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시절
13. 벼의 병. 농부의 병. 마음의 병.
여름휴가를 다녀와도 여전히 더운 여름이다.
더위는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물이 귀하다.
수로에 물 흐르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가장 못난이 논은 사포리라는 마을 꼭대기에 있는 다랑이 논이다.
수로에서 모터로 중간까지 배달하고 중간에 모터를 한 개 더 대서 다시 논으로 물을 댄다.
다섯 개의 논인데 모터도 하나라 가장 높은데 물을 채우면 그 아래 논, 그 논이 차면 다시 그 아래 논.
이렇게 삼 중으로 물을 내려야 한다.
물을 대는 유일한 길은 농수로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탑정호에서 수문을 열면 사포리를 관리하는 양수장까지 2시간이 걸린다. 양수장에서 물을 열면 25분 후에 내 모터가 있는 수로로 물이 지난다.
아침 10시 30분쯤에는 논에 가서 모터 스위치를 올려야 한다.
물이 귀하니 일 분이라도 더 대려고 새벽부터 다른 논을 다 돌고 난 후 가서 기다린다.
며칠 연속으로 물을 주면 좋겠지만, 가뭄 탓에 탑정호도 물이 말라간다.
비가 와도 큰비가 한 번 와야지만 탑정호에 물이 차서 수위에 여유가 생겨야 연속으로 수문을 열 수 있다.
그전에는 하루 12시간 제한 급수다.
밤 10시면 다시 논에 가서 기다린다. 물이 끊기면 모터를 꺼야 한다. 1분이라도 더 물을 올려야 하니 아무 때고 모터를 끄지 않고 버틴다.
수로에 물이 마르면 그제야 모터를 끄기 위해 논길과 풀숲을 헤맨다. 그럼 인적이 없는 곳에 종일 버티던 모기 부대가 급혈을 위해 달려든다. 논에 물 주고 모기에 피 주고. 하루가 정리된다.
여름 내내 이렇게 살다 보니 논에는 물이 부족하고 나는 잠이 부족하다. 몇 시에 자든 새벽 5시에는 일 나가야 한다.
어찌어찌 벼가 새끼를 친다. 이삭 거름을 먹고 이삭이 오른다. 이제 마지막으로 알 거름을 준다. 농사의 대미를 장식할 거름 주기다. 이때 주는 거름은 벼의 생장을 억제하는 약이다.
생장을 억제해야 생식을 많이 한다. 벼 유전자의 목표도 더 많은 유전자를 세상에 뿌리는 것이다. 많은 유전자를 뿌리기 위해서 더 많이 벼알을 키운다. 생장을 억제하면 더 이상 키는 안 크고 생식(자손을 위해 짝짓기)을 많이 한다. 벼는 더 많은 유전자를 키우는 것일 뿐, 사람에게 벼알을 더 많이 주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게 눈먼 시계공의 법칙이다. 신의 축복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법칙이다. 그러나 신이 없냐고? 매일 비 좀 내리라고 기도한다.
진화론의 무신론과 성 삼위일체의 일신론 사이를 서성이는 농부의 영혼은 작물을 위해서 간사하다.
알 거름이 걱정이다. 저번 이삭 거름 주기처럼 죽을 고생을 또 해야 하는지 걱정이다.
알 거름은 드론으로 주기로 했다.
드론이 하늘을 난다. 40킬로 그램의 무게를 장착하고 나를 수 있을 만큼 크다. 가격만 해도 사오천만 원이다. 이제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에 이어서 드론도 농사에 필수적인 농기계가 되었다. 농업 관련 업종에서 농부만 돈을 못 번다. 쌀값은 20년 전이나 똑같은데 밭에 까는 비닐까지도 가격이 올랐다.
농부는 죽지 않을 만큼만, 겨우 살 만큼만 번다. 그것도 온몸으로 쉬지 않고 일해서 번다.
잉여도 부수입도 여유도 휴가도 없는 직업이다.
드론이 비료를 뿌리는 동안 논두렁을 돈다. 이파리에 이상한 무늬가 생겼다. 논 한 귀퉁이가 전부 다 그렇다. 병이 났다.
나는 사진을 찍어서 농업기술센터로 달린다.
검색해도 안 나온다.
뭘 알아야만 검색어를 넣지, 답답해서 달린다.
여기서 귀농 교육을 받았다. 사무실로 들어간다.
“벼 선생님 어디 있어요?”
사무실 직원들이 들어오자마자 우렁차게 소리치는 나를 본다.
진흙이 잔뜩 묻은 장화가 갑자기 민망하다. 나 때문에 바닥 청소를 해야겠지만, 급하다.
일 층으로 간다. 다른 사무실에 가서 똑같이 소리친다.
“무슨 일이에요?”
“이게 뭐래유?”
핸드폰이 아픈 것처럼 핸드폰을 들이민다.
“사진을 보여 주셔야죠.”
상담실로 옮겨서 마주 앉는다.
