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시절-별책부록
3. 93년 삶과 53년 삶의 조우
임리 뜰은 석양이 깊다.
임리에서 살고 있는 조 씨는 93년을 산 삶이다. 나는 그를 편히 임리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우리 정미소는 임리 할아버지의 논 70마지기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다. 시골에서는 선자 짓는다고 한다.
연초에 한 해 임대료를 미리 준다고 해서 선자(先資)라고 한다.
귀농으로 논농사를 시작한 나는 53년의 삶이 되어 93년의 삶과 만났다.
93년을 산 삶에게는 53년을 살고 있는 삶은 무엇으로 보일지 가끔 궁금하다.
“이제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어 다 죽었어.”
잠시 멈춰서 담배를 피운다.
“이기 친구여. 친구는 이기 밖에 없는겨”
담배 각에서 라일락 한 송이를 꺼내 입에 물어 향기를 품는다.
위안이 있다면 오래 살았어도 아직 먼저 죽은 자식은 없다는 것이다.
93년의 삶은 아직도 53년의 삶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
선자를 받고 논을 내어 주었어도 일은 예전과 똑같이 한다.
일을 하고 나서 선자를 내는 53년의 삶이 느지막이 나타나면 늘 같은 말을 던진다.
“죽겄어. 죽어. 이제 힘들어서 죽겄어”
그래도 논으로 향하는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놓지 않는다.
수술을 하고 피 받이 오줌주머니를 허벅지에 차고도 논으로 나선다.
53년의 삶에게 묻는다.
“소주 안 가지고 온겨?”
몇 해 전, 53년의 삶이 귀농하기 서너 해 전.
93년의 삶은 소주를 찾아 정미소로 사장인 모친을 찾아왔다.
93년의 삶의 벼는 우리 정미소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넘겨졌다.
그래서 10년만에 모친과 93년의 삶은 마주 앉았다.
“소주는 안 주는 겨?”
혼자 소주를 마시던 93년은 모친에게 쓸쓸히 묻는다.
“혼자 마심 별로여. 술 안 마시는겨?”
평생 동안 주 5일을 술에 잠겨 살던 모친이 막 술을 끊었을 때였다.
벌컥벌컥 시원 달콤하게 마시는 93년 삶의 목 넘김에 침을 다시는 모친에게 말했다.
“논 좀 가쥬가. 글구 선자 쥬”
자기 논을 내놓으려고 자기 발로 찾아온 사람이 모친은 부처님 같았다고 했다.
논을 준 데서가 아니었다. 자기를 기억해 주고 먼 길을 찾아와 준 게 고마웠다.
다른 것보다 술을 찾는 모습이 제일이었다.
이제 자신은 마실 수 없는 술.
마시는 모습만 봐도 흥이 올라왔다.
자신이 마시는 기분.
“걱정 마 내 물고는 다 봐줄 테니까, 하란대로 하면 되여”
정미소 사장은 잔뜩 취해 돌아가는 등에 대고 합장을 올렸다.
93년의 삶의 술 취한 오토바이에는 부처님의 아우라가 퍼져 올랐다고 한다.
93년의 삶의 얼굴이 부처같이 환한 얼굴로 53년의 삶의 뒤를 살핀다. 모친이 같이 왔나 안 왔나 확인한다.
모친이 차에서 내리면 성큼성큼 성큼걸이처럼 걸어간다.
모친의 손에는 소주 한 병, 스팸 한 통이 들려있다.
“오늘은 한 병만 먹을 겨.”
“한 병이 작은 규? 93세 영감님아?”
금연 금주를 실행하는 53년의 삶이 속으로 소리친다.
53년의 삶은 모를 두 사람의 술 동맹.
이제는 집에서 술을 얻어먹지 못하는 93년의 삶의 유일한 보급로는 정미소 사장이다.
‘우리에게 선자를 주는 이유가 술인가?‘
53년의 삶이 모르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있다.
임리는 작은 리의 명칭이다. 작은 지명이라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 지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유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임리는 광산 김 씨의 영지 같은 곳이다.
93년의 삶의 조 씨는 김 씨들 틈에서 고생하면서 산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연산 김 씨들, 연산 김 씨들…. 내가 어디 조씬줄 알고 까부는겨”
땅 얘기를 하면 꼭 광산 김 씨를 연산 김 씨라고 부른다.
