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_달리기
나는 런린이(런닝 어린이)면서 주린이(주식 어린이)다. 25년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주식은 주식 아가방(이광수)으로부터 달리기는 기안84로부터 왔다고 할 수 있다.
(선지자에게 영광 있으라. 앞서 길을 연 세례자의 성령으로부터 내 삶의 변화가 왔도다.)
27만 6천 원에 산 현대자동차 주식 2주. 한 달 내내 26만 5천 원을 넘지 못했다. 못 견디고 팔았다. 팔고 얼마 후 31만 4천5백 원까지 올랐다. 오른 주식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판 주식은 다시 들추지 말라는 격언을 어겼다. 판 주식과 떠난 버스와 떠난 여인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진동하는지 묻는다?
저가 시점에 물타기를 못 했다. 결국은 인내하거나 좋은 시점에 더 물량을 늘렸어야 하는 데 실패했다. 선택의 순간은 찰나고 후회는 지속된다. 마음이 흔들릴 일이 없다고 자만했다. 이 종목 주식을 사는 이유, 파는 이유가 명백했다. 그러나 올라간 주가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욕심이 솟아올랐다.
<감정의 절제는 재능이다.>
저명한 주식 투자자 하우드 막스가 쓴 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재능이 없다. 주식도 글쓰기도. 재능이 있는 파트가 내 인생에는 없는 거 같다.
달리기는?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달리기보다 조금 빠르게 달린다. 보통 속도 달리기다. 보통 속도 달리기를 오랫동안 지속한다. 삼분의 이 지점을 돌파한다. 마지막 삼분의 일은 최고 속도로 달린다. 최고 속도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속도의 팔십 퍼센트다. 이렇게 완주한다. 달리는 시간은 사십오 분. 이것을 가속주 훈련이라고 한다.
(앱이 시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새 세상으로 이끌 구세주는 AI다)
돈가스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돈가스는 두 종류가 있다. 남산식과 일본식. 남산식은 고기를 넓게 두르려 펴서 튀긴다. 일명 옛날 돈가스다. 일본식은 고기를 썰어서 튀긴다. 겉은 튀김이고 안은 고기살이 붉게 보인다. 안심 등심 부위도 고를 수 있고 깨를 담은 사기그릇과 막대기도 준다. 깨 가는 거 귀찮게 시키나 싶다가도 깨가 갈리면서 나는 깨 향이 갑자기 들리는 성모송처럼 향기롭다.
일본 돈가스는 튀김이 먹고 싶을 때 남산 돈가스는 달콤한 단 게 먹고 싶을 때 생각 난다. 남산식이든 일본식이든 소바가 먹고 싶을 때면 돈가스를 생각한다. 소바와 돈가스 조합은 천상의 하모니라 할 수 있다. 미카엘 천사와 가브리엘 천사가 동시에 내려와 삶을 축복해 주는 기분이랄까? 옛날 돈가스가 먹고 싶으면 남산에 가야 하고 일본 돈가스는 합정동(내가 일하는 편의점 맞은편)으로 가야 한다.
설밀나튀(설탕, 밀가루, 나쁜 기름, 튀김)금지. 중년남의 절제다. 가능하면 안 먹는 음식이지만 돈가스는 가끔 먹고 싶다. 오늘은 돈가스 아니라 달리기 이야기다. 남산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달리기 때문이다. 돈가스가 아니다.
50분 달리기를 훈련하고 있다. 쉬지 않고 50분을 달리는 게 목표다. 속도는 상관없다. 50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 이렇게 명확한 목표가 있고 이 목표를 향해 달린다. 달리면서 도전하는 자신을 살핀다. 달리기는 가능한가? 달리기는 성공할 수 있는가? 목표와 목표를 향한 지향. 이게 달리기의 매력이다.
달리면서 음악을 듣는다. 요즘은 집중해서 음악을 듣기가 쉽지 않다. 역시 음악이 흔해져서 일 것이다. 넷플릭스가 생긴 후 영화는 흔해졌지만, 극장처럼 밀도 있게 보는데 불가능하다.
영도자 하루키도 달리면서 음악을 듣는다. 유명하고 멋진 음악을 듣는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발라드를 듣는다. 이럴 때는 히트 친 대중가요가 좋다. 사실 클래식이니 재즈니 유세를 떨어도 진정으로 나를 진동시키는 것은 연애 송이다. 우타다히카루의 <하츠 코이>와 에드 시런의 <THING OUT LOUD>가 멜론에 나란히 있다. 오늘 지속주 훈련은 <THING OUT LOUD>다. 어떤 노래를 듣느냐가 관건일 때가 있다. 여수 밤바다는 그렇게 속도가 안 난다. 이 노래는 상쾌하게 달리게 한다. 공기로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 사랑의 원자가 폐를 스치고 연애의 충만함이 삼투압 현상으로 혈액에 담기고 피가 심장에 다다르면 나는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사랑받고 있거나 하는 기분이 든다.
(편의점 사장이 말했다. 돌싱 특집에 나가 보자. 편의점 정직원이 되었으니 이제 번듯한 직장이 생긴 거 아니야. 당당하게 편의점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나가게. 시급 일만 원 노동자도 그런데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자고. 벼농사로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 문명 발전에 기여한 농부가 이제 편의점에서 잉여 자본을 만들고 있는 시급 노동자로 변신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보자.)
