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한 뼘 소설-1

by 가을나무

웰컴! 마이 네임 이즈 피터. 아임 프롬 캐나다. 왓츠 유어 네임?
전교생이 백 명 조금 넘는 산골 학교, 연두색 눈동자의 이방인은 나름 서울 한복판에서 평생을 자라왔던 나에게도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집이 망해 빚쟁이들을 피해서 쫓겨 오듯 전학 왔다는 말라깽이 여자애는 반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내 뒤통수만 바라보는 스무 개의 눈동자들에 난 입을 다물었고 피터는 끝내 내 이름을 듣지 못한 채 수업을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난 피터는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교과서를 머리 위에 얹고 가던 나를 보고 눈을 흘겼다. 11월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친 그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나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나는 노 땡스라 말했고, 피터는 나에게 영어를 할 줄 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캐나다인들은 이런 비쯤은 맞지 않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내 머리 위에 우산을 올려놓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리듬을 타고 빗속을 함께 걸었다. 엄마는 공짜로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겠다며 피터와 친하게 지내라고 김밥을 싸주었다. 몇십 번은 연습했던 ‘ 그날 고마웠다고 우리 엄마가 만든 김밥이야. 덕분에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는 피터 앞에 서자마자 도시락통과 함께 ‘헤이. 맘.’으로 대체되었다.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내 표정에 그는 마슀어! 를 반복하며 나에게 엄지를 추켜올렸다. 다시 돌려준 우산은 거절했다. 앞으론 쿨한 어덜트가 되고 싶다나.

피터는 자신의 어두운 갈색머리는 아버지에게서, 눈동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말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피터는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찾고 싶다며 떠났는데 정작 자신도 아버지에게 버려진 것 같다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벌이의 삼분의 이를 고향에 홀로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리던 소나기를 나는 우산으로 그는 그의 모자로 막아내며 걸어갔던 날, 피터는 감기에 앓아누웠다. 그가 걱정돼 홀로 동영상을 보며 우여곡절 끝에 만든 죽을 들고 찾아갔다. 피터는 비 오는 날이면 고집을 피우며 어머니의 우산 안으로 끝내 들어오지 않았던 아버지를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너무 바보 같다며 울었다.

이사 온 지 6개월 만에 아빠는 이 주일에 한 번씩,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공중전화로 생존신고를 해왔고 자신은 귀하게 자랐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엄마는 학교 근처 국밥집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홀로 있는 나에게 동네 사람들은 찐 고구마 같은 것들을 들고 와 아빠에 대해 물었다. 어물쩍 대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던 나는 배가 고파질 때만 그들에게 다정해졌다. 피터는 이런 내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이였다. 우리 집이 이사 오기 전 동네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그의 임용은 동네에 하나뿐이었던 하숙집의 문턱이 닳게 만들었다. 아무리 성격이 좋기로 유명했던 캐나다인에게도 역시 밤낮으로 두드려졌던 방문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대신 프레쉬한 야채를 먹을 순 있어. 매일같이 싸왔던 샌드위치를 물며 그는 말했다.

처음으로 영어시험에서 백점을 맞은 날, 시험지를 품에 안고 찾아간 교무실에서 피터는 오열을 하고 있었다. 그는 5분 전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날 밤 그는 바로 모든 짐을 정리하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함께 맞는 세 번째 소나기가 내렸다. 피터는 바닥에 캐리어를 눕히고 한참을 뒤지더니 우산을 꺼내 건넸다. 너와 같이 쿨한 어덜트가 되고 싶다는 내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나에게 씌워주었다. 씨유 쑨. 온몸으로 소나기를 받아내며 그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몸져누운 나를 보고 엄마는 약을 사러 나갔다. 홀로 끓어오르는 열을 견디던 그때 걸려온 두 달 만의 아빠의 전화에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을 목 놓아 울며 돌아오라 말했다. 지금 갈게. 뛰어 갈게. 새벽을 달려온 아빠는 몸살이 났고 정신없이 동네를 헤집고 다녔던 엄마가 가져온 약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좁디좁은 한 방에서 나란히 서로의 열을 품고 바보같이 실실 댔다.