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시절
14. 피아노 치는 농부 길을 잃다.
새벽 5시 45분 서울 지하철에서 난 눈물을 흘린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쏘울 음악 사이로 조성진의 녹턴 2번이 끼어든다.
내 차 앞으로 다른 차가 끼어들어 급브레이크를 밟고 놀란 것 마냥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피아노 소리. 현을 두드리는 망치 소리. 강철과 투쟁하는 해머가 내는 소리. 강하게 팽창한 쇠줄을 두드리는 강렬한 파동을 느끼고 싶다.
쇼팽 녹턴 마지막 여섯 마디.
도시시도라 (첫 번째 도와 두 번째 시와 마지막 라에는 플렛이 붙어있다)를 연속으로 타격한다.
피아노 소리가 비브라폰 소리로 환치되어 울린다.
두 번째 녹턴이 또 들린다.
이번에는 백건우 버전이다.
늙은 남자의 느린 박동처럼 사각사각 천천히 숨을 죽이는 속도들.
비창을 연주하던 영상에서 본 피아니스트의 커다란 손이 생각난다.
그 큰손으로 작은 건반을 눌러서 거대한 음표를 하늘로 쏘아 올린다.
이제 큰 손이 큰 소리를 낸다. 마지막 트롤은 쌩쌩하다.
골든베르크 협주곡과 녹턴 NO.2의 내 악보는 쓸쓸히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 악보 대 위에 놓여 있다.
같이 올걸 그랬다.
치지 않더라도 같이 있으면 서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텐데.
아니 좀 덜 쓸쓸하고 덜 외로울 텐데.
피아노. 듣고 싶다. 피아노가 내는 소리.
악보. 음표. 페달. 헤며. 울리는 강철 현. 피아노 치는 것.
인간은 그리워하기 위해 창조된 동물이다.
벼는 다 익었다. 병이 난 벼도 익기는 다 익었다.
추수의 때가 왔다.
내팽개친 논에 콤바인이 다닐 때가 되었다.
잠깐이라도 벼 베로 다녀오기로 한다.
계룡산이 보이는 뜰을 물 드린 노을이 보고 싶었다.
한참 신곡머리라 발바심으로 조바심칠 때다.
햅쌀이 나올 때라 햅쌀을 추수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햅쌀은 잠깐 특수를 일으킨다. 첫해의 첫 수확물을 직접 사서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하는 사람도 있다.
2025년 첫 벼를 베서 탈곡하고 운반해서 건조하고 정미하고 종이 자루에 포장하느라 바쁘다.
햅쌀 선물은 밥쌀로 한다. 떡살인 내 벼는 아직 손을 댈 순서가 아니다.
남 논에 가는 날이 많다.
“집이 온 겨? 안 가는 겨? 그냥저냥 혀”
순댓집 이모님, 동네병원 간호부장님.
같은 쪽대본을 외운 것처럼 나와 마주치면 묻는다.
하늘을 본다. 이거 트루먼 쇼인가?
올해 우리 논은 작황이 좋다.
병이 덜 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욕심인가 싶다만 정미소 사장 모친과 부친은 신이 났다.
빨리 내가 심은 벼만 베고 다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다.
내 피는 농부의 피가 아니라 편의점 점원에 피가 흐른다.
벼 베는 장비를 콤바인이라고 부른다.
콤비네이션, 조합이라는 어원의 기계다.
물론 일본에서 처음 만들고 이름도 일본식이다.
용어가 기계 명이 된 사례다.
벼를 베는 것(옛날에는 사람이 낫으로 했다)
벼를 탈곡하는 것(탈곡기라고 불렀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조합했기 때문이다.
콤바인은 논의 벼를 깎는 바리깡같이 생겼다.
탱크 같은 거친 소리를 내며 논의 머리를 민다.
일 년 내내 물이 없더니 물이 필요 없는 때가 되자 거꾸로 비가 많이 와 버렸다.
가을장마 탓에 늦게 베는 벼는 재미를 못 보게 된다.