달리기 마일리지 쌓여간다. 달리는 마일리지만큼 용품도 늘었다. 레깅스 2개. 달리기 양말 2개. 장갑 1개. 넥워머 2개. 이어 워머 2개. 러닝 티 2개. 비니 2개.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고 싶은 것 목록이 문제다. 런닝화를 한 개 더 사고 싶다. 지금 것은 너무 푹신하다. 경량 패딩도 하나 사고 싶다. 허리 백도 하나 사고 싶다. 지금 레깅스에 껴입은 반바지는 등산용이다. 메이커가 붙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컬러 반바지가 2개 정도 있어야 한다. 고글도 하나 장만해야 한다. 지금 가진 일반 선글라스는 무겁다. 팔 토시도 좀 더 좋은 것으로, 종아리에 차는 슬라브도 있으면 좋겠다. 욕망이 솟아오른다.
달리기는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을 조심해야 한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달리기는 그렇다.
권은주의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에서 천천히 달리는 것이 실제로 해보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욕망은 쉽게 올라오고 그것을 제어하는 절제는 고통이다. 달리기는 욕망과 절제 사이를 오간다.
나는 유전자 깊이 각인된 중독과 싸운다. 탄수화물 중독과 싸움을 한다. 고혈압 당뇨를 유발하는 대사증후군을 멀리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줄이고 있다. 탄수화물을 절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먹을 때는 모르지만 안 먹으니 힘들다. 탄수가 부족하면 우울감과 짜증이 심해진다. 먹고 싶은 욕망도 절제하고 우울감과 짜증이라는 스트레스도 억눌러야 하는 이중고다.
튀김도 먹고 싶다. 돈가스. 돈가스의 유혹이 올라올 때 이겨낼 방법을 찾았다. 돈가스 대신 초밥을 먹는다. 튀김 대신 탄수화물로의 도피다. 달리기는 나의 도피처다. 달리기를 하면 충분한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달리기를 핑계로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 탄수화물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데 달리기에 정말 탄수화물이 필요한 것인가?
초밥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와사비를 너무 많이 넣었다. 초밥집 사장님이자 요리사님은 아침마다 편의점에서 에쎄 골드를 두 갑씩 사 간다. 에쎄 골드로 잡은 초밥이다. 졸라 맛있다. 이제 돈가스는 이별이다.
남산에 가야 한다.돈가스가 아니라 달리러 가는 것이다. 날을 잡아서 러닝복과 런닝화를 챙겨서 출근해야겠다.
(러닝 용품을 넣을 가방을 하나 사야 하나? 이렇게 자꾸 물건이 사고 싶다. 잊으면 안 된다.
나는 최저시급 노동자다.)
가는 길에 편의점 사장 모교인 동국대도 들리고 공연하기 위해 들락거렸던 국립 국장의 추억도 되새겨 보기로 하자. 사무실에서 걸어서 올 수 있는 피아노 요정도 불러서 가고 싶지만, 그녀는 달리지 않는다.
지금 내 인생은 메달권에서는 멀어져 버린 선수다. 그렇다고 인생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인생 달리기를 멈출 수 없어서 달린다. 나와 내 친구는 요즘 매일 카톡으로 서로 달린 기록을 올린다. 이것은 생존을 알리는 신호다.
“나 아직 살아 있어.”
서로 우울증이 심하다고 서로 고백했다.
“이러다 농약 먹겠어.”
자기 증상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서워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왜 달리느냐고?’
살고 싶어서다. 영혼의 구원 같은 여유 자빠지는 소리가 아니다. 달리기는 현 상황에서 유일한 구원 수단이다.
인생의 내리막에서 순위권에는 밀렸고 더는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 삶은 허망하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달리기는 해야 한다. 달리면 잠시 행복해지는 것도 같다. 달리기가 있는 인생은 행복해지는 법 한 개는 갖고 있는 인생이다.
50분 달리기로 달리는 거리는 칠 킬로 정도다. 50분 달리기를 올겨울 내내 해볼 계획이다. 달리기 거리가 늘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칠 킬로를 달린 날. 잠을 자면서도 온몸에 날이 섰다.
‘아프면 어떡하지?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몸살 나면? 몸이 힘들면 배탈부터 나는데 설사병이 돋으면?’
잠결에도 걱정이었다. 달리기가 있는 것과 없는 거. 달리면 아플 까 걱정 안 달리면 죽을 까 걱정. 두 개의 공포 사이에서 안달음을 놓으며 산다. 그래도 달리는 것을 생각하면 좀 설렌다. 연애하는 것처럼.
하루키 달리기책 1장. 하루키 아저씨는 하와이에서 달린다. 행복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 하와이는 무리다.
남산이라도 가서 달리고 싶다. 남산은 업힐 다운힐이 섞여 있어서 실력이 늘기 좋은 코스란다. 남산은 시원한 나무 그늘도 있단다. 지금은 추워서 달리기 좋은 계절, 더워서 달리기가 힘든 계절이 되면, 시원한 나무 그늘이 생각날 때면 남산에 가야겠다. 달리로. 행복해지러.
추신:
행동하고 사유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정직하게 들어내는 욕망이다. 이 욕망이 느껴지는 것,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존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