텃세를 이겨낸 승리의 파이팅이 느껴진다.
그의 삶의 굴곡과 그의 집은 닮았다.
할아버지 집은 바위를 깔고 앉아 있다.
바위 위에 집을 짓고 바위가 닳도록 애쓰며 살았다.
물이 빠지지 않는 바닥은 삶을 습지게 했고 물이 없는 바닥은 삶을 말라 버리게 했다.
그렇지만 93년의 삶은 바위 위에서 억척스럽게 살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논은 손주들 줘유?”
53년의 삶은 미래를 묻는다.
“손주들 서울에 있는 명문대 나왔어. 여기 오면 클라”
93년의 삶은 현재만 있다. 미래는 없다.
“그럼 이 논은 누가 농사짓는 데유?”
53년은 늘 다음을 묻는다.
93년의 삶에 다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배워서. 내가 하란 데로 하믄 돼여.”
53년은 늘 죽음을 생각하고 93년은 늘 오늘 삶을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53년의 농사는 늘 빈틈이 많고 93년의 삶의 농사는 빈틈이 없다.
자라는 벼. 벼를 키우는 물. 물고를 방해하는 풀. 흐트러진 논두렁.
잡생각 없이 농사만 생각한다.
매일 발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논두렁은 백 미터. 출발하면 한 번에 끝까지 가지 못 하고 중간에 멈춘다.
평생 가져 보지 못한 사이, 퍼즈, 쉼을 한다.
멈춰서 논들을 본다. 파란색들. 언제가 자기 무덤에 자랄 파란색.
53년은 상상할 수 없다.
잠시 멈춰 하늘과 논 건너편 철길을 바라면서 떠올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53년의 삶은 모른다.
늙어서 한달음에 다 걷지 못하는 논두렁, 그 위에 서 있는 게 민망해서 괜히 낫으로 풀을 친다.
풀 약으로 다 죽어서 크지도 않은 풀. 그렇게 허리를 굽혔다 펴서 쉬는 쉬간은 더 길어진다.
‘쉬는 게 아니라 논두렁 풀 베는 겨’
항변하는 것 같다.
기차가 지나간다.
가장 빨랐던 새마을호는 이제 가장 느리게 지나간다.
화물을 실은 화물기차는 더 길어지고 더 오래 소리를 낸다.
“돈 많이 벌어라”
무언가를 싣고 가는 화물차를 보면 좋아서 소리를 치는 93년의 삶이다.
93년의 삶은 평생 타보지도 않을 고속전철은 낯선 소리로 빠르게 지나간다.
고속전철이 생긴 후 귀찮은 일이 많다. 철길로 난 물길을 손보는 것이 번거롭다.
지난겨울 93년 삶과 53년 삶은 철길 옆 물길을 손질하기 위해 굴삭기를 불렀다가 일을 못했다.
“기찻길 옆에서 일하시려면 사전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시내에서부터 달려온 철도 관리사는 목에 힘주고 말했다.
“논이 먼저 생겼어. 기차가 먼저가 아니라.”
혼잣말로 속삭인다.
자신과는 싸워도 남과는 더는 싸우지 않는 93년의 삶이다.
“내가 젊어서 성질이 불이여. 아주 지랄이여.”
살면서 이리저리 싸움을 하고 살아온 93년의 삶이다.
땅을 판다고 했다가 돈 떼어먹은 사람을 메다꽂은 이야기.
시장에서 일꾼들과 술 먹다가 술집 사장을 괴롭히는 건달 멱살을 잡은 이야기.
대둔산에서 공비를 때려잡은 이야기.
등치 적다고 무시하는 군대 상사와 술 내기 고기 먹기 내기에서 이긴 얘기.
작아서 몸부림치며 산 몸뚱이에는 160cm보다 긴 이야기다 가득하다.
논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쌓은 모든 것이다.
이 논은 언제 얼마에 누구로부터 무슨 이유 때문에 샀는지 매일 보고 되새긴다.
나에게는 말 못 하는 숨은 생까지 그는 매일 뒤돌아 본다.
어느 순간 그는 더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생에 마지막 여정.
오늘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논으로 나가 돌본다.
“농부는 그런 사람이다.”
93년 삶은 53 삶에게 오토바이 소리로 말한다.
표지 사진-연산현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 사계 김장생이 가르치던 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