 고토히라 우동학교

나는 육식동물이다. 아저씨와 육식동물은 오빠와 초식동물에게 혐오의 대상이다.

먼 옛날 호모 속 중에도 소같이 종일 풀을 먹는 종이 있었다.

풀을 먹는 호모는 멸종했고 고기 먹는 호모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여전히 진화적으로 육식의 몸이다.

풀을 먹는 종으로 변화되려면 수 만년이 필요하다.

그전엔 우린 고기를 먹어야 한다.

“나는 밀가루가 맞는데요”
피아노 요정은 밀가루주의자다.

“설탕 밀가루 나쁜 기름 튀김은 먹으면 안 좋아요.”
나는 저탄고지-고기제일주의자다.
이 극단적 분열을 품은 여행이 처음부터 걱정이었다.


시코쿠는 四國(4개의 나라)이라는 뜻의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은 거다.

이찌니산시의 시(넷), 칸코쿠의 코쿠(나라국)가 합한 말이다.

시코쿠 가가와현(현청은 다카마쓰다)의 옛 지명이 사누끼다.

사누키 우동의 그 사누키다.

정식의 세계.jpg 정식의 세계-다카마쓰 항 쇼핑몰 구내식당

다카마쓰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첫 끼니를 먹는다.

유명 식당도 아니고 쇼핑몰 한가운데 있는 구내식당.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 여행객이 끼어 밥을 먹는다.
그냥 정식이 맛있다.

‘일본의 쌀밥은 왜 이리 단지.’

나는 내가 심은 벼를 떠올린다. 그렇게 맛있는 밥, 내 쌀도 그런 밥이 되어 주었으면.
아! 나는 올해 전부 찰벼(떡 재료)를 심었다.
밥이 맛있는 곳, 저탄은 여행에서 무너져 내린다.


카페오레.jpg 카페오레는 왜 맛있는지.

커피가 맛있는 곳, 앞으로 매일 달달한 카페오레를 매일 먹게 된다.

하드도 먹었다. 가는 숙소마다 아이스께끼는 무료다. 하루 1개.
이 친절, 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케이크도 맛있는 나라. 식후에 나는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는다. 입은 웃고 눈은 눈물을 흘린다.
나 참아야 한다.
설탕 안 먹기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음식은 설레게 하고 웃게 만든다.’
나는 이 명제를 이기지 못했다.

매일 음식이 주는 셀렘을 이기지 못했다.

오코노미야끼. 심야식당 분위기의 식당. 사누키의 본고장다운 ‘우동 학교의 우동’

가끔 망하기는 했어도. 늘 맛집이 나에게 묻는다.
“안 먹을 거야?”

아이스케키.jpg 아이스케키-더운 데는 이것 만한 게 없지

다카마쓰항에서 쇼도지마로 간다. 쇼도지마에는 올리브가 있고 간장이 있다. 쇼도지마(小豆島-작은 콩 섬), 우리 같으면 메주콩 섬의 뉘앙스다. 미치게 더운데 멋진 이글루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더운 이글루. 어둠을 헤쳐 나가는 배도 만난다. 버스를 찾지 못하고 헤매기도 하고,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온몸에 땀을 흘리며 내달리기도 했다. 다카마쓰로 돌아오는 배 고등 소리를 들으면서는 마치 전투에서 후방으로 퇴각하는 안도감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더운 이글루.jpg 폐가를 이글루로 개조-너무 덥지만 너무 시원한
어둠을 가르는 배.jpg 어둠을 가르고 가는 오디세우스 항해 같은 신비감
올리브.jpg 올리브 공원에서 바라보는 세토우치-지중해 같은

다음날 다카마쓰에서 오기지마로 간다. 오기지마에서는 안도타다오의 건물을 처음으로 만난다.

‘저기가 타다오가 만든 건물이에요’

‘오 아는 사람.’ 아는 이름에서 느끼는 안락함.
돌아가면 자랑삼아 떠들 이름이 생긴 거다.
“오기지마에 갔더니.... 바닷가에... 안도 타다오 건물이 있더라고...”

이러면 여행은 완성이 된다.

바다로 가는 다리.jpg 오기지마 맨 끝 번호 작품. 도장을 위하여

이 섬은 작다. 예쁘다. 마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섬은 아름답다. 마을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작품하나를 위해 20분을 소비했다. 바다로 걸어가는 사람 다리 6개. 귀여움을 뒤로하고 다음 섬으로. 이 섬은 바로 잊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섬 느낌이다. 망각의 섬. 여기에 살아 보고 싶다.

도깨비.jpg 도깨비 동굴

메기지마. 도깨비를 만나러 간다. 도깨비 동굴은 행복 그 자체. 여기는 너무 시원하다. 도깨비랑 여기서 살고 싶은 맘이 간절해진다. 동굴에 신비한 예술 작품이 그려져 있다. 좋다. 시원하니까, 서울에 있는 미술관을 즐기는 기분이다.

메기지마에서 다카마쓰로, 거대한 피아노가 항구에서 작별 인사를 한다.

히카리상.jpg 하츠코이 여주인공 콰르텟이라는 드라마도 나오신다.

다카마쓰 밤거리를 헤맨다. 상점에 붙은 맥주 광고 포스터. ‘하츠코이’의 여주인공이다. “반가워요. 히카리 상”

하츠코이는 오랜만에 본 일본 드라마다.

다케우치 료쿄도 없고, 나카미야 미호도 없다. 이제 ‘히카리’상인가?

이우환.jpg 나오시마 이우환 작품-예술을 향해 인사

나오시마에 간다. 가장 고품격의 작품을 만나러 간다. 새로 생긴 시립미술관에 간다. 정말 멋진 타다오의 건물들을 만난다. 이우환을 만난다. 예술의 진정한 아우라를 느낀다. 나오시마의 시그니처 ‘노란 호박’과 사진을 찍는다.
이제 마지막 배를 타고 다카마쓰로 간다.


세토우치를 바라보는 호박.jpg 세토우치를 바라보는 노란 호박

여행기는 작가의 로망이다. 여행기는 유명한 작가의 트로피 같다.

괴테의 여행기. 카잔자키스의 여행기.
나는 유명세도 없고 작가라고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내 돈으로 간다. 내 돈이어도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즐겁다.
여행을 기억하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을 되새김하는 것.

여행기를 쓰면서 세토우치 예술제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온다.

세토우치를 누비는 배.jpg 세토우치를 누비는 배

가끔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항구에서 배가 떠나는 모습

항구로 배가 들어가는 모습

선착장에 다가서는 배 선착장을 떠나는 배

세토우치는 배를 타는 여행

나는 지중해를 떠도는 오디세우스인 듯, 그는 집을 향해 가지만

나는 섬에 숨어있는 보물, 섬에 숨어있는 풍경과 아트를 찾아간다.


쇠로 만든 피아노.jpg 쇠로 만든 돛 달린 피아노

아무 소리도 못 내는 쇠로 만든 피아노가 바닷가에 서 있다.

현 위에는 커다란 돛이 달려있다.

돛마저도 쇠로 되었다.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날 수 없다.

여행을 끝낸 지금 눈을 살며시 감으면 그 풍경이 보인다.

음악이 내 맘에 맺힌다

누구도 연주하지 않는 음악이 나에게만 들린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추억은 음악이 된 듯.

세토우치는 아트를 보여주고 세토우치의 바다는 내게 음악을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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