비 예보다. 비 내리기 전에 벼를 베야 한다. 남의 논이 아니라 내 논이 급하다.
오랜만에 임리로 간다.
임리 할아버지가 좋아한다.
다른 말은 없이 멋 내며 힘주어 말한다.
“농사 잘됐어. 최고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인지 나를 칭찬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93살 노인네의 어깨는 각이 섰고 보폭은 크고 걸음걸이에 군기가 서렸다.
잘 되긴 했나 보다, 올해 농사.
병 걸린 논은 내가 내려고 오기 전에 일 순위로 베버렸다.
상처를 묻듯이, 미련을 지우듯이, 내년에도 벼는 심어지고 자라고 베고 할 것이다.
벼를 썰어 넣고 가을 쟁기를 한다는 나의 다짐은 사라졌다.
내가 아니어도 벼는 썰어 넣었고 가을 쟁기는 아니어도 쟁기질은 누군가 할 것이다.
가을이라 밤이 빨리 온다. 집에 와서 피아노부터 만난다.
피아노는 그대로 있다. 악보도 마지막 치던 그대로다. 피아노를 친다.
‘다 헤어져도 너랑은 못 헤어져’
멜로드라마의 낡은 버전의 대사가 쓸쓸하게 한다.
피아노를 두고는 못 갈 것 같은.
피아노가 겨우 생겼는데
어렸을 때 갖지 못한 한풀이 같은 거 아닐까?
내가 피아노를 그렇게도 배우려고 악착을 떤 이유가.
유년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행동은 성인이 되지 못한 유아기 증후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진정한 성인으로, 진정한 개체로, 성숙한 한 사람으로
서 있게 될까?
전자 건반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음의 두께를 느낀다.
한 주기의 끝이 모든 끝은 아니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고 땅도 얼지 않았다.
한해 벼를 키운 농군들은 이제 돈을 만지기 위해 벼를 내놓는다.
수매로 정부나 농협으로 그리고 남은 벼는 정미소로 보내 현찰을 얻는다.
시세가 별로고 여유가 있으면 집안 창고에 넣어 뒀다가 설을 기다린다.
이렇게 구한 현찰로 일 년 내내 밀린 돈을 갚는다.
대출금 밀린 기계 대금 안 주고 가져다 쓴 비료 값 농약값 선자를 치르면 다시 일 년 전 잔액 제로가 된다.
도돌이표 붙은 한 페이지가 마감된다.
등을 지지려면 눈도 오고 땅도 얼어 논에 손을 못 대는 절기가 와야 한다.
소한 대한 소설 대설
고구마가 좀 싸면 좀 더 달콤한 절기가 될 것이다.
구들장이 뜨끈해지면 자투리 돈으로 수육 먹으면서 고스톱판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달콤한 늦잠도 자면서 내년 농사 꿈도 꾼다.
한 사이클이 끝났지만 다 끝난 건 아니다.
나는 가을에 할 일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나는 새 사이클로 옮겨 가야 한다.
총 100 마지. 파종 벼 동진 찰.
수확량 800킬로 큰 백 50개.
백 당 평균 850킬로 잡는다.
가을장마를 피해서 수확량이 괜찮다.
첫 농사 치고는 괜찮았다.
마지막 벼농사 치고는 아쉬움이 크다.
한세월이 지나서 새 사이클이 되면 한 번은 더 농사를 지어야겠다.
다른 농사는 어렵다.
나는 물에서 자라는 파란 벼가 좋다.
사계를 따라 살아가는 일 년의 순례자에게 벼보다 더 좋은 안내자는 없다.
건반 앞에 의자를 본다.
자꾸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피아노와 서먹서먹해진다.
피아노 치는 농부는 길을 잃었고 이별이 다가왔다.
신곡머리 햇곡식이 날 무렵
발바심 본격적인 추수에 들어가기 전 햇곡식을 우선 추수하여 낟알을 떨어낸 일
출처: <객주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