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는 눈을 의심했다. 저마다 좌석을 찾느라 정신없는 승객들 사이로 그들이 보였다.
어머니는 좌석을 발견하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멍하니 서있는 현수의 뒤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의 헛기침 소리들이 들렸다. 현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잘못 본거야. 여기까지 쫓아왔을 리가 없어.’
승객들이 모두 탑승하자 비행기는 이륙 준비에 들어갔다.
승무원들은 바람 빠진 구명조끼를 입고 바람을 불어넣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기분 나쁘고도 익숙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현수가 뒤를 흘끗 보자 그들은 어느새 바로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현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불안한 얼굴의 현수를 바라보던 좋은 인상의 옆 자리 아저씨는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한국에 현수만 한 아들이 있다고 했다. 아저씨와 대화를 하는 동안 그들은 현수의 자리를 발로 찼다. 자꾸만 자리에서 튕겨 오르는 현수를 보며 아저씨는 말을 멈췄다. 점점 세지는 발차기에 현수의 마른 몸은 속수무책으로 흔들거렸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팔꿈치로 의자를 내리쳤다. 어머니는 놀라 커다래진 동공으로 현수의 팔을 잡으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들에 대해 말을 꺼내려던 순간.
콕. 콕. 콕.
검고 긴 손가락 하나가 현수의 머리 위로 정수리를 찔렀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뒷자리에 앉은 그들 중 하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현수를 말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현수의 손은 노부인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노부인에게서 승무원들과 주위의 사람들은 현수를 떼어냈다.
“ 엄마. 내가 말했던 개들이 여기에 있어. 날 괴롭히러 따라왔다고.”
어머니와 사람들은 두리번거렸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서 당장 죄송하다고 해.”
혼란스러워하는 현수의 눈앞에 화가 잔뜩 난 그들이 수가 더 늘어난 채 현수를 향해서 비행기 복도 끝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현수의 처음 있었던 반격이어서 그랬을까. 그들은 분노에 가득 차있어 보였다. 현수는 곧장 도망쳤다.
현수의 등 뒤로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비행기 좌석 어느 곳에서든 그들은 굴을 내밀었다. 3년 전 학교 복도를 가로질러가던 현수도 그랬다. 미국으로 영어를 배우러 갔던 현수는 첫날부터 술래잡기를 하느라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다. 처음 온 날부터 다음, 그 다음날도 현수는 항상 술래였다. 현수는 친구들을 피해서 학교 안을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술래가 더 이상하기 싫었던 현수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매일 밤 전화를 끊지 않으려던 현수에 부모님은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후 현수는 기숙사 화장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을 처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피해 하루 종일 도망가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현수의 온몸은 멍과 상처 투성이었다. 그들은 지독하게 현수를 쫓아왔고 현수가 이유를 물어봐도 그저 붙잡으면 괴롭히기만 할 뿐 대답을 말해주진 않았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검은색이었다. 검정이 아닌 건 새하얀 이뿐이었다. 그들은 집이든 밖이든 현수가 있는 곳이면 갑자기 나타나는 걸 좋아했다. 현수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망가야만 했다.
현수는 비행기 복도를 뛰어다니다 남자 승무원들에게 붙잡혔다. 현수가 몸부림을 치며 그들이 날 쫓아온다고 애원했지만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뒤에 숨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현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무장은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어느새 비행기는 30분째 출발이 늦어지고 있었다. 현수는 그들의 장난질에 모두가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승무원에게 그들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하는 현수의 옷깃을 어머니는 조용히 잡아당겼다.
“내리자 현수야.”
씩씩거리며 뒤돌아본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나 담담해 보여서 현수는 그만 맥이 풀려버렸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승무원들에게 둘러싸여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 그런 어머니의 뒤로 그들은 현수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날렸다. 승객들은 숨을 죽이며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현수는 두려움과 멸시를 동시에 느꼈다. 현수는 한참 동안 발끝만 보다 고개를 들었다.
“ 엄마. 나 이제 걔네들 안 보여.”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기 위해 현수는 방금까지의 일들을 잠시 착각을 해 일어난 난동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현수가 반복해서 사과를 거듭한 끝에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수는 착륙 전까지 아무런 난동을 부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옆자리의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어머니는 좌석에 앉자마자 마치 며칠 밤을 새운 사람처럼 무섭도록 잠에 빠져들었다.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며 하늘로 올라가자 귀가 먹먹하여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톡. 톡. 톡.
현수의 정수리로 검은 손가락이 다시 내려왔다. 낄낄 웃는 그들을 뒤로 한 채 현수도 어머니를 따라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