병명은 깨씨무늬병.
벼 잎에 깨 씨를 뿌린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병인데 이름은 이쁘기도 하지.’
부아가 난다.
“나서유?”
발이 자꾸 만 동동거린다.
“이거 한번 나면 그냥 쭉 그래요. 약 쳐서 안 걸린 데로 번지는 거 막는 정도만.”
‘망한 건가?‘
이 병은 벼가 걸린 영양실조 같다고 했다. 논이 약해서 거나, 가뭄이거나, 수해를 입었거나, 거름이 부족하거나, 무슨 이유든 벼에 영양분이 충분치 않아서 생기는 병이다.
“밑거름, 이삭 거름 다 줬지요?”
나를 탓하는 뉘앙스가 안 나게 조심조심 직원이 묻는다.
이 병은 벼 탓도 논 탓도 날씨 탓도 농부 탓도 아니다. 100마지기에서 딱 두 필지 10마지기에서만 발병했다. 모판이 잘 못 된 것도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복합적이다. 영양이 부족해서다.
“어째유?”
“수확량이 좀 줄어요. 삼십 퍼센트 정도 덜 날 거 같아요.”
아무 탓도 아니고 다 농부 탓, 내 탓이다.
올가을엔 꼭 볏짚을 썰어 넣고 가을 쟁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다.
드론으로 거름 주기는 하루에 간단히 끝. 전선이 너무 많은 다랑이 논 빼놓고는 다 주었다.
다랑이 논, 참 손이 많이 간다. 벼는 젤 조금 주면서 일은 젤 많이 시킨다.
병이 난 벼도 병이 난 농부도 날 힘들게 한다. 일도 일상도 자꾸 흔들린다.
다행히 부친이 퇴원했다. 늙은 장사꾼이자 인삼 농부가 뇌경색을 앓았다.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오른손 마비가 풀리지 않은 부친은 병신이 되었다고 스스로 한탄했다.
이 미세한 차이가 나와 부친의 간격이 되었다. 간격은 자꾸 벌어졌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마음이 맺히기까지 시간이 자꾸 길어진다.
매일 두 시간의 연습은 기본이다.
' 이것도 없이 실력이 늘기를 바라지 마라.'
어느 피아노 티처의 에세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나처럼 치고 싶은 맘이 영글어야 피아노 앞에 앉은 사람은 어차피 파이다.
잘 치기는 글렀다는 말이다.
매일 나를 피아노에 데려올 의지가 출발선이다.
‘맘이 영글다.’라는 그럴싸한 좋은 말로 포장하는 게으름이다.
실패는 늘 이렇게 그럴싸한 핑계를 찾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읽기는 쓰기의 씨앗이다.
‘쓰려면 읽어야 한다’처럼 음악을 들어야 한다.
특히 피아노 연주를 들어야 한다.
꼭 내가 치는 그 곡이 아니라도 마른논에 물이 흐르게 하듯 귀와 뇌에 그리고 마음과 영혼에 피아노 소리가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은 늘 나의 인내심을 짓누른다.
밥. 물. 잠.
다른 것을 선택할 때마다 의지가 필요하지만, 논두렁에서 땀 흘리고 정미소에서 기계와 싸우고 저녁을 먹으면 모든 의지가 소멸된다.
독일에 사는 친구가 신랑하고 남매를 데리고 정미소로 휴가를 왔다. 베를린에서 내 브런치를 읽어주는 사람, 유일한 해외 구독자. 그녀가 날 위해 골든 베르크 시디를 사 왔다. 그것도 아직 포장을 뜯지 못했다.
달려보고 싶다.
건반 위를 빠르게 낮음에서 높은음까지
좌우로 손으로 달려보고 싶다.
변주곡 2장과 3장을 가장 빠른 속도로 연주해 보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인생은 가능보다 불가능이 더 많다.
깨씨무늬병에 걸린 벼처럼 방법이 없다.
병이 나면 병을 받아들여야 한다.
병이 주는 피해와 손해도 감내해야 한다.
그게 하늘의 섭리. 농부의 겸허함이다.
서울.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가 흐른다.
새벽부터 시작한 알바를 막 정리하려는 찰나였다.
악보는 멀리 집에 있다.
“이 노래 내가 칠 수 있어요.”
교대시간. 라면대를 채우던 사장에게 말해주고 싶다.
악보를 두고 서울에 오다니 이별을 작정했나 보다.
클라라에게 카톡이 온다.
“오늘은 몇 시까지 올 수 있으세요?”
레슨 시간을 정하기 위한 안내 톡.
‘이렇게 날 아껴주는 고마운 클라라여.’
피아노 선생님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다.
“농사를 그만두었어요.”
“피아노를 그만두려고요.”
어느 것도 쉽지 않다
“잠시 서울에 다녀오려고요.”
이게 좋겠다.
벼의 병과 농부의 병과 싸우다 보니 내 마음에 병이 들었다.
잠시 피아노를 쉬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