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_재즈
1. Flight to Denmark-DUKE JORDAN TRIO
나는 편의점 오전 근무자다. 그래서 새벽에 일을 나간다. 어둠이 발에 치이는 시간을 걷는다. 기온에 민감하다. 낮에 더워도 해가 없는 아침은 옷을 여민다.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입김은 계절을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다. 겨울 장면을 찍을 때 대사를 하기 전에 얼음을 물고 있다가 입김을 낸다.
입김은 계절의 척도다. 요즘은 입에서 입김이 저절로 나는 계절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온다.
올해는 빼빼로 데이 매출이 시원찮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장사가 좀 나아져야 한다.
장사가 잘 돼야 직원인 나도 좋고 사장님도 좋다.
1년 전, 24년 12월은 장사를 완전히 망쳤다.
12월 4일 내란 때문에 가뜩이나 안 되는 장사가 완전히 망했다.
그 이후로도 장사는 회복되지 않았다.
내란은 아주 작은 미세혈관까지 큰 충격을 주는 심장 발작 같았다.
미국 메이저리그 넘버 42는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등에 번호를 매기고 뛴다.
번호는 그 선수의 분신이다. 선수의 이름보다 더 큰 상징이다.
우리도 익히 아는 번호들이 있다.
61번 99번 10번
(세 번호가 누구의 등번호 인지 알면 야구 좀 아는 사람이다.)
야구는 다른 구기 종목보다 등번호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상징하는 효과가 크다.
역사가 오래된 메이저리그는 팀마다 영구결번은 한 두 개 씩 있다.
영구결번된 번호는 어떤 선수도 달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 전체가 영구결번을 정한 것은 42번 하나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는 누구도 달 수 없는 번호.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한 명을 뽑으라면 바로 이 선수라는 뜻이다.
그 42번은 바로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이다.
(42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야구는 백인들의 스포츠였다. 그 장벽을 깨고 최초로 메이저리그 진출한 흑인 선수가 재키 로빈슨이다.
재키 로빈슨이 유리천장을 뚫고 난 후 메이저리그는 꾸준히 흑인 선수들이 증가했다. 그렇게 늘어나던 흑인 야구 선수들이 이천 년대 이후 줄어들고 있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축구와 농구는 공 하나로 여러 명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는 공 하나로는 안 된다.
글러브도 포지션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르다. 오른 손잡이 왼손잡이 따로 있다. 글러브 한 종으로 돌려쓰기 어렵다는 말이다. 재질도 소가죽을 되어 있어서 비싸다.
나무 배트도 단풍나무나 물푸레 나무로 만든다. 아마추어도 요즘은 알루미늄이 아니라 나무 배트를 쓴다. 나무 배트는 소모성 용품이다. 부러지면 새것이 필요하다. 일 년에 몇십 개씩 쓴다. 유니폼도 비싸고 스파이크도 비싸다.
야구는 가난한 집 소년이 하기는 어렵다.
이대호처럼 조모 가정의 학생이 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이다.
미국의 빈부격차가 원래 컸지만 더 커지자 흑인 야구 선수들이 줄었다.
원인은 더 심화된 빈부격차 탓이다. 흑인들이 가난했지만 야구를 못 할 만큼 더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야구를 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시스템도 붕괴되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 흑인 줄어든 자리를 중남미 선수나 아시아 선수들이 채웠다.
박찬호 노모 이치로 오타니 야마모토 같은 선수들이 미국에서 야구를 하게 된 이유는 야구를 잘 해서기도 하지만 미국 야구 선수 시장의 변화도 한 이유다.
덴마크로의 비행(Flight to Denmark)은 하얀색 표지의 앨범이다.
덴마크를 강조하기 위해 하얀 눈이 내린 숲을 배경으로 앨범 재킷을 만들었다.
그 숲에 한 흑인 아저씨가 서 있다. 그 아저씨가 앨범을 만든 듀크 조단이다.
하얀 설원에 서 있는 검은 얼굴에 피아니스트, 흑인 피아니스트는 다 어디로 갔지?
내가 아는 피아니스트는 유럽 사람이 주류라서 흑인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구글에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로 검색을 해 보았다.
검색은 두 종류로 분류해서 나왔다.
클래식 분야, 재즈 분야.
클래식 분야에 밴 클라이번 게리 그래프 먼 레온 플라이셔 애비 사이먼
전부 백인이다.
재즈 분야에는 아트 테이텀 아마드 자말 전부 흑인이다.
미국에서 클래식은 백인 분야(아이스하키 같다. 이것도 돈이 많이 든다)
재즈는 흑인 분야(농구 같다. 백인 선수가 나오면 크게 기사화된다.)로 양분되는 기분이다.
재즈는 발생학적 원류를 따라가서 ‘흑인을 위한 클래식’이라는 정의가 맞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흑인 분야 백인 분야의 분류학이 아니라 부의 격차가 만드는 한계 상황이다.
가난해도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세상이다. 음악은 좋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좋은 세상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좋은 음악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가난으로 해서 음악을 못 하는 것은 슬프다.
가난하게 자라서 피아노를 치지 못한 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운다.
굳어 버린 손과 얼어버린 음악 센스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Flight to Denmark는 앨범 사진을 따라가서 겨울 음악 분위기다.
잔잔하고 차분하다.
포근함을 주는 음악이다.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비평한다면 훅(HOOK)이 없는 음악이다.
재즈에서 훅은 재즈 그 자체다.
찰리 파커의 재즈와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는 듣는 순간 가슴에 쿵 하고 울린다.
찡하고 한 방 맞은 듯하다. 이런 게 훅이다.
이 앨범에는 이게 없다.
듀크는 찰리 파커의 피아노였다. 버디의 버디였다.
그의 재즈에는 버디의 훅이 없다.
듀크는 그래서 미국에서 서서히 힘을 잃었을 것이다.
듀크는 미국을 떠나 추운 덴마크로 갔고 이 앨범을 만들었다.
훅이 제대로 박혀야 뜬다. 뜨면 돈이 되고 성공이 된다. 음악 세계는 그렇게 떠야 하는 운명이 있는 법이다.
모든 음악에 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훅이 없으면 성공은 없지만 훅이 없다고 음악이 아닌 것은 아니다.
재즈 역사를 가를 명반은 아니지만 한겨울 차가운 손을 비비며 입김을 내 품는 가난한 영혼을 덥힐 만한 음반은 분명하다.
훅을 만들 수 있는 음악가 훅을 못 만드는 음악가
인생이 갈린다. 훅을 못 만들면 인생 대박은 없다.
그러나 훅을 못 만든 사람의 인생이 쓸쓸함뿐인 것은 아니다.
그 풍경은 쓸쓸한 것이 아니라 평온한 것일 수 있다.
눈앞에 눈이 내린 설경에 선 남자, 그 영혼의 평안함이 담겨 있는 앨범.
훅은 아니지만 잔잔한 고갯짓의 리듬도 숨었다.
겨울에 지나온 계절을 뒤돌아보듯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